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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색화의 전통 : 궁중회화와 민화/ 이현경

sosoart 2012. 10. 12. 17:31

학술(61) 한국 채색화의 전통 : 궁중회화와 민화

이현경

학술(61) 한국민화학회 2012 학술발표회

이현경 / 미술비평


19세기에 성행했던 민화(民畵)는 현재에 비추어 볼 때, 전통 회화 중 그 성행 시기가 가장 최근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존하는 작품들을 가장 많이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명칭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오랜 시간 동안 전통사회에서 소수 신분 계층에게만 허용되던 예술적 향유가 많은 백성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증거물 중 하나이다. 예술이 일상에 녹아들고, 그 속에서 함께 호흡하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술이 추구하는 진정한 교감의 선구적인 사례인 민화는 조선시대에는 사대 부 엘리트 계층에게 그 세속적 특성으로 속화(俗畵) 또는 잡화(雜畵) 로 치부되어 천시되었으며, 한국미술사를 연구하는 영역에서는 낙관이 없고, 제작년대나 작가를 추정할 수 없어 난항을 겪는 연구가 되어왔다. 이러했던 민화를 정식 학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민화학회에서 지난 9월 8일(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번째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윤범모(가천대 교수)씨가 기조연설로 ‘채색화의 복권(復權)과 회화사 연구의 반성’을 촉구하며 서두를 연 이번 발표들은 기존의 민화 연구들 위에 보다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박본수(경기도박물관 학예팀장)씨는 ‘조선후기 궁중 책거리 연구’에서 ‘책거리’라는 말은 일거리, 이야깃거리처럼 책을 비롯한 여러 가 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서 ‘거리’란 말은 복수를 지칭 하는 우리말로, 한자로 ‘巨里’라고 이두식 표기를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책을 비롯한 고가의 장식물들이 그려진 책거리는 그동안 민화의 한 장르로서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정체와 도상의 양식적 계보를 파악하기 어려웠었는데, 90년대 이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꾸준히 이 책거리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책거리를 둘러싼 제작층과 수용 층, 그리고 각종 기물들의 도상의 연원이 밝혀져 왔다. 이런 연구 중에 서도 이번 발표는 박물관에서 실제 작품을 가까이 접하면서 연구하는 연구자답게 책거리 속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작가의 도장, 은인(隱印) 을 밝혀내고 이 은인을 토대로 각 박물관 소장 책거리의 작가가 누구 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발표자는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들이었던 장한종(張漢宗, 1768-1815 이후), 이형록(李亨祿, 1808-1883 이후, 膺祿과 宅均으로 개명), 강달수·한응석(생몰년 미상)의 계보로 책거리 양식이 확립되었음을 설명하고, 이러한 책거리가 궁중 장식화와 연 관되어 당시의 상류층의 취미를 반영한다고 고증하였다.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씨는 ‘조선후기 호랑이 그림의 편년적(編年的) 고찰’에서 대부분의 민화와 마찬가지로 호랑이 그림 또한 그 화가와 제작시기를 알 수 없어 상당 부분의 연구가 그 도상의 상징의미 (주로 吉祥과 辟邪)를 해석하는 부분에 치중되어 왔는데, 이번 발표는 호랑이 도상의 역사적 영향 관계에 주목하여 각 제작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는 호랑이의 형태를 고찰해본다고 하였다. 발표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민화의 호랑이 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확히 호랑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호랑이 무늬와 표범 무늬가 합쳐진 형태로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조선적인 특색으로 파악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근대 이전 한반도에서 자생했던 맹수의 포획량을 살펴보면 호랑이에 비해 표범의 포획량이 6-13배 정도 많게 포획된 것으로 봐서 우리나라에서 흔 히 볼 수 있는 맹수가 표범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호랑이를 그려야 할 곳에 우리에겐 친근한 표범이 습합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민화의 호랑이 그림은 대부분 18, 19세기에 편중되어 전해지지만 이 시 기 이전의 도상의 연원을 살펴보기 위해 이 연구는 15세기부터 호랑이 가 그려진 공신(功臣)들의 초상화의 흉배를 비교하였다. 또한, 국가 의 장례를 기록한 그림인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에 나타난 사수도(四獸圖 : 靑龍, 白虎, 朱雀, 玄武)를 찾아 그 중 호랑이(白虎) 도상을 구별해 비교해 보았고, 중국 명대 화가들이 그린 호랑이 도상 이 우리나라 화원들에게 접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발표자는 이러 한 시대에 따른 다각적인 비교를 통해 민화의 호랑이라는 독특한 양식 이 도출되었음을 설명하였다.


이상국(경주대 강사)씨는 ‘조선후기 호렵도(胡獵圖)의 수용과 용 도’에서 호렵도란 만주족인 청나라 황실 귀족의 사냥하는 장면을 그 린 그림인데, 이 청나라의 궁중기록화가 우리의 민화로 향유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유정서(가회민화박물관 연구원)씨는 ‘조선 백자도(百子圖)의 기원과 도상 형성과정’에서 백자도는 동양의 완전수(數)인 백(百)과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남자아이(子)가 결합하여 자손번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는 기복화(祈福畵)이며, 중국적 도상에 기원을 두지만, 조선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설명하였다.

 

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