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하룻밤/ 문 정 희

sosoart 2013. 1. 1. 17:02

하룻밤/ 문 정 희

 

 

하룻밤을 산정호수에서 자기로 했다

고등학교 동창들 30년만에 만나

호변을 걷고 별도 바라보았다

시간이 할퀸 자국을 공평하게 나눠 가졌으니

화장으로 가릴 필요도 없이

모두들 기억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우리는 다시 수학여행 온 계집애들

잔잔하지만 미궁을 감춘 호수의 밤은 깊어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냥 깔깔거렸다

그 중 어쩌다 실명을 한 친구 하나가

`이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년` 이라며

계속 유머를 터뜨렸지만

앞이 안 보이는 것은 그녀뿐이 아니었다

아니, 앞이 훤히 보여 허우적이며

딸과 사위 자랑을 조금 해보기로 했다

밤이 깊도록

허리가 휘도록 웃다가

몰래 눈물을 닦다가

친구들은 하나둘 잠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아기들, 이 착한 계집애들아

벌써 할머니들아

나는 검은 출석부를 들고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벼이 또 30년이 흐른 후

이 산정호수에 와서 함께 잘 사람 손들어봐라

하루가 고단했는지 아무도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淸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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