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포커스광장을 통해 살핀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1·2부/ 국립현대미술관

sosoart 2019. 10. 15. 20:24

http://www.mmca.go.kr/pr/blogDetail.do?bId=201910150000291


포커스광장을 통해 살핀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1·2부


1. 김홍주, <문>(1978) 2. 신학철, <묵시802>(1980) 3. 이석주, <일상>(1985) 
4. 장민승,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들판>(2014)

1. 김홍주, <문>(1978) 2. 신학철, <묵시802>(1980) 3. 이석주, <일상>(1985)
4. 장민승,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들판>(2014)

전시정보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 1900-1950, MMCA덕수궁, 2019.10.17~2020.02.09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 MMCA과천, 2019.10.17~2020.03.2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과천, 서울은 개관 50년을 기념하여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3부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벌어진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문화와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 거시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이다.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해방 전후 20세기 전반기를 아우르는
1부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한국 전쟁시기부터
2019년 현재까지를 탐색하는 2부 전시는 과천에서 개최한다.
지난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3부 전시가 먼저 시작된 이후
오는 10월 17일에 동시에 공개되는 1·2부는 어떤 모습일지 함께 확인해보자.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 1900-1950

국립현대미술관은 20세기를 관통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미술 역사를 조망하는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3부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의 양식이나 유파를 다루는 기존의 통상적인 방식을 탈피하고 격동의 한국 역사를 중심축으로 놓은 채, 예술이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조응해 갔는지 살펴본다. 특히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따온 전시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여전히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개인과 집단이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이슈화되고 재해석 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 1900-1950는 19세기 말 개화기에서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에서도 ‘의로움’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래도록 후세에 기억되어야 할 올곧은 인물들의 작품에서부터, 망국의 시대에 붓을 잡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미술 작품뿐 아니라 근대기 신문과 잡지, 문학, 연극과 영화 자료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들을 총망라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공존했던 역동적인 한국의 근대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작품들을 맛보기로 살펴보자.

안중식, <『아이들보이』 제 7호, 표지>(신문관, 1913) 안중식, <『아이들보이』 제 7호, 표지>(신문관, 1913) 나혜석, <개척자>(『개벽(開闢)』 제 13호 중에서)(개벽사, 1921.7) 나혜석, <개척자>(『개벽(開闢)』 제 13호 중에서)(개벽사, 1921.7)

19세기 한반도는 세계열강들의 제국주의 야욕 속에서 쇄국과 개화라는 갈림길에 선채 격변기를 맞았다. 이때 엄청난 재산을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에 모조리 바쳐 말년을 가난하게 보냈던 사대부 출신의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군자’를 그리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절개와 의로움을 상징하는 사군자는 마음의 다짐과 수양이며 우정과 교유의 징표이고,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반도 전역과 만주,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평생 일제 경찰에 쫓겨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했던 이들에게, 현존하는 사군자는 의미 있는 역사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당시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채용신은 고종을 비롯해 조선 왕조의 어진을 그린 어용화가로, 1906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전라도로 낙향해 지역 우국지사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우 초상>의 주인공은 간재 전우(1841~1922)라는 인물로, 을사늑약 오적을 처단할 것을 상소했다. 전우는 경술국치 후에는 전라도의 작은 섬들을 옮겨 다니고 학문을 전파하며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우국지사였다. 채용신은 전우가 1919년 고종이 붕어한 후 백관과 상복을 입고 3년 상을 치르는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있었던 만큼 의문이 많았던 고종의 죽음 앞에서, 간재 전우의 초상을 그린 채용신의 마음이 드러나듯 그림 전반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채용신, <전우 초상>(1920) 채용신, <전우 초상>(1920) <조선광문회 광고(부분)>(1910년경) <조선광문회 광고(부분)>(1910년경)

1920년부터 1930년대 전반 시기에는 인쇄와 출판 사업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 일본 조선총독부에 의한 이른바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 주도의 언론, 출판, 교육의 장이 어느 정도 열렸던 것이다. 비록 철저한 검열과 제도와 완벽한 이중 구조 속에 만들어진 시스템이었지만, 그 비좁은 틈을 뚫고 『창조』, 『백조』, 『폐허』, 『개벽』과 같은 잡지, 그리고 여러 종류의 소설집과 시집 등이 세상에 나왔으며 이와 같은 일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조선광문회는 1910년 최남선의 주도로 만들어진 고전물 간행 단체로, 비록 나라는 잃었지만 민족정신은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전해 오는 귀중한 고서(古書)를 수집, 편찬, 개간했다. 또한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글자를 모아 만든 <조선광문회 광고>를 통해 선조들의 위엄을 보존·계승하고자 하는 광문회의 취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점차 성장하는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던 신분제가 사실상 무색해지는 대신, 대중이라는 개념이 문화 현상 전반을 지배했고 각종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중섭, <세 사람>(1944~1945) 이중섭, <세 사람>(1944~1945) 이쾌대, <군상IV>(1940년대 후반) 이쾌대, <군상IV>(1940년대 후반)

아울러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 고유의 미학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이쾌대, 최재덕, 김환기, 이중섭 등 한국 근대미술사를 빛낸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이들은 일본에서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세계의 조류를 파악하는 한편, 조선의 전통 미학을 어떻게 서양의 흐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소담한 백자의 미학,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고대적 상상력과 힘찬 기운, 수묵화에서 기원한 유려한 선 표현 등을 강조하면서, 이들은 ‘조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각자의 방식을 찾아 나갔다.

이중섭의 <세 사람>에서는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각기 다른 자세의 인물들이 눈을 감거나 가린 상태로 절망감과 허무감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그가 일본에서 유학한 후 1943년 태평양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때 가족이 있던 원산으로 귀국하여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 강점기 중 가장 암울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드러누운 소년의 힘찬 왼손과 오른발의 강렬한 선들을 보면, 작가는 이 암담한 현실을 뚫고 나올 강인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적 서양화를 개척한 화가’로 불리는 이쾌대의 <군상IV>는 공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화폭에 마치 곧 일어날 동족상잔의 비극, 즉 한국전쟁을 예고하듯 수많은 인물이 울분과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 싸우며 뒤엉켜있다. 하지만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듯, 화면 왼쪽의 어린아이를 포함한 몇 명의 무리가 암흑세계를 뒤로 한 채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되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크나큰 아쉬움이 남지만, 그 쓰라린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20세기 후반기와 2019년 현재까지를 다루는 <광장: 미술과 사회 1950-2019> 2부. 1950-2019에서는 어떤 전시가 우리를 기다리는지 확인해보자.

<광장: 미술과 사회 1950-2019> 2부. 1950-2019

<광장: 미술과 사회 1950-2019> 2부. 1950-2019는 한국 사회와 현대미술의 상응 관계를 살펴본다. 이 전시에서는 사회와 개인의 삶 속에서 작가와 작품들이 서로 순환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문학, 연극, 커미션 작품 등으로 상호 교차하고, 편집하거나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다각화시켰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전시실에서는 한국 사회라는 ‘광장’에서 예술가들이 권력을 비판하고, 새로운 양식을 통해 이상향을 찾기 위해 해왔던 노력을 탐색한다.

변월룡, <1953년 9월 판문점 회담>(1954) 변월룡, <1953년 9월 판문점 회담>(1954) 김형대, <환원 B>(1961) 김형대, <환원 B>(1961)

첫 번째 공간에서는 가장 먼저 1950년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사회의 흐름에 따라 동시대 한국미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여준다. 먼저 남북한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을 진행했고, 그해 8~9월에는 약 한 달에 걸친 포로교환을 실시하기도 했다. 변월룡이 제작한 <1953년 9월 판문점 회담>이라는 작품은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1953년에 열린 휴전 회담장을 보여주며, 사람하나 없는 회담장의 풍경을 담아 쓸쓸함을 전한다. 특히 판문점 내부와 창문으로 보이는 외부의 밝은 색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판문점 회담 이후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 미국의 경제 원조와 함께 진행되었다. 동시에 이승만 정권의 독재는 4·19 혁명으로 무너졌고, 혁명의 열정은 5·16 군사 쿠데타라는 시련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 변동에 조응하며 미술과 문화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쿠데타로 성립된 정치 체제가 사회통제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가동하며, 새마을 운동을 내세운 경제 발전과 1970년대 암울한 유신 시대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때 김형대가 <환원 B>로 국전 최고회의장상을 수상함으로써 앵포르멜이 주류 양식으로 공인되었는데, 이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기존 흐름의 전복을 주장한 시대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대중의 몰이해와 경직된 사회 상황으로 인해 짧은 기간의 산발적인 활동으로 묻히고 말았다.

김홍주, <문>(1978) 김홍주, <문>(1978) 이석주, <일상>(1985) 이석주, <일상>(1985)

국가주도의 개발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여러 변화를 일으켰다. 대규모 아파트 건립으로 마당과 옹기가 사라졌고, TV, 냉장고 등 산업 디자인이 발전하면서 주거 문화의 풍경이 급속히 바뀌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 등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행해졌던 건축과 디자인은 발전했지만, 이 시대는 유신체제가 공고화된 모순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는 화려한 경제발전 속에 숨겨진 노동착취가 드러났던 비극이었다. 이 시기는 실험과 전위를 지향하던 미술 활동도, 통기타로 대변되는 음악 활동도, 청년 문화와 함께 탄압받았기에 1970년대부터 예술가들은 민전(民展)을 중심으로 김홍주의 <문>, 이석주의 <일상>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최병수, <한열이를 살려내라>(연도미상) 최병수, <한열이를 살려내라>(연도미상) 송상희, <신발들/243.0Mhz>(2010~2011) 송상희, <신발들/243.0Mhz>(2010~2011)

1980년대에는 신군부의 집권과 광주 민주항쟁이 일어나며 한국 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했다. 이 시기의 광장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는데, 사회를 향한 미술계의 발언이 여러 시위 현장의 요구와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표출된 것이다. 목수화가로 불리는 최병수는 한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가 제작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의 현장에 직접 쓰였던 것으로 흑백의 대비가 강렬할 느낌을 준다. 시위 도중 전경에 의해 사망한 이한열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민중미술의 이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는 풍족함을 누렸다. 이 시기 정권은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안으로는 도시 개발을 진행했고, 밖으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서울의 모습을 선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발언을 담아내는 리얼리즘 운동으로 상응했다. 송상희의 <신발들/243.0Mhz>는 1980년대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물음으로 발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소야라는 곳은 대한항공 007편이 구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격추되어 폭파된 곳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하원의원을 포함한 탑승객 269명이 사망하였고, 유족들은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소련에게서 탑승객들의 신발만을 돌려받았다. 송상희는 작품을 통해 여전히 어디에선가 떠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신발들처럼, 말없이 떠도는 하위주체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사건 다루기는 작가 자신이 처한 시스템을 올바로 보기 위한 노력중 하나로, 시대 이면에 도사린 빛과 어둠을 내보이는 역할을 한다.

이후 2000년대에 밀레니엄과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가 오자 한국은 ‘행동하는 네티즌’이 등장했고 새로운 형식의 발언을 광장에서 선보였다. 이에 한국 현대미술은 국제적인 교류와 함께 탈경계의 미학적·사회적 관계를 실천하는 현실주의 미술의 양상을 띠었다. 이 시기 신미경은 6점의 중국풍 도자기들을 비누 조각으로 만들어 제작했는데, 비누 조각의 소재가 된 도자기들은 실제 중국인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기보다는 수출을 위해 서구인들의 취향에 맞춰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아무리 비누로 도자기를 재현한다고 해도 실제 흙으로 빚은 도지기와는 완전하게 똑같을 순 없다는 사실과, 예술에는 정답이 없는데 마치 서양의 것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권위를 비틀고자 했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시리즈>(2006~2013) 신미경, <트랜스레이션시리즈>(2006~2013) 장민승,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들판>(2014) 장민승,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들판>(2014)

두 번째 공간은 원형 전시장에 실제 ‘광장’을 구현한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광장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른 곳이다. 그래서 미술관은 이들을 위해 전시장을 기억과 애도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 전시실에 걸린 예술가들의 작품은 일종의 헌화와도 같은 행위가 되고, 이는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될 예정이다. 이 공간에서는 예술가들의 기억과 감수성으로 ‘현대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중 세월호 사건을 겪고 큰 상실감을 느낀 장민승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고, 이 작품 등을 통해 시대의 비극들을 엄숙하게 기억하고자 한다.


<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2부는 우리가 오늘날 미술관을 찾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목 놓아 자유를 외친 이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파란만장한 한국사의 어두운 부분을 기록한 예술가들의 혼을 기억하며, 가슴이 뜨거워질 준비를 하고 광장에 들어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