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컬럼-공장형 미술가의 부상이 환기시킨 미술의 변화, 또는 미술의 본질 / 반이정

sosoart 2019. 11. 8. 20:04

http://www.daljin.com/column/17453


2019 ② 공장형 미술가의 부상이 환기시킨 미술의 변화, 또는 미술의 본질

반이정

2019 ②
공장형 미술가의 부상이 환기시킨 미술의 변화, 또는 미술의 본질 


반이정 미술평론가




작품과 그것을 제작하는 한 명의 미술가. 미술품은 단 한 명의 천재적인 자각의 손으로 완성된다는 통념이 미술계 안팎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 통념은 진실에 가깝다. 그렇지만 흔치 않게 미디어에 소개되는 초대형 작품을 내놓는 미술가의 경우, 작품 제작자의 이름표에 미술가 개인의 이름만 기록되지만 물리적 제작 공정의 대부분이 외주에 의해 완성되는 예들은 많다. 이처럼 또 하나의 진실이 공존함에도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통념은 신앙처럼 믿어지는 경향이 크다. 



무라카미 다카시 500 나한도 전시 포스터 2015년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 순회를 하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14년 만에 모국에서 연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500 나한도羅漢図 Takashi Murakami: The 500 Arhats>(2015.1031~2016.0306 모리 미술관 Mori art museum)의 전시 홍보 문구 중에는 “미술사상 초대형 회화 중 하나”가 있다. 높이 3m에 길이 100m에 이르는 회화를 전시장 양쪽 벽으로 이어붙인 작품이 있으니 전시 제목으로 쓰인 <500 나한도>다. 이 작품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으로, 당시엔 완성작이 아니었으나, 모국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 완성작 <500 나한도>을 내놓았다. 높이 3m에 길이 100m에 이르는 초대형 회화를 무라카미 다카시 혼자서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작품이 일본의 미대생 300여 명 등 전문 인력의 협업이 밑받침된 결과물이라는 공개되었다. 그만큼 주문-제작 시스템은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공장형 미술가에겐 숨길 수 없는 진실이며, 비록 소수여도 이 같은 공장형 미술가의 작품과 전시가 미술계 안팎의 화제를 이끄는 만큼 주문-제작 시스템은 예외적인 창작 방식이라고 할 수 없는 처지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최신 회화에선 붓 자국을 찾기 어렵다. 마치 인쇄물처럼 매끈하다. 인쇄물의 망점 패턴을 정교하게 캔버스에 올린 그림들이 전시장에 걸려있다. 망점 인쇄 패턴을 캔버스에 정교한 수공으로 옮겨와, 동시대의 대량 복제라는 뉴미디어 문화를 회화라는 올드미디어 문화와 공존시키는 것 같다. 조각 작품도 마찬가지. 요컨대 애니메이션 화면 혹은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활활 타오르는 가느다란 불길을 카본 소재의 입체조형물로 제작했다. 망점 인쇄 패턴을 캔버스에 올린 광택 도는 회화나, FRP나 카본에 금박을 입힌 애니메이션 같은 조각을 통해 무라카미 다카시는 평면과 입체를 지배해온 유구한 제작 공정을 동시대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런 정교한 화면처리와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전방위적 창작 역시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의 협조가 없으면 성사되기 힘든 과제들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500 나한도 전시 광경 2015년


세계를 무대로 초대형 볼거리를 전시하는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대형 작가의 출현이나, 그의 작품 도판마다 따라붙는ⓒ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라는 표기는 미술의 규정이 급변하는 동시대의 사정을 보여준다. 가로세로 3x100m 규모의 <500 나한도>를 제작할 때 일본 미술 대학생들이 200명 이상 동원되었다는 보도 자료나, <727>처럼 그의 대표작들이 조금씩 변형되어 반복적으로 전시장에 등장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무라카미 다카시를 개인 예술가보다 브랜드 현상으로 읽게 된다. 그가 작품을 주식회사를 통해 제작 판촉 하는 데에서 보듯, 다카시의 예술은 상품이 제작되고 판촉되는 공식과 다르지 않다. 일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과 밀도를 지닌 스펙터클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요구로 최적화된 기업형 미술가가 탄생하고 있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 일본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는 패키지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었다.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 500 나한도羅漢図 Takashi Murakami: The 500 Arhats>(2015.1031~2016.0306)를 전후로, 두 개의 상호 보완적 전시들이 열렸다. 모리미술관 개인전의 제목으로 쓰인 <500 나한도>가 참조한 원형은 에도 시대 일본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그 가운데 카노 카즈노부Kano Kazunobu 탄생 30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200th anniversary of the artist’s birth: Kano Kazunobu’s five hundred arhats>(1부: 2015.1007~1227/ 2부 2016.0101~0313)가 같은 시기에 모리 미술관과 멀지 않은 도쿄 조조지 유물 전시장Zojoji Treasures Gallery에서 개최되었다. 또 요코하마 미술관도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 플랫 소장품 Takashi Murakami’s Superflat Collection>(2016. 0130~0403)을 열어 다카시에게 영향을 준 세계의 예술가들과 공예품, 그리고 그의 미학적 기호를 살펴보게 만들었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연관된 세 전시회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면서 무라카미 다카시는 예술가 일개인이 아닌 문화 현상처럼 독해 된다.



제프 쿤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Liebieghaus 전시 광경 2012년


동양의 공장형 미술가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있다면, 서구에는 제프 쿤스가 있다. 그는 미술가보다 셀러브리티처럼 대중 앞에 선다.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양팔 넓게 벌려 껴안는 위풍당당한 제스처는 제프 쿤스 고유의 매너가 되었다. 2012년 여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미술관 두 곳에서 열린 개막식 날도 자신의 회화와 조각품 앞에서 예의 양팔을 벌려 능숙하게 촬영 기자들을 맞았다. 제프 쿤스를 단순히 80년대 포스트 팝의 시원 정도로 분류하는 건, 제프 쿤스의 현재진행형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한정적인 평가일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제프 쿤스 개인전(2012.0620~0923) 은 공장형 미술가답게 자신의 무수한 작품을 회화와 조각이라는 두 개의 장르를 각기 두 개의 전시장에 배치하고 있었다. 전시는 그가 이룬 성과를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망라한 회고전의 형식을 취하는데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미술관 두 곳에서 '화가'와 '조각가'라는 전시 타이틀을 내걸어 전시되고 있다. 제프 쿤스의 독일 개인전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회화를 다룬 쉬른 미술관(Schirn Kunsthalle)이 공개한 미발표 신작과 조각을 전담한 리비히하우스(Liebieghaus)의 특이한 작품 진열 방식에 있다. 리비히하우스는 같은 전시실 안에 미술관이 소장한 고대 조각품들과 제프 쿤스의 출품작을 나란히 병치시켜, 둘 사이에 가로놓인 긴 세월의 켜를 느끼게 했고 상이한 스타일이 서로 충돌할 때 만들어지는 미적 긴장감도 전시실 내부를 감쌌다. 


제프 쿤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Schirn Kunsthalle 전시 광경 2012년


19세기 후반 지어진 리비히하우스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중세는 물론 극동지역 조각품까지 두루 갖춘 고전 조각품 전문 박물관이다. 소비사회를 재현한 제프 쿤스의 현란한 입체 조형물을 소장 유물 사이사이에 진열시켜서 전시의 방점은 주빈인 제프 쿤스에게 두되 그의 초대작과 박물관 소장품을 두루 관람하게 만들었다. 멸균된 백색 실내에 현대 미술품을 줄지어 늘어놓곤 하는 고만고만한 전시 공학으로부터는 얻기 힘든 미묘한 감흥에 젖게 된다. 품격을 보존한 구시대 시공간 속에 제프 쿤스가 개입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프 쿤스의 최초 프랑스 회고전은 베르사유 궁전의 신고전주의 실내에서 2008년 열렸다. 당시 그 보기 드문 전시회를 성사시킨 후원자는 프랑스의 백만장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pinault)였다.


회화와 조각을 장르적으로 양분한 제프 쿤스의 독일 개인전을 보는 관점도 크게 둘로 압축되지 싶다. 첫째. 업계 최상층에 위치한 만큼 동시대 시각예술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의 최대치를 누구보다 쉽게 통찰할 수 있을 게다. 그는 전문 어시스턴트 그룹으로 하여금 최고 완성도의 결과물을 생산하도록 통솔하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공장장으로서 자신을 규정한 건 앤디 워홀이 현대 작가로선 시조로 간주되지만, 120여 명이나 되는 근무자를 가동하는 제프 쿤스의 스튜디오는 그 같은 작가적 정의를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제프 쿤스의 제작 현황은 오늘날의 작가 위상과 여전히 1인 제작 체제로 가동되는 현대 미술의 제작 관행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화가'라는 전시 타이틀을 내걸어 제프 쿤스의 회화 연대기를 보여준 쉬른 미술관에선 신작 <유물 Antiquity>을 만날 수 있다. 상호 개연성이 낮은 사물들을 병치시킨 점에서 제프 쿤스의 기존 화면 구성과 다르지 않은데, 다만 고대 유물과 현대적 소비재를 뒤엉켜놓은 초대형 회화이다. 그림 속에 어시스턴트들이 그려 넣었을 망점 무늬는 일견 캔버스 위에 사진 인쇄물을 올린 것으로 오인할 만큼 정교함이 뛰어나다. 극사실주의 회화의 일반적인 매력이 재현 대상을 능가하는 소묘에 있다면, 제프 쿤스의 포토리얼리즘 회화의 매력은 얼핏 인쇄물로 오인하게 만드는 유화 수작업 공력에서 나온다. 망점 인쇄를 고스란히 유화로 옮긴 장인적 화면은 감동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프 쿤스의 미술공장 격인 스튜디오 'Jeff Koons LLC'에 근무하는 120여 명의 어시스턴트들은 다시 회화와 조각 파트로 나뉘어 일한다. 이들의 집단 창작이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를 보장한다. 리비히하우스에 출품된 <헐크(친구들) Hulk (Friends)>(2004-2012)와 <헐크들(벨) Hulks (Bell)>(2004-2012) 은 컬렉터에게 제작 전 선 매입된 작품으로 작품 취득까지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컬렉터가 투정한 걸로 전해진다. 작품 제작 기간은 무려 8년여.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세간에서 상반된 지위에 놓인 둘(성물과 세속물)을 병치시킨 후, 종국에 세속가치에 손을 들어 반전 드라마를 유도하는 것이다. 천시되어온 세속 가치의 복권은 고대 유물과 뒤엉켜 성속의 경계가 허물어진 리비히하우스의 전시실에서 쉽게 체험된다. 싸구려 고무풍선을 웅장한 입체 조형물로 재현하기 시작한 1994년께 <기념 Celebration>연작 이후로 풍선 인형의 재현은 줄기차게 지속되었다. 이번 개인전에서 신작으로 발표된 <헐크 Hulk>는 고무풍선 헐크 인형을 브론즈로 재현한 것이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표면의 재질감이 고무풍선처럼 지각된다. 또 다른 신작은 두 점의 비너스(<금속 비너스 Metallic Venus>, <풍선 비너스 Balloon Venus>)인데, 그 중 <풍선 비너스>(2012)는 흡사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고무풍선 모양으로 비만 상태의 비너스를 재현한 것이다. 대량생산된 시시한 플라스틱 제품이나 풍선 인형의 재질감은 제프 쿤스가 조각과 회화로 반복해서 차용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이로써 현대 사회를 저변에서 지탱하는 대량소비문화의 저평가된 사물들은 공업기기 재료인 스테인리스 강철로 탄탄하고 웅대하게 우상화 된다.


이와는 정반대로 의심 없이 성물로 예우받던 대상은 세속화된다. 성물의 도상을 현대의 레디메이드처럼 변형시켜 아찔한 긴장감을 유도하는 건 제프 쿤스의 특허다. 리비히하우스에서 전시 중인 <예수와 어린 양 Christ and lamb>(1988) 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자와 성 안나 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1508년 추정)의 일부를 금테 두른 조악한 거울로 변형한 작품이다. 성물의 콘텐츠를 저질 공산품의 외관 속에 가둬, 성경의 스토리는 유지하되 성물의 고유한 상징가치는 증발시킨다. 리비히하우스에는 기독교 성물 조각상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성물이란 본디 교회 안에 있을 때 상징 기능을 발휘하지, 그것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관람 대상이 되면, 예배 기능은 상실되는 법 아닌가. 전시 중인 성물들의 무력감은 제프 쿤스의 세속 도상과 나란히 병렬되면서 더욱 부각된다. 그런 점에서 리비히하우스는 제프 쿤스 조각의 장소 특정적 미학 효과를 배가시켰다.


두 가지 관전 포인트에 덧붙여 두 개인전에 일관되게 흐르는 제프 쿤스의 미학도 얘기해본다. 제프 쿤스가 업계 톱의 권좌를 유지하는 비결은 긴 작업 연보 위로 축적된 작품들이 미학적 일관성을 지키고 그것이 신뢰감으로 연결되어서일 것이다. 에로스와 소비문화는 그가 조형적 변주를 거듭하면서 일관되게 집착한 대주제다. 자신이 직접 성행위의 주체로 출연한 충격적 연작 <하늘이 정해준 Made in heaven>-쉬른 미술관 출품작에 일부 포함되었다-은 항간에서 쉬쉬하는 에로스를 포르노그래피의 형식으로 차용하면서 주제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강도 조절이 있었을 뿐 이후로도 이 주제는 포기된 바 없다. 


쉬른 미술관에 소개된 2000년대 중후반 초대형 회화에는 화면에 그려진 병렬된 사물들을 배경으로 전설적인 1950년대 핀업 걸 베티 페이지를 배역한 여배우 그레첸 몰의 모습이 포함된 신작 <유물>이 있다. 그레첸 몰의 농염한 자태는 로마 시대 비너스상과 병렬되어 출연한다. 비단 선정적인 재현 대상을 화면에 직접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제프 쿤스의 에로스는 기호로도 관철되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작업 <풍경 Landscape> 연작과 최신작 <유물>의 화면 정중앙에 초대형 기호처럼 생긴 단색 줄무늬 낙서가 반복해서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보면 여성기 모양을 약호로 그린 것이다. 이는 흡사 제프 쿤스 작품을 확증하는 인장처럼 보인다. 에로스 재현은 다중이 희구하는 성적 관음증을 충족시키되, 1990년 <하늘이 정해준>처럼 즉물적인 웅변을 지양하고, 업계에서 통용되는 고상한 생존법을 고안한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의 북부 도시 빌바오가 관광 사업으로 부흥한 계기는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으로 본다.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된 미술관의 입구로 제프 쿤스의 초대형 조형물 <강아지puppy>(1992)가 서 있는데, 이 작품도 미술관과 동급으로 도시를 랜드 마크 한다. 예외 없이 많은 관광객이 그 작품을 기념사진 촬영지로 정한다. 요란한 강아지 장난감을 차용한 공공미술품은 성물화(聖物化)를 거쳐 세속가치를 복권시키는 제프 쿤스의 미학적 일관성의 연장으로 보이며, 몰려드는 카메라 세례에 예능 스타처럼 능숙하게 임하는 포즈는 급변한 미술가의 정체성의 증거물 같다.




물리적 제작 공정의 대부분을 외주에서 완성한 사실을 이처럼 공개하는 공장형 미술가들이 존재함에도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세간의 통념 때문에 그 통념을 벗어난 제작 관행에 세상에 알려져서 사회적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2016년 한국에서 벌어진 조영남 대작 소동이다. 그 사건은 송사로 이어져서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 중인 현재진행형 사건이며 대중적 오해가 빚은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알려진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 한 여론조사에선 조수가 작업의 대부분을 완성한 조영남 작업을 ‘사기’로 봐야 한다는 비율이었다. 그만큼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한국인은 ‘미술품은 단 한 명의 미술가가 제작한다’라는 통념을 신앙처럼 믿고 있다. 심지어 사건이 일파만파 터지자, 조영남의 제작 행태를 성토하는 미술 전문가를 칼럼이나 의견을 인용하는 언론보도도 잇따랐다(당시 필자는 조영남에게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낸 소수의 전문가였다).



조영남 대작 사건 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조영남 2018년


조영남 소동을 둘러싼 찬반양론은 동시대 미술의 풍경 속에 굳게 자리한 비밀스런 작동 원리가 본의 아니게 미술계 바깥으로 노출된 지극히 희귀한 사건이었다. 조영남은 회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무라카미 다카시나 제프 쿤스처럼 초대형 작업을 내놓는 공장형 미술가와 비교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조수가 작업을 대행하는 관행은 오늘날 공장형 아티스트의 맹아 격으로 지목되는 1960년대 앤디 워홀의 팩토리나 개념주의 미술은 차치하더라도, 더 멀리 르네상스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 바로크 화가 루벤스 그리고 현대적인 조각가 로댕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 공장형 미술가가 아니고 개념주의 미술가가 아닌 회화 작가 중에도 조수들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동시대 생존 작가는 수도 없이 많다. 다만 그 사실을 미술계 바깥에서 알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미술계의 관행이다. 


조영남 소동 때 홀로 창작하는 미술가가 절대다수인 점을 들어 공분을 자극하는 비난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술계의 절대다수가 홀로 작업을 감당한다는 건, ‘관행’을 두둔한 나 같은 평론가도 잘 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관행’을 계속 두둔할까? 동시대미술은 ‘미술’이라는 동일한 자장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제작 방식으로 구현된다. 홀로 작업하는 이가 절대다수라는 현실로 인해 100명을 고용한 공장형 작가의 존재감이 평가절하되지 않는 것도 이런 다양성을 미술계가 시인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공장형으로 제작되건 소수의 조수가 완성하건 작가 개인의 아이템을 남의 손으로 구현하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전자는 체계적으로 수행한 것이고, 후자는 영세하게 운영했다는 차이만 있다. 단품요리와 뷔페는 규모와 제작 방식이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미각과 허기를 충족시키는 음식이라는 점에선 같다. 뷔페보다 단품요리를 훨씬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마저 뷔페 애호가를 평가절하하지 않거나 음식이 아니라고 부인하진 않는다.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세간의 통념과 천재 개인 미술가라는 낭만적인 신화를 위해, 미술계가 개인 창작의 전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전문 인력이 분업으로 완성하고 미술가가 최종 책임을 담당하는 주문-제작 시스템이 미술가가 홀로 감당했던 과거 작품보다 완성도 면에서 훨씬 개선됐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자 입장에서건 작품을 거래하는 갤러리 입장에서건, 작품을 평가하는 평론가 입장에서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굳었다. 더구나 주문-제작의 오랜 관행이 미술사에 꾸준히 존재해 왔다는 고증마저 전문적 분업과 관리 체계에 정당성을 줬을 게다. 이 같은 주문-제작의 관행은 작가 개인이 아니라,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미술계 공동체가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간 게 맞다. 


동시대 미술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풍경은 작품 창작의 물리적인 노동은 전문 인력이 대체하고 작품의 브랜드를 작가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100여 명의 조수가 작품을 완성하는 공장형 작가의 경우 미술가 1인의 이름 대신, 가령 무라카미 다카시의 경우 그가 운영하는 회사 이름을 따서 ⓒkaikai kiki로 하는 건 어떨까? 이미 공장형임이  공개된 경우이니 이런 서명이 더 정합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회사명으로 작가 서명을 대체하는건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미술가 본인도, 전시 기획자도, 그것을 감상하거나 구입하는 관객과 구매자마저 원치 않는 바다. 이런 판단은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 스튜디오가 공개되어 주문-제작의 관행이 엄연한 사실로 확인됐음에도 그렇다. 왜일까? 왜냐하면 그 작품이 유통되는 곳이 예술계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감동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서 오지만, 감상자의 믿음에도 크게 좌우된다. 대중과 전문 평론가마저 작품의 완성도를 작가의 이름이라는 브랜드로 읽고 평하려 든다. 알면서 속아주는 거다. 이 점이 예술의 진면모를 만천하에 공개할 때 부딪히는 난처한 지점이다. 


정치적 소신과 미적 취향은 닮은 데가 많다. 정치적 지향이 전혀 상반된 두 개의 정당은 정권창출이라는 목적만 같을 뿐 상호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미적 취향/통념은 ‘주문-제작으로 작품을 완성’해도 된다는 미적 취향과는 화해하기 힘들다. 


조영남의 1심 재판은 조영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혀 상이한 미적 취향이 존재하는 미술계를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심 재판에선 무죄를 선고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처럼 100여 명의 제작자를 거느리면서 초대형 회화와 조각 작품을 쏟아내는 공장형 미술가의 등장과 부상의 의미가 비단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아주 오래된 통념의 재고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난해한 비문처럼 풀이되는 현대미술의 본질 중 하나는, 유구한 미술의 기원이 그러했듯이 장식적 가치라는 뜻이 될 것이다. 미술계 안팎에서 존재하는 (현대)미술을 난해한 철학과 등가로 두려는 통념은 ‘미술품을 단 한 명의 미술가와 연결 짓는’ 통념처럼 비현실적이며, 그런 통념이야말로 (현대)미술과 현대인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필자: 반이정 dogstylist@naver.com

미술전문지 외에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한겨레」 「경향신문」등에 미술 칼럼과 시사 칼럼을 연재해왔다. 「교통방송」 「교육방송」 「KBS」 매스미디어에 미술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송은미술상 에르메스미술상 등에 심사와 추천위원을 지냈고, 세마SeMA-하나 미술평론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서울대 세종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예술판독기』 『사물판독기』 외에 여러 책을 썼다. 유튜브 채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를 운영한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9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