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 / 경계인에게만 보이는 경계
이선영
경계인에게만 보이는 경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송창은 1986년 당시 대안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그림마당 민에서 첫 개인전을 할 때부터 분단에 대한 주제를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이후 ‘시대가 변했다’고 회자된 90년대에도 개인전은 물론, 한반도 역사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기획전에 분단과 연관된 주제를 계속 발표해 왔다. 분단과 더불어, 군부 독재와 도시 빈민의 문제 또한 그가 자주 다루어온 내용이다. 분단 상황의 고착화를 권력 유지 및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 군부 정권은 양극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는 곧 도시빈민을 양산했기에, 송창의 주제들은 줄줄이 연결 될 수밖에 없다. 풍경이 주를 이루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시선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인과 고리를 느슨하게 하고 뒤로 빠진다. 약간의 은유를 제외한다면, 화면은 회화적 실행으로 가득 채워졌다. 거기에는 주제만큼이나 그리기 자체에 대한 몰입이 있다. 분단은 첫 개인전 전후로 기준을 잡아도 40여년 넘게 작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주제이다.
썩은소이야기_2013_캔버스에 유채_112.1X193.9
두지나루_2016_캔버스에 유채,조화_80.3X116.8
이 주제는 작가가 한 소재나 형식을 평생 고집하는 것과도 다른 차원이다. 분단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사적 차원까지 관련된 문제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난제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본의 아니게 세계적 이목을 끌고 있다. 분단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단지 민족적 문제만은 아니다. 분단은 우선 정치적 주제지만, 편재하는 미시권력망의 작동을 통해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주제이고,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역사적 주제이다. 송창처럼 청년기를 그와 관련된 문화 예술적 투쟁으로 보냈다면, 실존적 주제가 되기도 한다. 분단은 그토록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견 저 멀리 있는 문제처럼 여겨진다. 전쟁은 물론, 80년대라는 문화적 격동기를 모르는 일부 세대는 북한같이 ‘가난하고’ ‘이상한’ ‘나라’와의 통합을 원치 않는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들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며, 다국적 당국자들 간에 합의로 그어진 우연한 경계는 오히려 강화돼야할 차단막으로 여겨진다. 이번 전시에는 발표되지 않지만 창백한 표정의 병색이 완연한 장기수 할머니의 초상과 북녘 풍경이 중첩된 작품들은 분단을 기억하고 의식하는 세대들이 하나둘 세상의 뒤 안으로 멀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분단의 풍경 속,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 할머니의 모습은 고향으로 ‘돌아가실’ 시점이 언제 일지 심란하다. 이번 전시작품에서는 인적 없는 풍경이 주를 이루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풍경에서 주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 때는 풍경 전체가 인물이 되어 말을 건넨다. 그동안의 작품처럼 사연을 담은 풍경이지만, 외침이 아니라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폐가의 막힌 창문은 생명의 빛이 꺼진 사람의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송창 작품의 두툼한 질감은 회화적 리얼리티와 육체적, 물리적 리얼리티를 중첩시킨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특정되지 않는다.
강바람_2014_캔버스에 유채_130.3X193.9
남계리에서_2015_캔버스에 유채_80.3X100
증파나루에서_2017_캔버스에 유채_80.3X100
남한사회에서 분단 문제는 절묘한 시기에 터지곤 하는 간첩사건—하도 빈번하게 일어나서 ‘북풍’이라는 말까지 있는--이나 실향민 문제 등, 웃지 못 할 조작극과 비극으로 번갈아 가며 재현되곤 하였다. ‘재현의 정치학’은 컬러텔레비전 시대가 개막된 80년대에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80년대는 흐릿한 흑백 화면으로 기억되던 새마을 운동 시대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에 대한 문화적 대응 또한 요구되었을 때 재현주의적 방식이 반복됨으로서 생겨난 난점이 있다. 그러나 대지보다도 더 거칠었던 송창의 야생적 필법은 재현주의보다는 표현주의에 더 가까웠다. 그의 땅은 농부가 일군 밭고랑처럼, 탱크가 지나간 산하처럼 깊은 골이 패여 있다.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문화적 투쟁은 80년대의 미술의 한축에 풍자적인 경향을 낳았다. 웃음 또한 분노만큼이나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 송창의 작품에는 묵직한 회화성과 신랄한 풍자성이 공존한다.
회화 자체의 논리는 내용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 한편 내용에 집착하다 보면 왜 굳이 그림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야기된다. 특히 서사를 중시하는 작품은 그림보다 더 유력한 매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어느 한쪽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내용과 형식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다. 내용이 형식을 창안하게 하고, 형식이 내용을 더 전달하게 하는 상보(相補)성이 필요하다. 내용이냐 형식이냐에 대한 우선순위는 80년대에 치열했던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송창이 속해있었던 80년대의 진보적 미술은 제도권의 형식주의나 심미주의와 대결했고, 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와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해왔기에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은 더욱 중요했다. 송창의 풍자적 작품에서는 물감 이외의 매체들이 자주 사용된다. 이번 전시의 주요작품들은 역사와 서정이 함께하는 풍경화지만, 작업실 한켠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작품 군들은 분단과 관련된 신랄한 풍자극을 예고한다.
강변에서_2011_캔버스에 유채,조화_91X116.8
산길_2012_캔버스에 유채,조화_91X116.8
반짝이로 꼴라주 된 평면들은 올해 진행할 다른 전시에서 정치 풍자에 활용될 것인데, 그것은 ‘어둡고 무겁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그의 회화적 작품과는 정 반대의 형식이다. 일련의 단위구조로 조합되는 반짝이는 물질보다 언어에, 리얼리티보다는 코드에 더 가깝다. 이런저런 형태의 반짝이들로 도포된 바탕 면은 이전 시대와 달리 권력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현재, 분단은 어떤 식으로 재현되는가를 암시하는 듯하다. 남북 정상이 단둘이 했다는 대화도 복화술로 재현되는 시대지만, 모든 것이 다 공개된다 해도 분단문제에 대한 해법이 용이하지는 않다. 울렁거리는 옵티컬 패턴으로 뒤덮인 2개국, 3개국, 4개국 정상의 얼굴들은 뭔가 될 듯 말듯하다가 미궁에 빠지곤 하는 현재의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서 권력자들은 피상적으로, 민초들은 묵직하게 표현된다. 대상(또는 내용)의 차이가 재료(또는 형식)의 차이를 낳았다.
2017년 [잊혀진 풍경] 전의 작품도 그랬지만, 그의 작품은 통상적인 풍경화처럼 편안하게 눈을 맡길 수 없다. 거기에는 직시하기 힘들지만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의 단편들이 간간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풍경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일견 회화성이 앞서지만 여기저기에 분단 관련 상징을 심어놓았다. 직설 어법은 우회되었다. 결국 예술이 소통—80년대의 진보적 예술이 주창했던 가치의 하나—이라면, 회화가 할 수 있는 것(또는 더 잘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치적 세계관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냉소나 슬픔을 낳는 분단 현실과 관련된 사회적 사건들은 회피된다. 80년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보의 폭발로 인해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위로받는 것들과 관련된 콘텐츠가 대세인 세상이 열렸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고 믿어졌던 80년대와 달리, 이제 세계는 자본주의 이외의 체계가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며, 보편적 질서로 자임하는 지배적 체계는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역사의뒤안길(백령도에서)_2015_캔버스에 유채,조화_112.1X145.5
뒤안길_2017_캔버스에 유채_50X72.2
아방가르드의 역사는 부르주아 체계가 반대자들의 웬만한 도전에 대해서도 융통성 있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자국의 자본/노동의 대립을 완화시킬만한 식민지들이 남아있다면 모순은 지속될 수 있다. 이제 식민지는 영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영토 안의 몸과 무의식 또한 땅이 겪었던 역사를 미시적 차원에서 반복한다. 1945년 이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주권 국가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식민 모국은 지배의 연속성을 위해, 요즘말로 코드가 맞는 토착 집단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해방은 완전하지 않았다. 근대화 및 진보를 서구화와 동일시한 지배적 패러다임은 해방된 민족국가들을 여전히 식민지로 남겨두었다. 식민지 지식인과 예술가는 식민 모국에 원본을 둔 모델을 재현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그들은 지역성 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하곤 했다. 세계화도 마찬가지지만 보편적 질서는 중립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의 현실을 제대로 본 진보주의는 남한을 신식민지독점자본주의로 지칭했다. 1980년대 ‘민족 해방’이라는 화두는 식민 모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이는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수렴되었다. 식민모국이 자본주의 국가였으므로, 반사적으로 사회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의 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중국의 모택동의 사상에도 잘 나타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이론에 의하면, 불완전하게 독립한 국가들에게 반체제 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양상을 보였다. 이 운동은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반제국주의를 주장했고, 프로레타리아적인 관점으로 반자본주의를 주장했다. 80년대는 민족인가 계급인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으며, 분단에 대한 관심은 계급보다는 민족에 방점을 찍었지만, 양자는 연동되는 문제였다. 가령 송창은 분단문제 이외에 도시 프로레타리아에 대한 주제도 놓지 않았는데, 그것은 민족적 차원을 넘어선 현대적 노동 운동의 주체를 말한다.
금단의땅_2014_캔버스에 유채,조화_130.3X193.9
금지된정원_2014_캔버스에 유채_193.9X259.1
월러스틴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규정하는 프로레타리아/ 부르주아의 관계를 문제삼음으로서,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제거하는 쪽으로 간다고 본다. 월러스틴은 반체제, 해방운동의 세계화를 제안하는데, 예컨대 제 3세계 사회혁명에 있어 마르크스주의의 위상을 살펴보면, 각 지역의 지방색을 극복하고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는 또 다른 서구의 제국주의라기보다는, 자본의 착취가 일어나는 곳 그 어디에서나 마르크시즘이 저항의 원천으로 사용되는 것일 뿐이다. 분단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군부독재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했던 1980년대에 실천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는 물론, 1987년 문화운동의 대중화 국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받다가, 1989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포스트 모던한’ 국면에서 잊혀지다시피 했으며, 최근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주의 정권에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 했다.
현재 우리에게 분단은 통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남북한의 경제적 이익 같은, 실질적 이슈를 통해서나 잠시 고려될 따름이다. 실리적으로 따지면 분단은 극복되어야 맞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인 경계는 여전하고, 진보적 문화예술은 그 장벽을 낮춰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마저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조응할 때만 가능한 문제다 보니, 상황은 38선이 그어졌던 수 십 년 전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80년대가 지나갔다’는 판단을 낳은, 80년대 말에 해체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였는지 의문에 붙여진 채, 국가, 관료, 계급같은 반민중적 범주들은 동서와 좌우를 가리지 않은 채 잔존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을 지속시킨다. 또는 교묘한 형식으로 확대된다. 송창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의 풍경들이 분단에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분단은 저 멀리에 있다. 작가 스스로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자평하는, 근래의 풍경에도 분단은 도처에 암시되어 있다.
고랑폭우의바람_2014_캔버스에 유채_193.9X130.3
안식처_2014_캔버스에 유채_162.2X130.3
임진강 주변을 소재로 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얼마 전의 [잊혀진 풍경](2017) 전의 주제와 연속적이다. ‘허리 잘린 산하’라는 80년대식 표현에는 몸과 땅의 비유가 있다. 송창에게도 대지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1991년 필자가 처음 접했던 작품에서, 그는 탱크가 지나간 흔적들로 후벼 파여진 대지를 통해 분단의 상처를 선명하게 표현했다. 진달래를 비롯한 봄꽃이 가득 피어 있곤 하는 지금 풍경은 이전의 층을 덮고 있다. 거기에는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깔려있다. 대지모신이라는 신화적 주제는 80년대 한반도의 역사로 재해석 된다. 그의 작품에서 역사는 자잘한 사건사고의 재현이 아니다. 보다 거시적인 차원이다. 분단은 여전히 미해결의 난제로 남아있므로 상처가 아물거나 순화될 수는 없다. 산과 물, 꽃과 나무가 있는 송창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가 그린 장소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즉 임진강 유역 등, 비무장지대 근처의 장소임을 알게 되는 순간, 자연적 서정은 다르게 다가온다.
비극적 역사가 많았던 우리의 산하를 슬픈 풍경으로 바라보았던 문화적 전통이 있다. 송창의 풍경은 꽃놀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냥 화사한 자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서린 장면으로 다가올 지형학적 의미가 깔려있다. 송창은 군부 독재의 전횡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80년대부터 DMZ 인근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을 자주 가봤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그 지역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있다. 암담함과 환상성이 어우러지던 철원 평야의 사계절이나 탱크 훈련장이 있던 파주 지역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급격하게 휘어 도는 강줄기를 표현한 것 작품 [썩은소 이야기](2013년)는 역사적 사연이 있는 풍경이다. 썩은소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에 소재한 장소이다. 작가에 의하면, 고려가 망하자 왕씨들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시고 이곳까지 내려 왔는데 이곳에서 배가 움직이지 앉자 절벽위에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셨으니 그곳이 지금의 숭의전이다.
증언(임진강변에서)_2016_캔버스에 유채,조화_89.4X130.3
꽃꺾어그대앞에_2016_캔버스에 유채,조화_145.5X97
꽃한송이_2018_캔버스에 유채_227.3X162.1
당시 쇠닻줄로 배를 정박해 두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쇠 닻줄이 삭아 끊어지고 돌배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썩은쇠’ 로 불리다가 ‘썩은소’로 변했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어떤 중차대한 문제의 해법에 기적이라도 바라야 하는 암담한 상황에 대한 비유로 읽혀진다. 풍경은 물감으로 두툼하게 덮여있다. ‘물감을 낭비 한다’는 비판도 받곤 하는 두터운 질감이다. 관객은 산과 물에 새겨진 이야기를 다시 읽기 위해서 화가의 물감 또한 가세한 시공간적 축적을 관통해야 한다. 또는 파헤쳐야 한다. 이 축적은 단일한 의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되어 다시 해석되는 중층적 의미를 가진다. 회화가 어떤 메시지를 수월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상징적 도상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의 경우 의미를 전달하는 명확한 형태보다는 미묘한 회화적 질감에 방점이 찍혀있다. 즉 회화의 본질에 충실한 그의 방식은 메시지 전달에 있어 투명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80년대의 현실참여적인 미술이 사회적 내용으로 제도권의 형식주의와 대결했을 때의 경직된 이분법을 풀어헤치고, 평생 붓을 들어온 화가로서의 자의식이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작품 [금단의 땅](2014년)은 두터운 물감의 층위에 꽃까지 꼴라주 된 화면이다. 누군가의 무덤처럼도 보이는 겹쳐진 산 아래 강물은 약간만 보인다. 물은 흐르기 보다는 고여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하늘을 비추고 있기에 하늘색일 강은 대지보다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물의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초월의 기미를 띠고 있는 하늘, 그리고 이를 반영하는 선적으로 흐르는 역사의 상징인 강은 지상의 모든 생물체를 포함한 인간의 생로병사가 펼쳐지는 대지보다 중요하지 않다. 수평 방향으로 누워있는 산이나 강과 달리, 서있는 나무들은 조금 더 인간적인 이야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인류의 상상계 속에서, 서있는 나무는 대지 위에 직립한 인간과 늘 상 비유되었기 때문이다.
떫은꽃잎_2016_캔버스에 유채,조화_116.8X91
임진강변길_2015_캔버스에 유채,조화,3D프린팅_97X145.5
풍경 속 나무는 화면 앞으로 당겨져 있다. 전경의 화면을 가로지르는 소나무들이 있는 작품 [칼바람](2014년)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랫 가사가 절로 생각나는 어떤 올곧은 심성을 떠오르게 한다. 80년대를 관통한 세대에게 푸르른 신념의 문제는 중요했다. 전경에 나무 세 그루가 상승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강바람](2014년)은 나무의 고유색만 빼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도 보인다. 나무는 흐르는 시간으로 상징되는 강물과 대조되는 상징군으로 그렇게 우리 앞에 서있으며,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서로 연대하듯 다가온다. 한편 연천에 있는 유엔군 화장장 옆에 핀 진달래꽃 무리를 그린 작품 [안식처](2014년)는 슬퍼 보인다. 붉은 색은 죽음이나 희생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진달래 위로 보이는 다른 나뭇가지들은 디퓨저처럼 자신이 꽂혀있는 대지의 기운을 공중에 퍼트린다. 그것은 결코 묻혀서는 안 되는 슬픈 역사를 일깨우는 듯하다.
바위틈에서 자라난 나무를 그린 작품 [고랑포구의 바람](2014년)은 분단되기 이전에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알려진 고강포구 근처의 모습이다. 고랑포구는 삼국시대부터 중부권 물자를 교류하던 나루터로서 경기도 연천군에 소재한다. 작가에 의하면, 고랑포구는 6.25전 까지는 거대한 초가집 마을로 형성된 저자거리로서 주로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상인들이 이곳 고랑포 나루지역을 중심으로 상거래를 하였다고 한다. 분단이 극복된다면, 무명의 자연으로 되돌아간 지역의 역사가 다시 꽃피울 수 있을 것인가. 위로 뻗은 나뭇가지들이 잔뜩 곤두선 신경세포처럼도 보이는 형태는 바위틈에서 자라난 나무/존재들의 내적인 상황일 것이다. 자연 속에 서 있는 건물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빈 초소를 그린 작품 [어두운 그림자](2019년)는 시커먼 초소가 화사한 풍경 위에 서있다. 견고하지 않은데 쓰러지지도 않고 서있는 모습이 더 흉물스럽다.
강변집_2014_캔버스에 유채,조화_130.3X193.9
어두운그림자_2019_캔버스에 유채_130.3X162.2
거기에는 수평과 수직의 대조, 선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의 대조, 다채로운 색과 무채색의 대조가 있으며, 이러한 조형적 장치들을 통해 자연과 역사의 대조를 말한다. 초소와 비슷한 맥락으로 폐가가 그려진 작품 [강변 집](2014년)은 화사한 계절의 여운과 대조되는 빈집이 을씨년스럽다. 집이 곧 사람이라면, 폐가는 죽은 채 서있는 무덤이다. 서로 다른 층위가 살아있는 화면을 더욱 두툼하고 다채롭게 하는 것은 화면 여기저기에 붙여진 꽃들이다. 물감으로 덮인 화면에 꼴라주한 꽃은 장례식에서 쓰고 버린 꽃에서 영감을 받았다. 누군가의 무덤가에 떨어진 상여에 붙은 꽃들을 재활용한 것이다. 다른 작품에도 많이 등장하는 이 꽃에 대해 작가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꽃이 이미 그려져 있는 화면에 붙은 꽃은 화사함에 화사함을 더한 풍경을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은 삶을 빛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림 속 꽃은 조화의 형태로 튀어나온다.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검은 창구멍은 화사한 계절의 여운과 비교되어 더욱 썰렁하다. 인위적인 것은 한시적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러나 자연은 순환한다. 순환은 단선적 비전에서 비롯된 폐해를 완화하고 치유할 수 있다. 1954년생인 송창이나 그 이후 세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가까이는 천안함 사건 등, 몇몇 국지적 무력 충돌은 있었지만, 6.25 전쟁 때처럼 전 국민을 군인으로 난민으로 동원한 총체적 난리 통은 없었다. 38선은 대다수의 남한 사람에게(그리고 북한 사람에게도)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는 굳이 의식되지 않는 경계이다. 남북을 통틀어 지배 세력은 이러한 경계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동원해 왔다. 아프리카 대륙에 실제의 지형과 상관없이 죽죽 그어진 국경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럽 열강의 식민통치의 흔적이며, 임시적인 것이 영구화된 경우이다. 나눠진 경계의 근거는 없다. 경계는 인간의 규칙일 뿐 자연의 법칙은 아니다.
새벽을열다_2014_캔버스에 유채,조화_72.7X116.8
칼바람_2014_캔버스에 유채,조화_130.3X162.2
하늬바람_2014_캔버스에 유채_89.4X130.3
그렇지만 인간 사회 속에서 우연적인 경계는 필연화 된다. 물론 그것이 다시 우연으로 간주되는 국면, 흔히 과도기라고 일컬어지는 시기는 도래한다. 막간 극같은 이 시공간에서 경계는 도전받고 해체된다. 때로 체계는 바깥으로부터의 도전을 싸안아 경계를 확장하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계는 변화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의 바람’이라는 작품제목을 많이 붙였다. 송창의 오래된 소재였던 38선 같은 부정적인 경계는 모래 위에 그어진 선처럼 바람에 지워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계까지 밀려난 사람, 또는 경계까지 돌진해 나간 사람, 자의든 타의든 경계를 오가야 하는 사람에게 경계는 민감하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선을 의식하는, 또는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자가 바로 경계인이다. 경계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에도 적용되어, 심리학적 ‘경계인’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시기를 내포한다.
경계를 위반하는 자에 의해 경계는 다시금 인식된다. 경계의 위반은 한 사회가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경계는 무너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더욱 강화된다. 송창에게는 분단과 관련된 지역을 방문하는 기본적 단계부터 장벽이 있어왔다. 90년대에 발표한, 탱크자국이 가득한 어두운 대지는 시선을 아래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편저편을 나누는 거친 이분법에 의해 분단을 다뤄온 작가에 ‘친북 작가’라는 꼬리표도 쉽게 붙여지곤 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 사람들은 송창작품처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1980년대 후반에 통일열기의 확산으로 북한미술에 대한 관심이 일었는데, 북한의 현대회화인 조선화 양식에 지배적인 해맑은 분위기와 송창의 어둡고 텁텁한 화면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남한 당국은 민중미술과 북한미술을 ‘이적표현물’ 등으로 한 묶음으로 간주하곤 했다.
잃어버린고향_2015_캔버스에 유채,조화_130.3X162.2
잃어버린길_2016_캔버스에 유채,조화_100X100
그러나 북한 당국의 관리 아래에 있는 아카데미 형식과 남한의 체제 저항적인 예술은 출발 자체가 다르다. 80년대 후반 남한사회에서 변혁의 열기가 고양되었을 때, 다수의 진보적 작가들이 가졌거나 가져야만 했던 전망(밝은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온전히 그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이번 전시 작품처럼, 작가 스스로 밝아지려고 노력하는 순간조차 그럴 수만은 없는 근본적 문제의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모두들 간과하거나 잊어버린 사이에 경계는 강화되고 활용된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경계는 선명하다. 고향 땅이 북한인 사람이나 전향을 거부하는 장기수,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분단에 있다고 판단하는 지식인이나 예술가에게 그 경계는 아직도 선명하다. 경계의 안과 밖의 문제는 물리적 차원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있다. 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90년대 문화를 접수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경계가 사라졌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경계 같았으면 애초에 경계도 아니었을 것이다.
모순에 가득한 현실을 모두 허구화하고 싶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처럼 관념적이며, 여전히 현실 도피적이다. 모더니즘에서의 형식적 완결성마저도 느슨해진 포스트모더니즘은 90년대에도 여전히 완강했던 현실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떠내려갔다. 1980년대의 송창에게 분단은 자신의 문제이면서도 공동체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서, 이후 함께 했던 작가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더 고독한 시기를 통과해온 작가에게 분단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을 대표할 수 있는 중층적 모순의 집결체다. 민중미술 계열의 소집단 [임술년](1982)의 일원으로, 민중미술이 현실의 한 켠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을 때도 한 작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꼬이기 마련이다. 예상컨대 통일은 권력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 누구의 셈법도 통할 수 없는 어느 날 갑자기 훅 다가올 것이다.
동북아열탕_2017_캔버스에 유채_162.1X259.1
,슬픈대지_2019_캔버스에 유채,스팽글_181.8X227.3
이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게 할 뿐이다. 그것은 이성 자체가 자신을 지시하고 연장하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선설을 믿었던 루소와 달리, 인간 심성의 부정성을 더 주목한 근대의 사상가가 예언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홉스)이 보편화되는 현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축소시킨다. 개별로 흩어지는 한 시스템의 힘은 더욱 큰 힘을 발휘하기에 소외는 더욱 깊어진다. 현대문화 비평가가 진단했듯이, 소외를 소외로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해체된 주체는 훅 불면 사라지는 환상 속에서만 전능할 따름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더 무력해진 개인을 신적 지위로 격상하는 것은 철지난 낭만주의적 관행이다. 그러나 그러한 취약한 보호막조차도 희귀한 시대가 왔다. 현실, 특히 사회적 현실과 연동되는 자아만이 실체적 진실을 다룰 수 있다. 개인보다 사회를 더 중시했던 80년대의 진보적 문화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시금 주목된다.
80년대에 송창이 함께 했던 민중미술이 젊은 예술이었던 만큼, 젊은이들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기본 문턱을 넘기 위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에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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