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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진성근 : 판각적 송도/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2013-02-20 ~ 2013-02-26

sosoart 2013. 2. 23. 19:08

진성근 : 판각적 송도

 






이성규


우리 땅에는 소나무가 흔하다. 예전 사람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소나무로 만든 가구와 함께 살았다. 송편을 찌고,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고 속껍질은 보릿고개시절 밥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에서 살고 소나무에서 죽는다"라는 말처럼 우리민족에게 소나무만큼 물질,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준 나무는 없다. 유럽이 자작나무문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소나무문화권에서 살아온 것이다. 혹독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다하여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나무를 감수성 풍부한 예술가들이 가만 놔들리 없다. 신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솔거의 「노송도」에서부터 정선과 김정희의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소나무를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내고, 절제된 언어로 시어를 만들어 냈다. 『판각적송도』라는 다소 낮선 이름으로 전시회를 갖는 진성근도 소나무를 그리는 화가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목판위에 채색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인 판각화가 진성근이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 전관을 초대받은 전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무렵이다. 그전의 진성근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산수화였다. 서양화가에게 풍경화대신 산수화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진성근을 이야기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인데 그의 풍경그림에는 상상과 철학,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산수와 함께 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서 얻어진 감동의 풍경을 캔버스라는 평면을 대신하여 목판위에 칼로 새기고 채색한 것이 진성근을 판각화가로 알리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사찰의 일주문과 꽃 창살, 성곽의 담장과 건물, 돌장승과 전통가옥 등, 산하의 자연 풍경을 칼로 새기고 채색한 그의 그림을 이제 우리는 판각산수화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2008년 8월, 진성근은 『칼로 그린 소나무 풍경』이라는 주제로 진성근식 소나무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독야청청으로 서있는 소나무에서부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나무는 산봉우리, 기암괴석이나 그리고 시냇가, 기와집에 의지한 채 서있었다. 땅위에 굳게 박혀있기도 하였고, 줄기나 가지를 꺾은 절지형태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워낙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였기에 소나무형태는 모르되 소나무의 마음까지 담아내기까지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탈 평면이라는 진성근 특유의 판각기법이 어느 정도의 양감과 질감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고정된 풍경의 고루함마저 해결해 주지는 못한 것이다.

2010년 5월, 『몸으로 만든 풍경』에서 그의 소나무는 마침내 기운생동으로 넘쳐 있었다. 고결한 소나무의 이미지가 맑음과 고요함으로 오롯하게 새겨져 있었다. 굽어 올라간 줄기에는 생동감이 더해졌고, 솔잎의 색은 더 선명해졌다. 선과 색채리듬을 삽입한 구도에서는 소나무가 지니고 있는 엄숙한 긴장감마저 해소하려는 반 추상적 시도도 보여주었다.


2013년, 『판각적송도』의 이번 전시는 진성근이 산수풍경을 목판위에 새기고 채색하는 판각화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지난 10년 동안 작업해온 소나무그림에 대하여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판각적송도』의 작품들을 보면 칼에 깎인 나무판은 날카롭지만 더 부드러워졌으며, 채색의 붓질은 더 화려해졌지만 본래의 따스함까지 놓치진 않았다. 판각의 기교는 더욱 세련되어지고, 작가의 창의력은 더 풍성해진 까닭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와 백자의 선을 차용하여 여백을 삼았다든가, 소나무 형태를 인체의 신비와 맞물려 의인화시켰다든가, 붉은 비늘의 거친 소나무 표면을 살며시 추상화했다는 점은 작가의 안주하지 않으려는 도전정신이라 하겠다. 또 아래에서 위를 치켜보는 구도로 그려진 소나무는 소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수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예전사람들은 소나무 줄기를 하늘로 오르는 용으로 보기도 하였다.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어느 한 방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 도시와 도시 너머의 산을 바라본다든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위를 치켜보는 방법은 동양화의 구도인 삼원법과 매우 유사하다. 또 솔잎의 표현에 있어서도 송엽준을 닮은 준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화적 품격의 일단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진성근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특히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녔다. 진성근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답사와 구상의 시간을 제외하고도 적게는 10일, 많게는 100일의 시간을 작업에 몰입하여야 한다. 더욱이 그의 작품은 여백의 공간까지도 노동의 시간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작품에 쏟아 내는 열정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순간 우주를 꿰뚫어 정곡을 찌르는 강력한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필휘지의 작품이 아니라 진성근의 작품은 천필만필로 깎고 다듬어진 칼질의 결과물이다. 한 점 한 땀의 정성으로 천필만필에 도달했을 때 어느덧 그의 작품은 스스로 그러한 까닭이 된다.


진성근의 소나무를 바라보라. 조용히 좋아하는 솔바람 솔향기가 전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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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