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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계의 과제- 하나뿐인 국립미술관에 대한 능멸의 상징, 공모제를 폐지하라/ 최열

sosoart 2015. 6. 9. 16:58

한국미술계의 과제 

 

(126)하나뿐인 국립미술관에 대한 능멸의 상징, 공모제를 폐지하라

최열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문제는 공모제야, 이 바보들아!”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공모제도란 임명권을 부정하는 제도이므로 누구에게나 기회를 부여하고 또한 정치, 자본, 관료들이 틀어쥔 권력을 배제함으로써 순수성을 보장하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땅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정부가 시행하는 공모제가 그토록 순결한 것일까. 태생부터 그렇게 순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임명제로 환원할 것을 주장한다.

공모제와 무관했던 시절, 이경성 관장(1919-2009), 임영방 관장(1929-2015)을 떠올려 보자. 두 관장은 관장으로 초빙되어 미술관을 미술관답게 만들어냈고, 미술관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이관장은 최초로 학예사제도를 도입하고 수집, 연구, 교육이라는 3대 조건을 갖춰냈다. 임관장은 관객 100만 돌파에 작품구입비 50억을 달성했다. 빛난다. 창업주와 중흥조란 영예로 말이다. 이분들은 삼고초려해서 모셔온 인물이다. 임명제가 탄생시킨 최고의 관장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모제가 배출한 관장은 어떠한가. 멀쩡한 미술관을 해괴하기 그지없는 책임운영기관으로 전락시켜 법인화의 길목으로 내몬 관장이 공모관장이다. 임명관장이 유능하다고 평가해 영입했던 학예실장의 목을 친 관장도 다름 아닌 공모관장이다. 대한민국예술원 같은 무위의 기관에 전시장을 내주거나 친일경력도 화려한 화가를 거장이라며 초대전을 열었던 관장도 다름 아닌 공모관장이다. 공모관장이 도입한 책임운영기관 제도로 말미암아 미술관의 주인인 학예사는 곧 계약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곧 법인화될 책임운영기관 따위에 무슨 정규직이냐는 거였다. 또한, 서울관을 개관할 때에도 책임운영기관 따위에 무슨 정규학예사냐며 자리를 주지 않았다. 

지난 해 10월 감사원과 정부는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국립미술관을 능멸했다. 6개월도 넘는 기간 동안 감사한다며 들쑤시더니, 학예사 채용 절차를 문제 삼아 직위해제라는 역사상 최초의 칼을 휘둘렀다. 아무리 역사가 짧아 전통의 무게와 권위가 없다고 해도 대한민국 미술과 미술인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기관의 장이다. ‘수사의뢰’, ‘직위해제’라는 낱말 앞에서 나는 관장이 매관매직이나 부정부패와 같은 비리를 저지른 줄 착각했다. 

서울대파와 홍대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라는 대립구도가 인구에 회자하더니 점입가경이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구도마저 덧붙여졌다. 문득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남성 그것도 미술계 권력을 잡고 있는 남성이 관장이었다고 해도 저랬을까. 이 여성관장은 서울대파 독식이라는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도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3관 체제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미술자료 연구센터를 출범시키는가 하면, 총액 수백억이 넘는 장기 후원프로그램을 미술관 사상 최초로 성사시킨 역대 최초의 관장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누구건, 그 수장을 가볍게 여기는 언행은 관장 개인이 아니라 미술을, 미술인 전체를 능멸하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능멸에도 불구하고 미술계가 아주 잠잠하다는 사실이다. 독식 때는 파동이라며 칼날을 세우더니 능멸 때는 모두 몸을 사린다. 끼리끼리는 할퀴더니 정부권력을 향해서는 순한 양이라, 이런 꼴을 보여주려고 그 북새통이었단 말인가. 

모든 문제는 공모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임명제는 임명권자가 최종 책임을 지는 까닭에 최선의 인물을 물색하고 또 삼고초려를 거쳐 영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공모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단 하나뿐인 국립미술기관의 수장은 그 품격에 걸맞은 과정, 다시 말해 임명권자가 심혈을 기울여 초빙해야 한다. 공모제라는 저 욕망의 시장에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희화화하면서 심지어 정부의 다른 기관까지 합세해 좌지우지, 능멸해대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 그러니까 미술인이라면 함께 외쳐야 한다. “문제는 공모제야, 이 바보들아!” 


- 최열(1956- ) 조선대 미술학과 학사,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전문위원 등 역임. 제15회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문 대상(2010) 수상.『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2011, 시대공감),『한국근대미술의역사』(1998, 열화당) 등 저술.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