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신경림
일상에 빠지지 않고
대의를 위해 나아가며
억눌리는 자에게 헌신적이며
억누르는 자에게 용감하며
스스로에게 비판적이며
동지에 대한 비판도 망설이지 않고
목숨을 걸고 치열히
순간순간을 불꽃처럼 강렬히 여기며
날마다 진보하며
성실성에 있어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보되
새로운 모습을 바꾸어 나갈 수 있으며
진실한 용기로 늘 뜨겁고
언제나 타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모든 것을 창의적으로 바꾸어내며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고
내가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을 늘 기억하며
내 작은 힘이 타인의 삶에
용기를 줄 수 있는 배려를 잊지 말고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는 역사와 함께 흐를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야 한다.
- 시집『가난한 사랑 노래』(실천문학,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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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께서 어떤 계기로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 어느 시민단체로 부터 '주문'을 받고 쓰신 '실천 강령'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시대의 앞장에서 자신의 삶과 궤적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리란 신념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말씀이다. 거창한 뜻과 명분의 삶이 아닐지라도, 잘 새겨듣고 몇 가지 실천만 한다면 느슨한 일상에서 삶의 질을 개선하며 매순간 깨어있게 하는 각성제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린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했겠으나, '타성'이란 관성의 우군에게 발목 잡히고 제압당했던 적이 어디 한 두번이던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표출로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 또한 신념이라면 어쩔 수 없겠으나,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친구들과의 야외 나들이를 위해서 혹은 단지 귀찮아서 그러한 구실을 둘러대며 투표를 보이콧 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거니와 솔직히 비겁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일이며, 그 침묵은 과거에 대한 동의와도 같은 의사표시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이 시는 실천적인 행동의 삶을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권유하고 있다.
가뜩이나 이 좋은 말씀에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덧붙여 언급하기가 주저되는데, 이 시는 20세기 초 레닌의 러시아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연상케 한다. 레닌은 이 소설이 발표되고 '그가 나를 완전히 바꾸었다'고 고백하면서 40년 뒤 같은 제목의 정치 팸플릿을 만들었는데 볼세비키 혁명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숙지해야할 '혁명의 교과서'가 되었다. 소설의 내용 가운데는 지금은 인류가 당연히 누리는 유급휴가나 장학제도 같은 복지제도의 모형도 제시되어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나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는 모두 개인적인 삶의 목표보다 당시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면하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정신은 그 시대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열정적으로 미래를 개척해야할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다. '이런 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사회를 먼저 봐야할 것이다. '일상에 빠지지 않고, 대의를 위해 나아가며, 억눌린 자에게 헌신적이며, 억누르는 자에게 용감하며, 스스로에게 비판적이며, 진실한 용기로 늘 뜨겁고, 모든 것을 창의적으로 바꾸어내며 날마다 진보하는 사람' 그렇게 샛바람에 떨지 않는 이.
쉽게 눈에 띄진 않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푸르른 솔의 상록수처럼 살아가는 삶이 전혀 없지는 않으리라. 이번 선거에서 꼭 그와 일치하는 삶이 아닐지라도 가장 근접한 후보가 누구인지를 잘 살펴보고 잘 찍어야겠다. 그것이 '이런 내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리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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