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산 / 이형기

sosoart 2013. 3. 4. 22:20
         산 / 이형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鎭座)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감고
      방심무한(放心無限)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激怒)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 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출처 : nie-group
      글쓴이 : 비비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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