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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는 그림(109) 조숙-설치미술가17년 전 뉴욕 브루클린 뒷길서 버려진 작은 목마를 주었다. 그 목마는 오랫동안 내 맨해튼 작업실창고 깊숙이 놓여 있었다. 목마가 브루클린으로 다시 돌아간 때는 그로부터 꼭 10년 만이었다.떠난 남동생의 상징물로서……. 2005년 11월, 동생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우리는 자랄 때 참으로 오붓한 사이였다. 커가면서 각자 삶에 바쁘다보니 공유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점차 거리감도 생겼다. 갑작스럽게 동생이 떠나니, 왜 좀 더 동생을 알려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지… 후회가 밀려와 안타까웠다. 당시 2주 후에 있을 개인전에 설치작품을 구상하던 나는 불현듯 창고 속 목마가 생각나 가져갔다. <남동생의 파수꾼>은 동생을 기리는 작품이다. 동생을 생각하며, 꿈같이 아련한 어린 시절의 풍경을 만들어 갔다. 목마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닐며 그 시절을 상기하도록 숲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도 구석에 놓고, 녹슨 스케이트 바퀴도 비밀스럽게 깊숙이 숨겨 놓았다…바람이 불면 종소리도 들리게 했다. 고독한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뻗게 했다. ![]() 오프닝 날, 많은 사람들이 ‘아!ʼ 하는 탄성을 질렀다. 어떤 이가 요정이 사는 세계에 온 것 같다 했다. 밤새 내린 하얀 눈이 목마와 겨울 숲에 소복이 쌓여, 내 동생이 눈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연이었을까. 대학 다닐 때 내게 서예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지어준 내 호는 설원- “눈 동산”이었다. 그래서 난 밤새 내린 눈을 보고 특별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함을 느꼈다. 설국이 된 작품사이를 사람들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걸어 다녔다. 많은 사람이 목마 앞에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남동생의 파수꾼>은 3달의 긴 겨울동안 전시됐다. 목마는 헐벗은 겨울 나무사이에 초연한 모습으로 있는 듯했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동안, 목마는 설국에 머무르다 초월적 세계로 떠났으리라. 전시 마지막 날, 작품 한 곳에 바람이 모아온 지푸라기들로 지어진 새 둥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 작품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한 미국작가가 바람이 만들어놓은 새 둥지를 보고 놀라워하며, 이 세상과 천국을 연결하는 메신저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죽음과 침묵 속에서 깨어난 내 동생이 손을 흔드는 듯 내 몸에 전율이 흘렀다. - 조숙진(1960- ), 홍익대 및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뉴욕 거주. 미국 헌팅톤미술관 등 30회 개인전. 폴록크래즈너, 하종현미술상, KAFA상 등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에리미술관, 마길리즈 웨어하우스, LA Metro Detention Center 등 작품소장. |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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