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할망과 오백장군의 초상, 영실기암
최열
그림의 뜻(42)
신선 사는 이 섬에 돌로 변해 仙洲化爲石
푸른 바다 가운데 우뚝 섰으니 屹立滄溟中
만고에 변치 않을 마음 한 조각이여 萬古一片心
벽해에 떠 있는 둥근달이로다 碧海孤輪月
-임제(林悌), <오백장군동(五百將軍洞)>,《남명소승(南溟小乘)》
한라산 서남쪽 허리에 전체 둘레 2km, 깊이 350m가 넘는 온갖 바위기둥이 서 있다. 이 바위 숲을 영실(靈室)이라고 한다. 영실이란 부처님께서 제자에게《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같은 모습이라고 하여 이곳 이름을 영실동이라고 하였고 그 바위를 영실기암이라 하였다. 영실기암은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영실(瀛室)이라고도 한다.
영주산(瀛洲山)이란《열자(列子)》에서 나온 이름인데 이에 근거하여 동쪽 금강산(金剛山)은 봉래산, 지리산(智異山)은 방장산, 한라산은 영주산이라 하였다. 기원전 3세기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불로초를 구하러 서불(徐市)이란 사람을 소년, 소녀 수천 명과 함께 배를 태워 보냈다. 그 서불은 영주산을 헤매다가 영곡 바위틈에서 비로소 불로초를 구했는데 이것이 곧 시로미라 부르는 암고란(岩高蘭)이었다.
영곡에 얽힌 이런 이야기는 도교와 불교 이후에 시작된 이야기이고 탐라왕국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 사실은 설문대할망 이야기다. 할망은 몸집이 너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눕고 다리를 뻗어 바다에 물장구칠만했다. 할망에겐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 남편이 도둑질 나간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잘못해 가마솥에 빠지고 말았다. 귀가한 아들이 여느 때와 달리 맛좋은 죽을 먹었는데 맨 나중에 도착한 막내가 솥 바닥에 아버지를 발견하고서 스스로 서쪽 해안 차귀도(遮歸島)로 숨어버렸고 나머지 499형제는 한라산 계곡 오백장군 바위가 되고 말았다.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할망은 이곳저곳 헤매다가 한라산 물장오리(長兀里岳)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물장오리 물은 밑이 없는 연못이었던 게다.
이 작품은《탐라십경》의 한 폭으로 야계(冶溪) 이익태(李益泰 1633-1704) 목사의 지시로 그려진 것인데 누가 그린 그림인지 알 수 없다. <영곡(瀛谷)>은 화폭 중단에 세 줄기 폭포와 구름이 쏟아져 나오는 운생굴(雲生窟)을 크게 드러낸 작품이다. 지금도 영곡에서 외치면 안개와 구름이 몰려들어 앞길이 막히는데 할망이 화를 내 물장오리 물이 운생굴을 통해 안개로 솟아나는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폭포는 위아래로 늘어선 직선판(直線板)이고 굴은 첩첩 쌓아 올린 곡선판(曲線板)으로 그렸는데 그 설정이 경이로운 걸작이다. 화폭 맨 아래쪽에 납작 깔아둔 소나무 숲의 구성도 감각에 넘치지만, 폭포 머리에 소나무를 한 줄 깔고 그 위에 오백장군 또는 천불을 배치한 구성력이 대단하다. 맨 위쪽 하늘엔 달빛 흐린데 구름 위에 주홍굴(朱紅窟)이 봉긋이 솟아 그 풍경 마치 신선의 마을과도 같이 그윽하다. 역시 재미있는 것은 구름과 땅 사이 옆으로 즐비한 천불 또는 오백장군이다. 몸뚱이엔 나무 같은 신물(神物)을 품고서 온갖 모양 모자를 쓴 채 서성대는 그 생김이 웃음을 절로 부른다.
유랑의 세월 속에 생애를 보낸 저 시인 임제(林悌 1549-1587)가 이곳 영곡에 이르러 “참으로 섬 가운데 제일동천(第一洞天)이다. 또 기암이 물가에서 산 위까지 사람처럼 서 있는 것이 무려 천백 개나 된다”라고 하고서 벗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국사람 전횡(田橫)과 그의 무리 오백 명을 생각했다. 왕위를 버리고 사라져간 그들의 운명이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것일까. 당파의 권력투쟁을 한탄하던 선비였으므로 저 설문대할망과 그의 아들 오백 명 이야기가 생각나기보다는 오히려 역사 속의 전횡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지만 ‘변치 않을 마음 한 조각’을 읊조리는 그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답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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