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성복

sosoart 2014. 6. 3. 23:28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성복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의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 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 시집『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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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달의 이마...'에는 모두 이렇게 외국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이미지의 잔상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여 시로 재구성한 시편들이다. 일반적인 시 감상 방식과는 달리 타인의 시를 빌어 전혀 별개의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독자적인 시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집에는 릴케, 보들레르, 로버트 프로스트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뿐 아니라 만젤쉬땀, 로르카, 프레베르 등 낯선 시인의 시 총 100편에 대한 일종의 시 해설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며'라는 서문에서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을 때처럼 내 글쓰기가 지나친 갈망과 절망으로 울컥거리기만 할 때, 평소에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에 말붙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 관심사는 인용된 시를 빌미로 하여, 대체 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독자로서는 인용된 시와 이성복 시인의 시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교집합을 묶어보려 하지만 그 간격을 줄이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개별상황 하나하나가 이해불가인 것은 아니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자꾸 40대의 소작인의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고,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트린 것' 하며,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가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린 상황도 대충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간다.

 

 '정중히 전화를 끊은' '여류시인'은 누구였을까. 결국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는데, 나도 소싯적 한 여학생에게 관심을 끌기 위하여 시간만 나면 문학이니 사상이니 예술이니 거창하게 나불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어느 허름한 여관방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 모든 게 '이층집'을 짓기 위한 공정이었냐고? 그러나 나는 조금 계면쩍어했지만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이실직고하지는 않았다.

 

 속셈은 따로 있는데 소작인의 처를 이야기 하고,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보이는 것은 명백한 위선이고 허위다. 이 시는 그 허구를 못 견뎌하고 스스로를 속였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정치도 그 알레고리 안에 있다. 아방가르드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역사인 이성복에 의해 내 안의 치부도 절묘하게 까발려지고 있다.

 

 

권순진

 

 Prelude in C Minor - David Grisman Quintet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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