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보는 소
이성선
동네 우물을
소가 들여다본다.
우물 속에는 상수리나뭇잎 피고
새가 날고
하얀 구름이 흐른다.
물 속의 소는 유난히 귀가 크다.
우두머니 올려다보는 얼굴
흔들리는 굴레
먼 옛날 어느 족장의 후예 같다.
종처럼 일하다가
거지처럼 떠돌다
늙어서 바리때 한 짊어지고
떠나왔다.
우물에 나비 미끄러지고
민들레 피어
그의 얼굴을 만진다.
꽃관을 썼다.
구름詩 이성선 신화 이성선 아이가 가재를 잡으려고 저녁 산골 개울에서 돌을 뒤집었다 돌 밑에서 가재가 아니라 달이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달은 아이를 삼키고 집채보다 더 크게 자라나서 동구밖에 섰다 달의 뱃속에 지금 아이가 산다 내 골짜기 새 울고 천둥치고 소나무 위 번개 자고 밤에 짐승 걷고 노루귀꽃 고개 들어 가랑잎 안에 해가 뜬다 내 안에 산이 걸어간다 일몰 후 이성선 절정의 노래1 이성선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티베트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 이성선 새는 새상을 날며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 해처럼 맑은 우리가 전정으로 산다는 것은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바람의 노래 이성선 지금도 걸으면서 느낀다 새벽 풀잎에 별이 흐를 때 바람은 이들로 향기롭다 수우족처럼은 아니지만 수우족이 그렇게 살고... 백담사 이성선 도반(道伴) 이성선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문답법을 버리다 - 산시 17 이성선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 물 위에 달빛 붓으로 - 산시 31 이성선 가랑잎 종이 위에다 평생 이름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슬픔이더냐 차라리 실컷 물 위에 달빛 붓으로 글을 쓰겠다
구름은 허공이 집이지만 허공엔 그의 집이 없고
나무는 구름이 밞아도 아파하지 않는다
바람에 쓸리지만 구름은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에 살면서도 마을 샛강에 얼굴 묻고 웃는다
구름은 그의 말을 종이 위에 스지 않는다
꺾여 흔들리는 갈대 잎새에 볼 대어 눈물짓고
낙엽 진 가지 뒤에 기도하듯 산책하지만
그의 유일한 말은 침묵
몸짓은 비어 있음
비어서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간다
신성한 강에 쓰고 나비 등에 쓰고
아침 들꽃의 이마에 말을 새긴다
구름이 밟을수록 땅은 깨끗하다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줄을
더욱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빈 산이 젖고 있다.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픈 지상의 일을 시로 옮겨
새벽 눈동자를 젖게 하는가
그때부터다
해 지는 시간에는 시를 쓰지 않는다
스러지는 빛이 쓸쓸히 내 목숨을 바치다 떠나고
나무 사이로 그 분의 젖은 눈빛도
한참이나 나를 보다가 돌아서면
나는 혼자다
다른 약속도 없다
내게 연결된 이름들이 모두 제 길을 갔다
망가진 악기처럼 나는 버려졌다
그리운 소리는 다시
내 악기줄로 길을 물으러 오지 않는다
가슴의 문풍지만 고독히 운다
물을 긷는 자도 돌아갔다
산이 비어 더 크게 나를 안는다
이런 시간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해지고 나서는 사람을 맞지 않는다
문을 열어놓고 빈 산과 벌레소리만
집안 가득 맞아 들인다
혼자 있는 악기만 운다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
가장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
그곳에서 모두를 하늘에 되돌려주고
한 송이 꽃으로
가볍게 몸을 벌리고
우주를 호흡하리
산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목숨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꺼이 거기 몸을 묻으리
영혼은 바람으로 떠돌며
고절(孤絶)을 노래하리
그곳에는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당당히
태양을 향하여
무(無)의 뼈대를 창날같이 빛낸다
침묵의 바위가 무거운 입으로
신비를 말한다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에서
무일푼 거지로
최후를 마치리.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그의 영혼은 길가에 핀 풀꽃처럼 눈부시다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새처럼 가난하고
나비처럼 신성할 것
사랑으로 침묵할 것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수우족은 아니지만…
어릴 때 들길을 걸으면서 알았다
내 영혼은 바람이 주셨다는 것을.
내 눈동자 속의 눈동자에서는
그분과 하나다
나는 이것을 그치지 않고
노래하기를 열망한다.
나의 귀는 듣는다
밭고랑 감자가...
냇물에게 들려주는 노래
메꽃 속에 늦잠 자는
벌레의 잠꼬대 소리.
이들은 내게 와서...
들판으로부터 나를 키웠다.
나는 알았다
그리고 지금도 안다
아름다운 것은 단순하고 작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수우족 : 미국 대초원 지대에 거주하는 평원 인디언 부족.
저녁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간다
산에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노을 진 석양으로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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