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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뜻:우도십경-새와 용을 노래하는...../최열

sosoart 2012. 10. 12. 17:33

최열 그림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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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우도십경, 새와 용을 노래하는 유배객 김정

최열

그림의 뜻(43) 김남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최열 / 미술평론가

무지개는 바닷물 마셔 긴 꼬리 드리우고 完虹飮海垂長尾
대붕(大鵬)은 학과 놀며 나래 펼치는데 麤鵬戱鶴飄翅翎
효주(曉珠)는 인간 세상 어두움 밝히고 曉珠明定塵區黑
촉룡(燭龍)은 환하게 두 눈 뜨고 있지 燭龍爛燁雙眼靑
-김정(金淨 1486-1521), <우도가(牛島歌)>,《충암집(沖庵集)》


바닷물 위에 소가 누워 있는 섬이 있다. 해 뜨는 동쪽을 차지한 채 빼어난 생김을 자랑하는 이 섬 이름은 소섬 또 는 쉐섬[牛島]이다. 구좌읍 종달리 땅 끝 건너 커다란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1842년이고 소가 살기 시작 한 때는 1698년의 일이다. 물론 선사시대 돌도끼며, 고인돌이 있으므로 오랜 옛날엔 사람이 살았던 땅이었겠는데 워낙 왜구의 침탈로 말미암아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었을 삼국시대 때부터는 무인도가 되었을 터, 말을 지키는 목자 만이 머무르던 섬 아닌가 한다.


김남길이 그린 <우도점마>를 보면 앉아 있는 소 모습 그대로다. 소섬 또는 우도는 남북 길이가 4km로 제법 큰 섬이었는데 그림에선 동두[쇠머리오름]와 어룡굴[주간명월]만을 특별히 그렸으니까 명승이 그 둘뿐인 느낌이지만 샅샅이 찾아보면 여덟가지라고 한다. 이를 우도팔경(牛島八景)이라고 하여 1983년에 김찬흡이란 이가 이름 지은 것이다.


먼저 주간명월(晝間明月)은 어룡굴인데, 섬 남쪽 절벽 광대코지 아래 물속 수중동굴이 여럿인 해그리안이다. 주간명월의 말뜻은 한낮 굴속에서 달을 본다는 것인데 조그만 배를 얻어 타고 암벽 속으로 들어가면 햇빛이 동굴 천장에 비쳐 마침내 달빛과도 같아지니 주간 명월, 말 그대로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주간명월은 아무 때나 누구건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파도 없는 한낮 에 겨우 세 명이 탈만한 배를 타는데 경찰관의 허락이 있고서야 신비로운 광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룡굴은 용이 7, 8월 사이에 와서 살 곤 하는데 하필 고기잡이 배가 들어가면 곧 폭풍과 천둥 번개가 내려쳐 나무가 뽑히고 농사를 망치고 만 다. 그러므로 이곳 주간명월은 신성한 장소로서 섬을 지키는 성소(聖所)였던 게다.


야항어범(夜航漁帆)은 6, 7월 어두 운 밤, 섬 북동쪽 하고수동 모래톱에 자 리 잡고서 멸치를 후릴 수 있는 집어등(集魚燈)을 켠 채 멸치잡이 하는 수많은 어 선을 구경하는 일이다. 천진관산(天津觀山) 또한 천진동에서 성산봉이며, 수산봉, 지미봉을 비롯하여 한라산을 한꺼번에 바라본다는 것인데 <우도점마> 그림에는 오른쪽 위쪽에 가파른 성산, 아래 구석에 지미봉인 지미망(指尾望)을 그려놓았다. 마찬가지로 지두청사 (指頭靑沙) 또한 쇠머리오름에서 섬 전체를 바라보는 일이다. 전포망도(前浦望島)는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보는 일인 데 이렇게 보면 꼭 그림 <우도점마>와 같이 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후해석벽(後海石壁)은 광대 코지를 일컫는데 동천진동 포구에서 바라본 동쪽의 웅장한 수직절벽이다. 동안경굴(東岸鯨窟)은 동쪽 해안 고래굴을 뜻하는데 검멀레의 콧구멍이라는 두 개의 굴로 예전에 큰 고래가 살았다. 이곳에서 동굴음악회도 열렸다. 끝으로 서빈백사(西濱白沙)는 서쪽에 있는 모래밭이 무려 300m에 이르는 해수욕장이다. 특히 이 일대 해변은 앞바다 일대에서 자라는 식물인 홍조류(紅藻類)가 굴러다니다가 돌처럼 굳어져 생겨난 이른바 홍조단괴(紅藻團塊)였다. 홍조단괴는 미국 플로리다와 같은 세계 여러 곳에 있으나 이 백사장처럼 광범위하게 펼쳐진 경우는 없어 아주 특별한 곳이다.


이토록 아름다우니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유배길에 오른 김정(金淨 1486-1521)은 이곳 유배지에 머물며 언젠가 소섬에 이르러 절경(絶境)임을 발견하였고 죽음을 앞둔 어느 날엔가 저 꿈틀대는 붕새며 어룡을 부르는 노래를 간절하게 불러 제쳤다. 새와 용의 보살핌이었을까. 지금껏 김정이란 이름 잊혀지지 않았고 그가 부르던 노래 <우도가(牛島歌)> 또한 지금껏 불리고 있음에랴.

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