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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自畵像-나를 보다전
- 전시분류
유물
- 전시기간
2019-03-01 ~ 2019-04-21
- 참여작가
한용운, 김구, 이육사, 김규진, 이회영, 이하응, 김용준 외
- 전시 장소
- 유/무료
유료
- 문의처
02.580.1653
- 홈페이지
상세정보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
2019년 3월 1일(금) ~ 4월 21일(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관 (실험 · 현대 Ⅰ·Ⅱ·Ⅲ 전시실)
주 최 예술의전당 / 후 원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전시소개
예술의전당은 2019년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대한제국을 지나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다양한 관계 인물과 사건들을 글씨와 그림을 통해 돌아본다. 독립운동가의 친필에서부터 당대 최고 서화가의 작품까지 20세기 초를 대표할 각계각층의 서화, 유물,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마치 자화상을 그리듯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서화(書畫)라는 거울로 되돌아보며 빼앗긴 나라, 국권회복을 위해 온 몸을 바친 당대 인물들의 고뇌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주요작품
-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원본, 한용운
-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 원본, 한용운
- <한운야학>, 김구
- <총란도>, 이하응
- <묵란도>, 이육사
- <묵란도>, 이회영
- <금강산 삼선암>, 김규진
- <벽초 선생과 제자 김용준>, 김용준
주요인물
- 조선, 대한제국 : 고종, 이하응, 민영익, 김옥균 등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 한용운, 오세창, 손병희, 권동진 등
- 독립운동가 : 김구, 안중근, 이승만, 이회영, 이육사, 박열 등
- 서화미술 : 안중식, 조석진, 고희동, 구본웅, 이쾌대, 김용준, 가타야마 탄 등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은 오는 3월 1일(금)부터 4월 21일(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을 개최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등록문화재 제664-1호로 지정된 ‘3․1 독립선언서’(보성사판)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근대 인물들의 친필과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서화미술 작품들이 다수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은 “조선, 대한제국을 지나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다양한 관계 인물과 사건들을 글씨와 그림을 통해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의 제목이 <자화상 - 나를 보다>인 만큼 마치 자화상을 그리듯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서화(書畫)라는 키워드로 되돌아보며 당대 인물들의 고뇌와 열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밝혔다. 입장권은 성인 5천원, 청소년/어린이 3천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네이버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2월 28일까지 네이버페이를 통해 1+1 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으며 전시 개막일인 3월 1일(금)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전시기간 중 매일 2회(14시, 17시) 도슨트가 진행되며, 전시 기획자가 직접 설명하는 큐레이터 도슨트가 주1회 진행되어 관람객들의 전시 이해를 돕는다. 3월 9일(토)부터는 매주 토요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친필 최초 공개
3․1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의 친필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된다. 한용운이 3․1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일본인 검사의 요구에 답한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육필 원고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 독립의 서>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내용은 잘 알려져 있었으나 육필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수감 중에 민족대표 48인 일부의 소회를 한용운이 받아서 남긴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의 존재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3․1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던 민족대표, 출소 후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가는 이들의 옥중소회를 살펴볼 수 있다. 최초 공개되는 두 유물은 향후 독립운동사(史)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던 1948년 8월 15일 백범 김구가 경교장에서 남긴 친필 글씨 <한운야학(閒雲野鶴)>도 최초로 공개된다. 이 유물은 김구 선생의 주치의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수정 박병래(1903∼1974)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성베네딕도 수도원이 이어받아 이번 전시 때 처음으로 공개한다. 남북 통합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김구의 뜻이 좌절된 순간, 자신을 한 마리의 학으로 표현했던 애달픈 심정을 글씨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 친필부터 당대 서화작품 한자리에
진정한 ‘문화독립’ 화두로 근대 서화미술의 흐름 살펴
이번 전시의 이야기는 조선 말기에서 시작한다. 시․서․화(詩書畵)란 바로 그 정신이라고 여겼던 조선에서 선비의 인격과 학문은 곧 시서화로 표현되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들에게는 모두 위국의 충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글씨가 있었다. 나라를 잃고 순절한 사람들에게서는 피끓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사람들의 글씨에서는 욕망이 도사리는 그 내면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식민지 조선 땅에서 서화미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예술의전당은 지난 100여 년 간 이 땅의 서화예술이 흘러간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조선말기 고종에서부터 해방 후 김구 선생까지 이 땅의 인물들의 고뇌가 묻어난 친필 유묵이 공개되며, 장승업에서부터 고희동을 지나 이쾌대까지 서화 미술의 변화 양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의 영향, 해방 후 월북으로 잊힌 작가 등 변혁기 한국 서화미술의 자화상(自畵像)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예술로서의 서화(書), 혼(魂)으로서의 서화(書)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있던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에서 외면했던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반추
해방 이후 북으로 건너간 월북 화가도 함께 조명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땅에서 활동했던 일본 화가를 통하여 근대 한국 서화미술의 흐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서화가들은 19세기말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미술을 배웠고, 일본과 꾸준히 교류했다. 강제병합 이후에도 고희동, 나혜석, 김관호 등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으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렸다. 일본 화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출품작가, 미술 교사 등의 역할을 통하여 조선 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외면’보다는 ‘직시’를 통하여 우리가 애써 회피해왔던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근대 서화미술사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활발하게 활약했던 인물들 중 한국전쟁 이후 북(北)으로 건너간 ‘월북작가’도 서화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근원수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용준,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사사하여 조선미술전람회의 단골 입상자였던 정종여, 김기창․장우성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리석호(이석호) 등에게서 분단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절반의 미술사를 마주해본다.
<최초공개>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3․1독립선언 주역 옥중시 원본 (1919년)
한용운
종이에 먹
개인소장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한용운이 191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일본인 검사 총장의 요구에 의하여 작성한 옥중 독립 선언문이다. 옥중에서 아무 참고서 하나 없이 53장에 걸친 조선독립에 대한 대선언을 남긴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정신이 구체적으로 담긴 대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만해 한용운을 옥중 뒷바라지를 한 김상호에 의하여 임시정부에 소개되었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제25호에 전문이 게재되었다. 흔히 <조선 독립의 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알려져 있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는 3․1독립운동의 주역인물들인 민족대표 48인 중 길선주, 김선두, 김완규, 백용성, 신석구, 이갑성, 이종일, 임예환, 정노식, 최남선, 한용운, 함태영, 홍기조 등의 심정을 받아 적은 글이다.
한운야학 閑雲野鶴 (1945년)
김구
종이에 먹, 34.5×133.5cm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던 1948년 8월 15일, 백범 김구가 경교장에서 남긴 친필 유묵이 최초로 공개된다. 꿈에 그리던 광복 후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 사상으로 대립하던 시기, 김구는 ‘남북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였지만 끝내 이승만은 남한 단독 선거를 위한 5.10 총선거를 시행하였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휘몰아친 갈등과 화합, 끝내 통일 정부를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 속에서 ‘그 날’ 백범은 네 글자로 그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다.
* 閒雲野鶴(한운야학) 한가로운 구름 속의 들판 위의 학.
해방의 함성도 멀어지고 통일조국의 염원이 현실에 발 딛지 못하게 되자, 혼자 나는 학 한 마리가 당신 자신이라고 느낀 것이다. 김구는 임시정부 시절부터 많은 글씨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씨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大韓民國 三十年 八月十五日 臨時政府 主席 辦公室)이라고 분명히 기록하여 단독정부가 수립되던 날의 시점을 분명히 한 유묵이기 때문이다.
<주요 전시작품>
3․1 독립선언서 (1919년)
종이에 인쇄, 20.5×45.8cm
예술의전당 소장
등록문화재 제664-1호
<3․1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2월 20일 보성사에서 약 35,000장을 인쇄하여 배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술의전당 소장본은 현전하는 독립선언서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 중 하나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위창 오세창의 유족이 예술의전당에 기증하였으며, 우측 하단에는 오세창의 인장이 찍혀있어 그 출처가 확실하다. 2016년 등록문화재 제664-1호로 지정되었다.
총란도
이하응 (흥선대원군)
종이에 먹, 43.3×174.6 cm
개화공정미술연구소 소장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으로 잘 알려진 이하응은 서화(書畫)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추사 김정희에게 배우며 극찬을 받기도 한 이하응의 묵란도는 석파란(石坡蘭)으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묵란도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주식송(周植松), 오아회(吳雅懷) 두 중국인의 제(題)를 확인할 수 있다.
김상옥 의사의 장렬한 최후
구본웅
종이에 펜, 23.5×14.7 cm
개인소장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조선총독의 암살을 계획했던 김상옥 열사의 최후의 순간을 그린 구본웅의 펜화 작품이다. 구본웅은 김상옥 열사가 수백 명의 무장경찰에 포위되어 총격전을 벌이던 효제동에서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광복 이후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
아침 7시. 찬바람. 섣달이 다 가도 볼 수 없던 눈이 정월 들자 내리니 눈바람 차갑던 중학 시절 생각이 난다.
아침 9시. 찬바람. 눈 쌓인 벌판. 새로 지은 외딴 집 세 채를 에워싸고 두 겹, 세 겹 늘어선 왜적의 경관들
우리의 의열 김상옥 의사를 노리네.
슬프다 우리의 김 의사는 양손에 육혈포를 꽉 잡은 채, 그만.
아침 7시. 제비 (김상옥 의사의 별명), 길을 떠났더이다. 새 봄이 되오니 제비시여 넋이라도 옵소서.
묵란도(정인보 찬),
묵란도(오세창 찬) (1920년대)
이회영
종이에 수묵, 155×55cm, 166.5×50cm
우당기념관 소장
나라를 빼앗기고 자결이 이어졌다. 더 이상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무장투쟁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사람이 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이회영은 만주에서 광복군을 양성할 것을 결심하고 집안 형제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왜적과 혈투하신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다’ 6형제는 만주로 떠나기로 합의한다. 재산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신의주로, 다시 압록강을 건너 안동현에 1910년 12월 27일에 도착한다.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만주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한다. 이회영의 묵란도는 1920년대에 그린 작품이다. 이회영의 <묵란도>는 독립운동 자금모금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그 작품성과 가치가 뛰어났다.
정인보는 다음과 같이 찬하였다. (左)
우당 이선생은 광복을 위해 애쓰느라 지극히 고심하였다.
때때로 난초를 그렸는데, 정채가 유난히 빼어났다.
이춘호군이 예전에 계주에서 선생을 따르다가 이것을 한 장을 얻었는데,
펼쳐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기축년(1949), 정인보鄭寅普 삼가 쓰다.
오세창은 다음과 같이 찬하였다. (右)
우당 지사가 갑자기 신선이 되었는데
해관海盥이 이를 가져오니 갑절로 서글프네
비 내리는 산방에서 한 번 펼쳐 읽으니
하늘 너머 고운 풀이 꿈처럼 아련하네
계유년(1933) 여름, 위창葦滄이 입으로 불러 쓰다.
서둘러 쓰느라 공교롭지 않다.
묵란도 (1944년)
이육사
종이에 먹, 24×33.5cm개인소장
이육사(1904-1944)가 1944년 1월 6일 감옥에서 남긴 작품으로 친구인 신석초에게 준 것이다. ‘依依可佩(의의가패)’는 풀이 무성하여 싱싱하게 푸르니 가히 경탄할 만큼 훌륭한 지경이라는 의미이다.
금강산 삼선암 (1926년)
김규진
종이에 수묵, 27.2×24cm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장
김규진(1864-1933)은 서화가이자 사진사였으며 근대시기 서화연구회 창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역임 등을 통해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규진은 1920년 창덕궁 희정당 벽화 제작을 맡아 금강산을 대작으로 완성시키기도 했다.
벽초 선생과 제자 김용준 (1948년)
김용준
종이에 먹, 62×33.5cm밀알미술관 소장
김용준(1904-1967)은 화가이자 미술평론가로 근대기 한국 미술사 연구와 미술비평으로 큰 기여를 하였다. 수필집 <근원수필>은 한국 수필의 백미로 평가받기도 하는 등 예술계의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한국전쟁 이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였다. <벽초선생과 제자 김용준>은 역시 월북한 소설가인 벽초 홍명희와 본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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