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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병사들은 어린 소년들이였다 김성환의 <6.25 스케치>/ 김예진

sosoart 2019. 10. 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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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병사들은 어린 소년들이였다 김성환의 <6.25 스케치>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8일 정릉부근에서 들리는 총성소리>(1950)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8일 정릉부근에서 들리는 총성소리>(1950)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명화 이야기
19살 청년의 눈에 비친 전쟁, 고바우 김성환의 <6.25 스케치>

고바우 김성환 화백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1949년 18세 되던 때에 만화가로 데뷔하여 70년간 만화를 그리며 한국 사회를 촌철살인의 정신으로 풍자한 인물이다. 김성환의 만화 <고바우 영감>은 무뚝뚝한 고바우 영감을 내세워 서민의 시선을 통해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여 큰 인기를 끌었으며, 최장수 연재만화로 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만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문만화 시대를 연 만화계의 대부, 김성환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김성환이 한국전쟁 중에 그린 105점의 스케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성환은 1932년 황해도 개성(당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는 부친 김동순(金東淳)을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 김동순은 1920년 김상옥, 윤익중과 함께 암살대를 조직하고 일제의 주요 기관 파괴나 친일파 암살 등의 무장투쟁을 도모하다 체포되어 10여 년간 투옥되었고 그 뒤 만주로 옮겨 활동하였다. 해방 후 그의 가족들은 서울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곤란을 겪어야 했다. 김성환은 경복중학교(현재의 경복고등학교)에 편입하면서 하숙집에 기거하였는데, 신문 배달을 하는 하숙집 친구에게 만화를 건넨 것이 계기가 되어 『연합신문』에 네 컷 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게 되었다. 1949년,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이후에는 월간지 『화랑』과 『만화뉴스』 등에도 만화를 연재하고 월급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학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8일 국군병사의 죽음>(1950)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8일 국군병사의 죽음>(1950)

이처럼 고교생 김성환은 우연한 기회에 만화가가 되었는데, 그의 분신과도 같은 ‘고바우’가 탄생한 것은 흥미롭게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길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서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 당시 정릉에 살던 김성환은 의용군 징집을 피해 다락방에서 90일 정도를 숨어서 지내야만 했다. 이때 그가 그린 수백 장의 만화 캐릭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바우’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성환은 전쟁이 시작되고 서울이 함락되기 전까지 돈암동, 혜화동 일대를 돌며 어수선한 서울의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전쟁으로 농사꾼이 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영민한 김성환은 밀짚모자를 쓰고 농사꾼 행사를 하며 스케치를 했다. 스케치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김성환의 모습이 자주 발견되는데, ‘밀집모자의 김성환’은 시대의 증언자로서 자신이 보고 체험한 전쟁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50년 9월 28일 드디어 서울이 수복되자, 김성환은 서양화가 김병기의 추천으로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 근무하면서 시사만화, 삐라, 주간 만화잡지 『만화승리』와 『육군화보』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북한군 점령 하에서 많은 화가들이 부역 활동을 했기 때문에 만화를 그릴 사람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1951년 가을에는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 소속 기자로 중부전선 6사단을 방문해 최전방의 전투 현장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사들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가 전쟁터에서 만난 병사들 대부분은 어린 소년들이었다.

“전장에서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10대들이 많아요. 대부분 겁이 없었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희생한 것이죠. 전쟁은 항상 그래요. 그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2016년 7월 26일 『국방일보』와의 인터뷰 발췌-

김성환은 『국방일보』 와의 인터뷰에서 “시신이 산산조각 나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수습할 수 없었던 참혹한 전쟁”이었다고 말하며 1951년 장병들과 전쟁터를 누비던 20세의 시절을 회상했었다. 도륙(屠戮)의 현실을 맞닥뜨리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화필을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극적으로 과장하거나, 전쟁의 참상을 감성적으로 호소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저 자신이 목도한 아비규환의 현실과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생각이 더 컸던 것처럼 보인다. 스케치의 모서리마다 적혀있는 날짜와 장소에 대한 표기에서 70년 전 김성환의 의중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슷한 또래들,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소년들이 전쟁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 나뒹구는 시체를 두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민낯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9일 북조선군 소년병>(1950)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6월 29일
북조선군 소년병>(1950)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10월 종로5가의 시체들>(1950) 김성환, <6.25스케치 1950년 10월 종로5가의 시체들>(1950)

김성환, <6.25 종군스케치 1951년 10월 25일 사단 정훈부>(1951) 김성환, <6.25 종군스케치 1951년 10월 25일 사단 정훈부>(1951)

김성환, <6.25 종군스케치 1951년 10월 28일 참호입구에서>(1951) 김성환, <6.25 종군스케치 1951년 10월 28일
참호입구에서>(1951)

현재 남아 있는 <6.25 스케치>는 1950년 6월 전쟁 직후 서울 일대의 모습, 그리고 1951년 가을과 1952년 7월 전장을 그린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만화가 김성환의 <6.25 스케치>와 국민만화 캐릭터 ‘고바우’가 모두 1950년 전쟁 중에 탄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태어나 반세기 동안 한국의 정치와 역사를 같이 해 온 ‘고바우’와 함께, 역사가들이 기록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을 기록한 ‘밀짚모자의 김성환’도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혼란한 시대를 기록한 김성환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

김예진 학예연구사
미술사학 박사, <근대 서화의 요람, 경묵당>(2009, 고려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2015),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2019) 등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