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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는 그림 -예술의 힘/ 허진

sosoart 2012. 8. 14. 17:30

글이 있는 그림

(114)예술의 힘

허진

글이 있는 그림(114)

몇 달 전 나의 짧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일을 겪었다. 우리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님께서 편안하게 임종하신 것이다. 상을 치르고 정리하는 와중에 얼핏 보기 싫은 아수라장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집착은 얼마나 허무한가?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이다. 고귀한 죽음을 준비하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어렸을 때 봤던 그림 중에 너무 강렬해서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 그림이 하나 있다. 그것은 프랑스 화가 자크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위대한 철학자가 장렬하고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되었는가?


나는 초등학교 시절 정릉의 한옥촌에 살았다. 은행원이셨던 아버님은 그림을 좋아하셔서 한옥에 어울리는 조선명화 복제본을 여러 개 사서 벽에 걸곤 했다.
그 중에 고조부 소치 허련이 그린 추사 김정희 초상 영인본이 있었다. 그때는 어릴 때라 대단한 그림인 줄 몰랐는데도 인자하고 편안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 쳐다보기만 해도 좋았다. 지금 와서 보니 모든 세파를 겪으면서 예술혼이 응집된 고집과 특히 생사에 관해 의연한 눈빛을 느낄 수 있음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두 개의 명화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정신은 고개지가 주장했던 전신사조(傳神寫照)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훌륭한 예술은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생각될 때 또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고전 명화를 감상하시길 권한다. 고전은 우리의 팍팍한 삶에 생기를 부여해 준다.

- 허진(1962- ) 서울 출생.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동양화전공) 및 동 대학원 졸업. 1988년 6월 ‘그대로’전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현재까지 400여 개의 그룹, 기획, 초대전, 19회의 개인전. 제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제1회 한국일보청년작가초대전 우수상, 2001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전남대 예술대 미술학과 교수.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