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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산책/ 윤철규

sosoart 2012. 10. 12. 17:26

한국미술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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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가을에 해야 할 일

윤철규

정치가 어쩐다고들 하지만 시절은 어김없이 천고마비의 계절로 돌아왔다. 요즘은 우마차를 보기 힘들어 실제로 말이 살을 찌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이 맑고 높은 것은 하루하루 눈에 들어오는 그대로이다. 이 계절은 독서의 계절과도 짝이 되어 있는데 한국의 출판사 사장님들은 ‘죽을 맛’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 미술의 이해를 넓히는데 적잖이 출판의 힘이 빌은 걸 생각하면 덩달아 걱정이다.

‘스마트폰 몰두’의 시절에 출판사 사장님들이 들으면 쌍수로 환영할만한 광고가 있어 잠깐 소개한다. 일본의 다카라지마사라는 출판사는 얼마전 일간지 두 면에 초대형 광고를 실었다. 동물원의 원숭이우리 같은 곳에 벌거벗은 사람들이 잔뜩 들어 있으면서 바위, 사다리에 달라붙어 원숭이 흉내를 내는 사진이다. 한쪽 구석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은, 책을 안 읽으면, 원숭이다’라고.
출판사다운 광고인데 이곳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이렇게 허를 찌르는 광고로 상도 받고 이름도 날려왔다. 몇 년 전에 낸 ‘부르는 이름을 바꾸면 일본도 바뀐다(혹시)’라는 광고도 히트를 쳤다. 거기에는 국회의원→국민봉사원, 공약(公約)→허약(虛約), 관료→공복원(公僕員)이라는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늘어놓았다. 정치비하 단어 외에도 불경기→저축기, 소비한다→경기에 공헌한다, 생명보험→사망보험 같이 ‘애고, 그렇지’하고 공감할만한 것도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 광고가 오래 기억되고 상까지 받은 것은 바로 ‘이름이 곧 실체’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른 이름 찾기는 어쩌면 선거보다 더 시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술시장 얘기인데 ‘팔린 가격’의 말뜻이 서울과 뉴욕이 다르다면 누가 믿겠는가. 지난달 서울과 뉴욕에서는 각각 근사한 한국미술품 거래가 있었다. 알다시피 K옥션에 나온 이황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진필에 정선의 진경산수가 있는 <퇴우이선생진적첩>이 오랜만의 고가인 34억 원에 팔렸다. 그리고 10시간 뒤에 열린 뉴욕 크리스티에서도 18세기 청화백자용문항아리가 321만 8,500달러에 팔렸다. 당일 환률로 36억 3,700만 원이었다. (2012.9.11 연합뉴스)


겸재 그림이 비싸게 팔렸다
현장에 없었던 사람은 그날 밤 도자기가 그림값을 누르고 또 뉴욕이 서울보다 고가의 것을 팔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티가 공개한 가격은 해머 프라이스 즉 경매사가 낙찰봉을 두드린 가격에 수수료를 얹은 가격(Purchase Price)이다. K옥션이 공개한 가격은 해머 프라이스이다. 옥션 도록에는 1억 이상인 경우, 1억까지는 10%, 그 이상부터는 8% 수수료가 적용된다고 돼 있다. 그리고 두 수수료의 합에 10%의 부가가치세가 또 따른다고.
이를 수식으로 풀면, 34억원+{(1억원×0.1)+(33억원×0.08)}+{(1억원×0.1)+(33억원×0.08)}x0.1이 되는데 즉 37억 140만 원이 크리스티 같은데서 말하는 팔린 가격이다. 이날 밤 서울과 뉴욕의 경매에서 최고가가 나온 곳은 서울이고 겸재 그림이 도자기 보다 비싼 값에 팔린 것이다.


구매자인지 위탁자인지 아니면 경매회사인지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미술이 적어도 세계가 보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놀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통하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뿐 아니다. 한국의 일반인을 위해서도 바른 이름은 필요하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한국고미술협회는 한국고미술상인협회로, 한국미술협회는 한국미술작가협회 정도로 하는 게 맞다. 그래야 어디를 가든 오해 없이 상인은 상인으로 작가는 작가로 대접을 받지 않겠는가. 저, 한국화랑협회를 보라

 

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