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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익 - 대중성과 예술성의 수렴/ 이선영

sosoart 2016. 8. 11. 20:33

장수익 / 대중성과 예술성의 수렴

이선영

대중성과 예술성의 수렴

  

이선영(미술평론가)

  

거의 모든 것이 만들어져 나오는 레디메이드의 시대, 완제품이 아닌 재료 또한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발휘한다. 사용가치가 퇴색된 시대만이 뜯지도 않은 채 향유될 수 있는 물건들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 수를 늘려나갈 것이다. 화방에 진열된 새 재료들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만들어질 필요가 없는 작품들은 지구를 오염시킬 뿐이다. 어떤 개념미술가는 물감이 있어야 할 곳은 캔버스가 아니라 물감 통 이라고까지 말했다. 그 개념미술가는 뚜껑도 따지 않은 새물감통에서 졸작, 또는 그가 생각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릴 필요가 없는 그림으로 낭비되는 재료보다는 또 다른 잠재성으로 꽉 찬 정제된 물질이자 상품을 보았을 것이다. 물감으로 그려진 것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미술사는 그의 신랄한 어록을 ‘작품’으로 기록했다. 개념미술을 낳았던 ‘레디메이드’ 이후, 미술 역시 직접 만드는 것만큼이나 선택이 중요해졌다. 때로 그 선택이 하청 노동력의 구매일 때 작가의 도덕성이 문제시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성공적이어서 인기작품의 반열에 오르면, 그 재료는 그 작가만의 것 인양 사유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독창성을 의심받는다. 형식주의적 발상이 아니더라도, 재료 자체에 내재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13년경 장수익이 발견한 재료인 전선은 선택 뿐 아니라 제작도 중요하다. 제작이 중요한 한 그 재료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크다. 몰입만이 스튜디오에서 하루 10시간이 넘는 작업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할 것이다. 몰입은 예술의 필요조건으로, 노동이나 놀이와도 그 강도를 달리한다. 몰입이 불가능한 상황은 작가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부채질 하곤 한다. 물감으로 하는 전통적인 작업만이 몰입을 낳는 것은 아니다. 장수익의 작품에서 전선은 마치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 평면이나 입체 위에 배열된다. 때로 색선들을 층층이 쌓거나 3차원 상으로 뽑아내서 입체화한다. 그의 작품은 레디메이드와 꼴라주를 결합한다. 


전선 역시 부품으로서 메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으니,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용도를 변경한 셈이다. 변경은 계속되는 변형을 낳았다. 차이는 반복의 결과다. 작업 과정 중에 꼬리를 물고 파생되는 생각과 방법론은 어떤 개념이나 관념보다도 소중하다. 그는 제한된 색상을 탈피하기 위해 사포로 표면을 갈아 톤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피복을 벗겨서 사용한 작품은 코드가 제대로 맞지 않아 지글거리는 영상처럼 보인다. 작품 [intro]에서 전선으로 쓴 붓글씨는 끝부분이 먹물 흐르듯 풀어져 있다. 코드로부터 벗어난 코드는 최초의 코드와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변형된 코드는 불투명하다. 이 불투명성의 영역이 바로 예술의 영역이다. 그러나 불투명성이 우연이나 맹목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투명성과의 상호관계가 중요할 것이다. 물론 ‘미디어는 메시지’(마샬 맥루한)라는 말처럼 어떤 매체라도 투명한 것은 아니지만, 재현주의에 기반 한 기존의 미학은 그러한 투명성을 전제한다. 장수익의 작품에서 전선이라는 인공적 재료는 그에 어울리는 소재와 연결되었다. 






가령 그는 전선으로 자연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어떤 화가에게 물감은 단지 중성적인 재료가 아니듯, 전선은 그와 어울리는 소재나 주제가 있다. 전선 끝 부분을 겹겹이 세워서 복슬복슬한 털의 입체적 효과가 두드러진 최근 작품 [유인원]도 자연 보다는 디스토피아 풍의 SF 영화를 떠올린다. 대학원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2012년에 그가 몰두했던 소재는 폭탄이나 총알 같은 무기류였다. FRP로 만들어진 그 작품들은 기술과 자본을 집중시키면서 경쟁적으로 개발되는 비싼 상품 중의 하나인 무기를 소재로 한다. 첨단 기술력이 농축된 값비싼 상품이기도 한 살상 무기는 심미적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계가 과학기술을 넘어서 탐미주의의 대상이 된지도 오래된 현재, 실제로 사용만 되지 않는다면 예술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말이다. 전선은 무기 시리즈 중 다이너마이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할 때 발견했다. 전선에서 발견되는 선이라는 요소는 입체로부터 평면으로 옮아가게 했다. 


작품 [dot, line, side]는 선을 연결하여 면을 만들어 색 면 추상같은 모습이다. 작품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베트걸], [헐크] 등은 만화 캐릭터들을 출발로 한다. 시작은 전선 색의 알록달록한 색과 잘 어울려서 였지만, 여기에 번쩍 저기에 번쩍 출몰하면서 파워와 스피드를 자랑하는 영웅적 캐릭터들은 전선이 전달하는 것과 같다. 장수익의 작품에서 전선은 상징적인 재료이기도 하다. 원시시대 동굴 벽화 이래로, 희미한 등불 아래서도 그림은 그려져 왔지만, 전기가 없다면 장수익의 작품 소재를 낳았던 만화나 영화, 게임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의 선택은 한 시대의 주도적 매체가 다른 매체로 전환될 때 이전의 매체가 귀한 수집품으로 골동품화 되거나 예술화되는 경우를 반영한다. 가령 어느 역사적 시기에 풍차나 물레방아 등은 그 때의 강력한 에너지 생산 기계였지만, 지금은 옛 시대를 향수하는 물건으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옛날 텔레비전, 전축, 전화기 등 이전의 아날로그 기계들은 장식품이나 예술품으로 활용되곤 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기기들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넘어가는 것이 대세가 된 시기, 전선 역시 유물화 되고 있는 사물 중의 하나다. 그가 선택하고 있는 친숙한 이미지들 역시 지나간 시대의 것들이다. 날로 가속도를 붙여가는 시간 감각을 생각건대, 불과 몇 십 년 전 과거도 오래된 느낌이다. 특히 한국처럼 빠른 물질적 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생활사 박물관’ 류의 공간은 근대 이후 자율화 된 예술의 언어나 문법을 따로 익혀야 할 부담 없이 색다른 풍취로 소통되곤 한다. ‘문화의 시대’인 1990년대 이후, 키치도 순수예술 부문에서 강세를 이뤘다. 장수익의 작품에서 윤두서, 렘브란트,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같은 유명 예술인의 자화상은 사진으로 떠도는 잘 알려진 이미지들을 각색하는 팝아트 풍의 선택을 보여준다. 캠벨 스프 캔이나 브릴로 박스를 표현한 작품은 팝아트의 대표적인 도상을 떠올린다. 21세기에도 지속되는 팝아트 풍의 작품을 보면, 이런 저런 상품들로 인공화 된 세계를 무대로 탄생한 그 사조가 여전히 동시대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수익의 작품은 밑밑한 표면을 강조하는 팝아트와 달리 부조처럼 도톰하며, 도자기 시리즈에서는 입체화되어 있기도 하다. 작품 [항아리]의 경우 피복의 위를 벗겨 촉감을 강조했다. 그의 작품에서 선이라는 조형 요소는 평면을 벗어나서도 또 다른 환영을 만든다. 초상 시리즈에서 머리카락이나 수염 같은 털 부분은 바닥에서 일어나 있어 실재감이 강조된다. 물감으로, 때로는 털 그자체로 털을 모사하는 것과 전선으로 털을 모사하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재현이 아닌 허상을 강조하는 팝아트의 전략은 모든 것이 허상이 될 때 허상 또한 실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남겼다. 시뮬레이션 이론으로 현대문화에 영향을 준 장 보드리야르의 논의가 그렇다. 장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주의적 인식론에 바탕 한 초기 이론과 달리, 다소간 허무주의에 빠진 후기에 와서는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라고 주장함으로서, 인류 역사상 실재론만큼이나 오래된 환영론을 반복한다. 





나날이 갱신되고 있는 정보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젊은 작가에게 허상은 실재 같은 위상을 가진다. 초상 시리즈에서 옆으로, 위로, 바탕을 벗어나는 코드들은 털이라는 자연적 요소를 두드러지게 한다. 소재 및 재료가 인공적일수록 자연적 요소는 강조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여성이나 남성의 속성이 실재보다 더 과장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총체화 된 환경으로서의 인공은 자연화 된다. 그러한 시대를 전면적으로 반영한 것은 팝아트였다. 허상으로서의 세계를 주장하는 이들이 다소간 비관주의에 빠져 있다면, 어디서 출발했든 문화의 실재성을 확인하는 것은 낙관적 입장이다. 타일러 코웬은 [상업문화 예찬]에서 뾰족한 대안도 없이 물질적 진보와 다양성을 낳은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저주를 쏟아내는 지식인들에 대항하여, 낙천적이고 신나고 생을 긍정하는 현대문화를 지지한다. 현대문화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바탕하며, 초월적 요소의 배제 즉 강력한 세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타일러 코웬은 특히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이라고 비판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겨냥한다. 그들은 대중문화가 근대적 이성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과제와 대치된다고 생각했다. 대중문화는 이성보다는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만들어지며 감성에 호소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는 객관적 이성과 훌륭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계몽주의 기획에 기초한 현대성의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믿었지만, 대중매체와 결합한 이성이 해방과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통제와 조작의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타일러 코웬은 하버마스와 달리, 의사소통적 이성을 시장의 외부에서 시장을 평가하는 척도로 간주하기 보다는 시장의 인센티브와 재산권이 있는 견고한 제도적 틀 내부에 이미 의사소통적 이성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상적 언어 공동체’를 플라톤적인 신화로 치부하며, 오히려 인센티브가 지배하는 체제 내에서 다양한 문화적 이성이 경쟁하고 갈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기 영역만 고수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추상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들과의 만남이 진정한 공동체라고 할 때, ‘이상적 언어 공동체’라는 계몽주의적 요구는 요원해 보인다. 기초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예술은 소수가 이어가는 취미로 남아있으며,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고급문화’의 지지자들 및 생산자들이 얼마만큼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렇다. 한편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문화, 특히 시장의 지배를 받는 문화에 대한 낙관주의는 심정적으로 인정하기 힘들어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을 설명해주는 이점이 있다. 대중문화를 참고했던 미술 사조를 또 참고하거나 그 자체가 이미 세계화되어있는 문화적 산물을 활용하는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특정 태도를 반영한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인 장수익의 작품은 대중적이다. 


그는 캠벨 스프 캔이나 브릴로 박스처럼 유명한 팝 작가(그리고 그의 초상 까지도)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다. 얼마 전까지 대중들이 ‘예술품’ 하면 곧바로 떠올리던 도자기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다. 좀 더 세대를 낮추면 만화와 영화, 게임을 주름잡는 영웅들이다. 하나의 소스에서 여러 파생상품을 내놓곤 하는 대중문화는 예술의 영역까지 확장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중문화라고 크게 묶여지는 영역에서 예술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이 활동 또한 활발하다. 제도 속에 화석화된 예술보다는 그들의 활동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때도 있다. 계층적 구분이 없는 곳에서의 문화 활동으로서의 예술은 동시대 문화를 공기처럼 호흡하는 젊은 작가들의 특징이다. 이러저러한 도상들에 전선을 붙이는 장수익의 기법은 난이도를 더해 가고 있지만,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택하는 것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작가의 원초적인 바램이 담겨있다. 


출전; 가창창작스튜디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