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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수 미술칼럼-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 이만익의 경우

sosoart 2012. 9. 14. 21:15

연재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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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 이만익의 경우

오광수

이만익 화백이 지난 8월 9일 별세하였다. 이만익 화백은 “서양그림을 배우겠다고 파리에 와 오히려 우리 미의 뿌리에 대해 각성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로부터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의 구현에 매진하였다. 그가 추구해 마지 않은 것은 한국적인 것, 한국의 미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많은 한국의 미술가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절감하는 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뿌리, 자신의 원형에 대한 자각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만큼 우리미의 뿌리를 찾는데 성과를 거두었는가는 속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만익이 말한 “한국적인 것의 상투성을 극복하고 그것을 촌스럽지 않게 보편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고를 계기로 다시금 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한국적인 것, 또는 한국미에 대한 논구는 근대에 와서 활발하게 전개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야나기 무네요시, 세켈 등 외국인에서부터 고유섭, 윤희순, 김용준, 김원용, 최순우, 이경성, 조요한 등 미술사가와 미학자들이 한국미의 탐구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접근방법에 있어서나 해석에 있어 다소의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나 많은 부분에 있어 공통점을 들어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비애, 선, 청초, 정명, 질적, 비인위적(무기교), 멋, 원만, 해학, 담백, 청순, 순리, 솔직, 조화, 천진, 소박 같은 요소는 이들의 언급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또 대부분은 겹치기도 한다.


조형예술에 있어 한국적이라 할 때 소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자연, 한국의 풍물, 한국의 정서 속에서 소재를 찾는다. 예컨대, 최영림의 작품은 전설, 신화, 민담 등에서, 박생광이 불교적 주제, 역사적 사건, 무속에서, 김환기가 한국의 자연과 정서에 밀착된 산, 달, 백자, 매화, 학 등에서, 박수근이 서민들의 생활단면에서 오는 독특한 정감을 구현해낸 것을 일반적으로 한국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장욱진의 향토적인 정서를 포착한 작품이나 전혁림의 옛 기물의 문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구현해준 것을 보고 쉽게 한국적인 것을 떠올린다. 이러한 소재들은 다른 곳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시각에 순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만이 한국적이라고 단정 지우는 것은 자칫 우리의 정신, 우리의 정서, 우리의 율조를 벗어나 어느 일면적인 것에 치우친 협소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에는 오방색을 한국적인 색채라 하여 의식적으로 이를 끌어들이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오방색이란 삼원색에 흑백을 포함한 것이다. 우리만이 사용한 색채가 아니라 어느 민족, 어느 지역에서도 사용되는 보편적인 색채일 따름이다. 단, 이 다섯가지의 색채가 어떤 체계로서 조합되어 독특한 시각적 충일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즉 우리만의 공감의 체계를 지닐 때만이 그것은 우리 고유한 색채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러한 색채가 어떠한 방법을 통해 형식화하느냐에 우리만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만익의 한국적인 것의 접근은 소재와 방법 양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가 주로 다룬 소재는 한국의 신화, 설화, 민담, 역사 등에 걸친다. 단군신화, 고구려 건국설화, 처용, 흥부, 심청, 정읍사, 녹두장군, 명성황후 등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고유한 것이자 보편적인 소재들이다. 이런 소재들을 그는 이야기그림 형식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회화에서 일찍이 추방되었던 문학성을 다시 부활시킨데 그 독자한 영역을 확보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대체로 단아한 구성과 청초한 채색을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야기그림 형식인 만큼 평면적이자 서술적인 구성의 특징을 띤다. 특히 드라마의 표제로서 사용된 명성황후나 심청의 이미지는 고귀하면서도 비극적인, 또는 청순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내는 여인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같다.

일본의 대표적인 상징의 표상으로 후지산이 등장되는데 역대 많은 후지산 가운데 호쿠사이가 그린 우키요에(다색 목판화) 후지산이 가장 먼저 떠오르듯 심청하면 그 누가 그린 것보다 이만익이 그린 심청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미감에 가장 상응된다면 이만익의 심청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