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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계에서 국제적 대형행사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나연

sosoart 2018. 9. 10. 18:52

http://www.daljin.com/column/16169


연재컬럼


 

2018 ① 현대미술계에서 국제적 대형행사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나연





현대미술계에서 국제적 대형행사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_현대미술 만국박람회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미술작품에 있어 고유성이라는 것은, 고유성을 지킨다는 것은 끝까지 타협하지 말아야 할 최후의 보루다. 기술복제시대의 미술품에 대한 사유의 끝에서도 아우라가 있는 원본의 가치에 대해 의문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유럽의 미술관에서 명작들의 디지털 이미지의 저작권을 아무리 사들였다해도, 명화의 원본을 가상현실이 아닌 눈 앞에 직접 대면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거장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눈 앞에서 봐야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는 신화같은 이야기가 부여된 고전이나,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이 작품이야 직접 대면하기 위해 높은 비용을 치를 가치가 있다고 치자. 동시대미술의 경우는 어떤가. 동시대미술가들의 작품이란 시시각각 변하고, 수작과 졸작을 내기를 반복하고, 거장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역사가 말해줄 노릇이라, 지금 눈 앞에 있는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일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대미술이란 왜 이리도 난해한가. 거기에 더해 그 난해하고 재미없는 현대미술품을 보기 위해 들여야 한 시간과 금전의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작품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보여주기보단, (어차피) 살아 있는 작가가 움직이며 이곳저곳에서 적합한 작품을 제작하고 보여주는 게 합리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 등 현대미술 강국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국제행사들이나 현대미술관을 찾는 애정도에 비추건대, 상당히 많은 대중이 현대미술을 실제로 대면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7년은 전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꽤 의미심장한 해였다. 10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2년, 5년, 10년 주기의 미술계 대형 행사들이 2017년 6월을 전후로 오픈했기 때문이다. 그랑드투어라는 이름을 붙여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유럽으로 향했다. 나 역시 2017그랑드투어를 시도한 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여기엔 사실 나름의 삐딱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2017년 유럽행은 세계적인 미술계 대형행사들이 조만간 없어질거 같다는 예감 때문에 감행한 참이었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선 마지막 뮌스터를, 마지막 카셀을, 마지막 베니스를 ‘어떻게 망해갈지’ 지켜보려는 마음이었다. 물론 마음이 그랬지만, 마지막 베니스와 카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유명 작가의 대형(규모와 가격면에서) 작품들을 한 장소에 모아둔다는 컨셉 자체가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던 차였다. 국내 혹은 지역작가들의 활동반경을 넓히기 위해 작가와 기획자가 힘을 모아서 세계를 돌며 전시 투어를 해볼까? 라는 아이디어에 “그 비용과 효과면 VR로 만드는 게 낫다”는 대답을 듣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고화질로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구글아트프로젝트도 그렇지만, 많은 미술관의 웹사이트에서 VR 관람 서비스를 제공한다. 궁금한 작품이나 전시가 있다면,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거나, 살게 될 것이다. 직접 현장을 찾아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과 VR로 작품을 보는 일 중에 각자의 취향과 경제사정, 선호도에 맞게 골라서 전시를 보게 되는 일이 보편화될 수 있다. 

만국박람회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엑스포가 별 재미가 없는 것처럼, 비엔날레를 비롯한 미술계 대형 국제행사들도 점차 미술계 관계자들(대중의 관심이야 애초에 크게 받은 적 없었다 치고)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수 있다. 지금 방식의 작품을 한 장소에 모아서 대규모로 보여주는 행사들은 점차 다른 방식을 찾아가게 될 지 모르겠다. 한국의 경우로 돌아와보자. 제주와 광주, 부산의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이 시점에 그만한 비용을 들여 물리적인 비엔날레를 만드는 것이 유의미한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베니스비엔날레처럼 어떤 사명감을 가질만한 가치있는 역사를 이어가야 하는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왜 지역마다 신생 비엔날레가 생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아트페어는 어떤가.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의 만남의 장으로서 잘 기능하고 있어서, 오프라인 전세계 미술인 만남의 장으로 더욱 성황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아트시와 엣시가 엄청나게 분발하고 있으니, 오프라인 아트페어의 미래도 밝진 않을지도 모른다.  

오프라인에서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오히려 특정한 동인이나 지역이 특색적으로 기능하는 행사들이다. 한국에선 작가들이 주체가 되는 예술장터인 유니온아트페어, 독립서적을 발행하거나 굿즈를 제작해 파는 언리미티드에디션, 사진작업을 판매하는 방식에 대해 아트페어 형식을 빌어 고민하는 더 스크랩이나 작가들이 작품의 대안으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던 굿즈 같은 행사가 꾸준히 열린다면, 대형 비엔날레 없이도 한 지역에서 아트씬이 형성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국제비엔날레나 국제아트페어라는 타이틀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기획의 행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글에선 좋게 말하면 역사가 오래고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인 행사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논의를 하며, 미래를 가늠해 보려 한다. 그래서 우선, 기존의 미술계 대형행사들에 대한 리포트 먼저.   

어찌됐든 2017년 여름, 유럽행 짐을 꾸렸다. 아마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 수행하듯 전시를 찾아보는 대부분의 비엔날레고어들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다람쥐 쳇바퀴같은 순례를 왜 평생에 한번이 아니라 2년에 한번씩 해야하는건가. 2017년 비엔날레의 한국관에 코디최는 <소화불량에 걸린 우주>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비엔날레란 언제나 소화불량에 걸린 현대미술같은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품이 던져주는 질문들과 흥미로움은 다시 또 기꺼이 소화불량을 감당하게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예술은 인간성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예술만세를 외쳤다. 정말, 비엔날레의 제목은 해맑게도 “만세, 예술 만세”였으니까. 당시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던 시점의 세계 정세라면, 브렉시트가 터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유럽 이곳저곳에선 테러가 일어나고, 북핵문제로 3차대전을 염려하는 시국이었다. 정말 어쩌면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예술일까? <뉴욕타임즈>의 홀랜드 카터는 지난번, 혹은 6년 전에야 이 전시가 유효했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너무나 안 좋다며, 예술 만세를 외치는 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투로 총 기획을 노골적으로 부정적이게 비판했다. 카터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예술만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지면에서, 한줄기 밝은 빛은 언제나 예술섹션의 몫이라 믿어본다. 전시만큼 처절하고 척박한 현실을 버티며 일구는 예술 만세, 예술가 만세랄까. 마셀의 전시의 변은 다음과 같았다. “휴머니즘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갈등과 심한 변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가치있는 부분이다(In a world full of conflicts and jolts, in which humanism is being seriously jeopardized, art is the most precious part of the human being).”

Damien Hirst, 'Sphinx' Image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SIAE 2017

사실 이 베니스행에서 가장 매력적인 어트랙션은 피노와 허스트의 만남이었다. 프랑수와 피노 PPR그룹 회장의 공간인 '푼타델라도가나'와 '팔라초그라시'에서 열리는 전시는 매번 비엔날레마다, 본전시 다음으로 찾는 중요코스이지만, 2017년은 유난했다.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란 제목을 달고, 데미안 허스트(Damian Hirst)가 베니스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전시예산만 750억원. 50억원대 예산이 투입된 비엔날레의 15배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는 전시는, 어쩌면, 비엔날레보다 더 큰 이슈몰이를 했다. 허스트는 ‘시프 아모탄 2세’라는 2세기에 살았다는 인물을 설정하고, 보물을 싣고 인도양에 가라앉은 배 ‘아피스토스’도 창조해냈다. 이 난파선이 지난 2008년 발굴됐다는 핍진성있는 시나리오의 증거물을 전시장에 나열한다. 시나리오를 탄탄히 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에는 3가지 에디션이 있다. 허스트는 전시장에 산호 에디션과 복원판, 복제본을 나란히 전시하고 ‘발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풍 영화와 사진기록물을 함께 전시했다. 높이 18m가 넘는 <그릇을 들고 있는 악마(Demon with Bowl)>는 팔라초그라시 중앙공간을 가득채웠다. 완전히 청동 조각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레진에 색을 칠한 것이라고. 진짜와 가짜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데 돈을 엄청 쓴 이 전시는 블럭버스터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나온 느낌과 비슷하다. 영화값이 아깝진 않지만, 두 번 보고 싶다거나, 여운이 길다는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 타임킬링용 영화말이다. 베니스엔 건물 자체가 예술인 공간들도 많고, 베니스비엔날레 시즌에 맞춰 각 공간에서 양질의 기획전도 무수히 열린다.  팔라초포루투니(Palazzo Fortuni)에서 열린 기획전 <인튜이션(Intuition)>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꼭 봐야할 전시로 거론됐다. 마르셀 뒤샹, 윌렘 드 쿠닝, 막스 에른스트, 엘 아낫수이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빼곡한 이 전시장에서 김수자, 박서보 등 한국작가의 작업도 소개됐다. 포르투니가 작업실로 사용했던 건물의 매력도 그렇거니와 공간과 잘 어울리는 공간연출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베니스만큼 이국적인 지역도 드물다. 베니스 본섬에 들어서자마자 이동수단은 오로지 배와 곤돌라, 튼튼한 두 다리 뿐이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이 섬도시에선 허용되지 않는 문물이다. 바퀴와 모터달린 것들이 바삐 다니지 않는 길엔 오로지 사람, 물(술을 포함해서), 예술 뿐. 베니스는 그렇게 비엔날레에 알맞고 예술가에게 적합한 도시로 탄생해, 곧 물에 잠긴다는 유언비어를 이겨내며 지금껏 건재하다. 비엔날레의 존재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면서도, 베니스비엔날레만큼은 궁금증을 찾지 못해 번거로운 여행일정을 짜고 만다. 미술계 계륵이 따로없다. 안 보자니 찝찝하고, 보자니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 막상 비엔날레에 도착하고 나면 내후년 비엔날레에 오고싶다는 생각보다는,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 잔치에 기어코 안 오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결국 2년에 한 번, 난 다시 한 번 베니스 하늘 아래 소환되고 만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안보고 못배기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120년의 넘는 기간 동안 전세계의 유명작가들을 한 도시에 꾸준히 불러모으며 57회를 거치며 세계미술계의 대표행사로 자리매김한 베니스비엔날레는 과연 언제까지 건재함을 과시할까? 


또 다른 현대미술계 성지 하나를 찾아가 볼까.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성공신화는 그 신화를 눈 앞에서 보면서도 여전히 미스테리다. 학생인구가 많은, 자전거가 많다는, 인문학적인 분위기가 강하다는 이 독일의 중소도시는 10년에 한 번 열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미술행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뮌스터라는 도시를 공공미술의 성지로 만들어 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탄생은 시민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다. 1974년 베스트팔렌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클라우스 부스만은 뮌스터시의 의뢰를 받아 미국조각가 조지 리키의 <세 개의 회전하는 정사각형>이라는 고풍스런 도시에 현대적 느낌이 드는 공공미술을 설치했다. 긴 막대에 걸린 정사각형 판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가격은13만 마르크. 뮌스터 시민들은 비싼 세금으로 알 수 없는 현대미술품을 구입하는 데 동의하지 못했다. 거센 항의가 빗발쳤고, 리키의 조각은 서독연방은행이 구입해 시에 기증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뮌스터시는 이 지점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뮌스터시는 이 사건이 시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는 판단에서, 뮌스터 시민들이 인정하는 현대미술을 연구해가는 과정을 ‘조각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달아 1977년부터 시작했다.  클라우스 부스만 관장과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를 공동 기획자로 둔 일종의 연구와 실험이었다. 연구과제가 주어지고, 실험을 통해 그 과제를 수행하며, 결과물은 10년에 한번 제출하는 프로젝트. 뮌스터 조각프로젝트가 10년이라는 긴 준비기간을 가지는 행사가 된 것은 그 시작점을 찾아보면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행사가 아니라, 공부, 연구, 실험 등이 얽힌 말그대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한국의 매체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기원을 헨리 무어의 작품 기증에서 찾는 기사들이 많다. 하지만 외신은 리키의 작품을 기원으로 둔다. 어찌됐든, 현대미술의 조형성을 이해하지 못한 뮌스터 시민을 위해 출발한 프로젝트라는 의미는 동일하다.

가슴 설레는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몇 점을 찾아, 뮌스터 시내 중심의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여행을 하다보면, 한 도시가 현대미술로 이룰수 있는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가 깨닫게 된다. 정말이지 인적도 드문 허허벌판에 미술품 한 점을 보려 모여드는 사람들이라니. 뮌스터를 즐기는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추천하는데, 이제는 판이 너무나 커친 이 행사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버스를 더 권하고 싶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ue)의 〈에프터 어라이브 어헤드(After ALive Ahead)>는  2016년에 폐쇄된 아이스링크 내부를 마치 발굴 현장처럼 탈바꿈시켰다. 콘크리트 바닥을 절단해 흙이 드러나게 하고 천장에는 열렸다 닫힘을 반복하는 전동루프를 달았다. 위그의 애정아이템인 벌집이 있고, 벌이 윙윙 거리며 태고의 자연의 미니어처와 같은 공간을 배회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이 풍경안엔 마치 태고의 지구처럼, 문명이 집어삼키기 이전의 다양하고 조화로운 유기적 움직임이 숨겨져 있다. 뮌스터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이고도 사랑스럽게 구현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의 <지구에게 말을 걸면, 네게 답해 줄거야(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를 꼽는다. 델러는 10년 동안 도시 외곽에서 미니 농장을 함께 가꾸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50가구의 시민농장협의회 사람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며 그들의 활동을 기록한 일기를 보관하길 부탁했다. 그들이 만든 33권의 일기가 고스란히 그 공통체의 아카이브가 되어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작은 농가 마당에 놓인 의자나 담요에 앉아 아카이브를 들춰보며 관객들은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10년간의 대장정의 결과물치곤 소박한 외형이지만, 그 소박함이 작은 정원과 어우러지면서, 현대미술에 지친 관객들에게 신선한 편안함을 제공했다. 

뮌스터란 도시 전체는 말 그대로 지붕없는 현대미술관이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 <거대한 풀 볼>(1977), 도널드 저드의 <무제>(1977), 다니엘 뷰렌의 <4번째 문>(1987), 일리아 카바코프의 <위를 보고, 단어를 읽어보세요>(1997), 수전 필리프스의 <잃어버린 반영>(2007), 로즈마리 트로켈의 <다른 것보다 덜 야성적인>(2007)같은 작품들은 50년 전부터, 차분히 도시에 자리잡은 뮌스터의 친구들이다. 쾨니히라는 한 명의 기획자가 반백년이라는 인생의 대부분을 이 프로젝트를 끌어 온 덕인지도 모르겠다. 무리하거나 서두르는 일 없이 지속성과 안정성을 내세우며 유지해 온 이 행사는 미래를 기약하기가 어렵지 않은 듯 한데, 이외로 이 행사의 지속성을 염려하는 이들이 많고, 그 염려가 구체화되기도 했다. 쾨니히의 나이가 이미 연로해 다음 행사를 기획할 여력이 없고, 이 한 명의 기획자가 큰 축이던 행사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 뮌스터 프로젝트의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랜드 투어를 구성하는 미술계 대형행사 중에 가장 먼저 폐점하는 행사가 뮌스터 프로젝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카셀도큐멘타를 짧게나마 언급해야 하겠다. 카셀도큐멘타는 독일 나치 정권하에서 군수공장의 중심지였던 카셀에서 역사를 계속 자각하는 의미로 시작됐다. 현대미술을 유난히 탄압했던 나치에 대한 반성과, 역사적 상처의 치유를 예술로서 시도해 본 장이었다. 카셀도큐멘타는 1955년 처음 개최됐고, 초창기에는 4년마다 열리다가, 지금은 5년에 한번씩 열리고 있다. 가치있는 현대미술 대형행사로 인정받으면서 2007년 75만 명, 2012년 90만 명, 2017년에는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2017년은 아담 심칙이 예술 감독을 맡아 아테네에 47곳, 카셀에 35곳의 전시장을 만들었다.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주제에 맞게 아테네와 연계해 이원으로 열린 지구적 스케일의 이원행사였다. 4백억원이 넘는 예산에 3백팀이 넘는 작가들이 참여했으니 미술계 대형행사라는 표현에는 진정 걸맞는다.  

카셀시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프리드리히 광장을 중심으로 카셀 도큐멘타는 펼쳐진다. 2017년의 광장의 주인공은 실물대의 파르테논 신전을 금서로 꾸민 마르타 미누힌의 대형 설치작품 <책으로 만든 파르테논>이었다. 광장의 야외공간은 물론 한 켠의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이 주 전시장소가 된다. 이 곳에 아테네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2백여 점을 전시했다. 대체로 사회정치적인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펼쳐지는 이 전시는 결국 인문학으로 돌아가 인간의 삶을 다시 돌아보자는 메세지를 전하는 듯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배우겠다는 태도에서부터, 책이나 유물 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방식들이 모두 그러하다. 한국 출신의 작가인 김수자의 보따리 작품은 아테네 현대미술관 소장품 자격으로 이번 카셀 도큐멘타에 포함됐다. 그의 작품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1층에 다섯 점, 2층에 한 점이 놓였다. 보따리로 세계를 유랑하는 김수자의 작품이 놓인 맥락을 되짚다가, 이 먼곳까지 이 작품들을 보겠다고 온 나의 맥락도 되짚어보게 됐다. 사실은 이 달라지는 맥락들, 작품이 놓이는 위치들, 새로운 주제들이 중요해 미술계의 글로벌 대형행사들이 쉼없이 열리는 것일텐데, 나는 그들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비엔날레며 트리엔날레가 많다 못해 철철 넘쳐나는 시대다. 유서 있는 비엔날레들이 현대미술의 판도에 끼치는 영향력과 성과를 목격하고, 다양한 기관과 나라에서 비엔날레들을 무차별 시도한 까닭이다. 세계적으로 300여개에 가까운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등의 이름을 단 미술국제행사가 있다니 말 다했다. 국내에만 한정해봐도 온갖 현대미술 행사가 국제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의 이름을 달고 100여개는 열리는 것 같으니, 이 수치는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고, 그나마 찾아볼만한 행사들을 세어본 결과일게다. 이들 행사 모두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그 존재가치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을테지만, 실제로 존재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정해져 있다. 물론 가치판단의 기준도 성공의 기준도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이런 우후죽순의 실태를 점검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같은 프렌차이즈야 그 지역의 매출성과로 성패를 가늠하겠지만, 현대미술국제행사의 성공여부를 매체보도에서 찾기도 단순히 관람객수로 찾기에도 어려운 노릇이다. 게다가 이들 행사의 존재이유는 딱히 커다란 성공에 있지도 않고, 지역민들의 축제의 대안이라거나, 지역미술인들의 형식적이고 정기적인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국제나 비엔날레라는 타이틀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카셀 도큐멘타가 저 멀리 아테네에서부터 배움을 다시 찾아보자고 했던 것처럼, 제일 처음 베니스 비엔날레가, 뮌스터 프로젝트가, 카셀 도큐멘타가 생기게 된, 그리고 성공하게 된 원류를 찾아가다보면, 지금의 무수한 B급, C급, 혹은 D급의 국제미술행사들이 실패하게 된, 혹은 성공하려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외형을 따라하기보단, 내부적인 이유를 만들고, 그 이유가 충분해 지역에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소 움직여져서 탄생한 행사들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글도 굳이 적지 않아야 할 것들을 적어내려간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은 초등학교때 배우지만, 너무 오래전에 배운 것들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라, 이렇게 한번씩 굳이굳이 환기를 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마음으로 굳이굳이 적어봤다.     




필자: 이나연 quelpartpress@gmail.com
82년생 이나연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성인기의 대부분은 서울과 뉴욕에서 보냈다. 전공은 회화와 미술평론. 2015년, 제주에서 글로벌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퀠파트프레스를 차려 <뉴욕지금미술>과 <뉴욕생활예술유람기>를 발행했다. 2017년 한영판으로 별도 발행되는 문화예술신문 <씨위드>를 창간했다.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강연을 한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2018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