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글이 있는 그림- 화가와 가정주부/ 윤석남

sosoart 2019. 7. 10. 16:42

http://www.daljin.com/column/17045


글이 있는 그림 

 

(187)‘화가’와 ‘가정주부’

윤석남

Self portrait, 1993, acrylic on wood, ladder, 45×90×10cm, Artist’s collection


내 나이 40세 되던 봄에 화가의 길로 들어설 것을 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40代이건 60代이건 심지어 70代라고 하더라도 이 사회에 한 발을 담그고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직업을 택하는 것이 모순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직업도 그 결과물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의 훈련 시간이 필요한 것이므로 “화가”라는 애매한 직업도 하나의 당당한 직업이라고 우기면서 여기까지 왔다. 마찬가지로 “가정주부” 또한 하나의 직업군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Going Out, 2003, Acrylic on wood, 56×60×6cm, Kamakura Gallery Collection


다만 이 2개의 직업의 공통되는 문제점은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일에 종사하는 나는 이 일들이 “직업”이라고 말하기 위해 어찌 보면 자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해석을 하고 있다. “가정주부”의 일로 나한테 주어지는, 비록 많지는 않은 액수일망정 노동의 대가를 그림 그리기에 투자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기면서 40여 년을 지내왔다. 오늘날에 와서 화가로서의 직업을 가정주부에서 독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비록 큰 것은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림 작업에 드는 비용을 그 결과물의 결과에서 얻는 것이므로 이제야 비로소 직업인으로서의 “화가”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Self portrait, 2018, color pigment on hanji, 72×94cm



“가정주부로서의 수고비에서부터 미술가로서의 직업인으로 독립했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많은 여성의 고뇌와 우울을 나는 한시도 잊고 싶지 않다. 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사회의 모순을 이겨보려고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21세기를 사는 한 여성 화가도 자기의 삶을 이리저리 합리적으로 꽤 맞히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 당시 자신들의 존재와 생존에 대한 그들의 뼈저리는 고초에 가슴이 저려온다.

다음 몇 년 동안 나의 작업세계는 이들의 슬픈 아름다움과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비애를 담고자 노력할 것이다.


- 윤석남(1936- )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그래픽센터, 아트스튜던트 리그 수학.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 역임. 1996 이중섭미술상, 1997 국무총리상, 2007 고정희 상, 2015 김세중 조각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