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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시 이야기]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의 솔숲’으로 간다

sosoart 2013. 6. 19. 22:14

[김용택의 시 이야기]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의 솔숲’으로 간다 김용택의 시 이야기 2013.03.08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의 솔숲’으로 간다
놀 줄 알아야 살 줄 안다. 일상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삶이 공부라는 것을 우린 잊고 산다. 표정을 잃었던 아이들에게 놀이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마구 치달리고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갔다.
나도 봄산에서는/나를 버릴 수 있으리/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남은 생도 벅차리/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무엇을 내 손에 쥐고/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눈뜨리/ 눈을 뜨리/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시집 <그 여자네 집> ‘그대 생의 솔숲에서’ 전문, 김용택 지음



 

지난겨울 추위는 매서웠다.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추위가 우리를 겁먹게 했다. 그 강추위 속에서도 거실에 있는 마삭줄은 줄기의 끝에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법 잎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먼 산의 산 빛이 다르다. 참나무 가지들이 뽀얘졌다. 논이나 밭에 흙들이 달라졌다. 양지쪽에 가보면 지난겨울을 지낸 냉이가 푸른색을 찾아간다. 개불알풀꽃도 맺혀 있다. 산 깊은 곳의 양지쪽에서는 아기 붓꽃이 피어날 것이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말릴 수 없는 봄은 그렇게 우리와의 굳건한 약속을 지켜낸다. 겨울비에 얼어 얼음이 박혀 있던 뜰 앞의 단풍나무 실가지 끝이 달라졌다. 잎이 솟고 있다. 어떻게 그 추운 칼바람과 얼음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는지. 생각할수록 생명은 경이롭기만 하다.

오래전 내가 근무하던 작은 분교가 있었다. 마암분교다. 섬진강댐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작은 학교에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 아이들은 모두 18명이었다. 교실과 교정은 누구도 돌보지 않아 사람 나간 집 같았다. 아이들은 표정이 없었다. 부임한 날 나는 이 폐교 같은 학교에 들어서며 풀 죽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의아해했다. 나는 학교 이곳저곳을 뒤져 운동 기구들을 찾아냈다. 모두 헌 것들이었다. 배드민턴 채와 야구 방망이를 찾아 배드민턴공과 야구공을 사왔다. 아이들을 불러내 배드민턴과 야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점점 야구 방망이를 거머쥐고 다부지게 서서 공을 쳤다. 함성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고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고함과 몸놀림을 찾아갔다. 거침이 없고, 망설임이 없었다. 마구 치달리고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질렀다. 운동장 가에 걸려 있던 호수 물결이 살아났고, 학교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이 푸르러졌다. 아이들과 산천이 어우러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산도 물도 사람이 있어야 산이고 물이었던 것이다.



 



 

학교 뒤는 작은 솔숲이었다. 작은 동산이었다. 아름드리는 아니더라도 아이들 몸통만 한 소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 어느 날 나는 심심해서 그 숲에 들어가 보았다. 작은 무덤들로 이어진 오솔길들이 제법이었다. 희미한 길에는 솔잎과 참나무, 서나무, 뿔나무, 싸리나무, 밤나무 잎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솔잎들이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 아침 햇살을 받아 실처럼 빛이 났다. 폭삭폭삭한 나뭇잎 위를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비탈길을 내려서자 호수가 문득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호수의 잔물결들이 눈이 부시게 찬란했다. 갑자기 나타난 호수가 놀라웠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다시 작은 굽이를 돌아 비탈길을 올라갔다. 비탈길에 올라서자 갑자기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 마치 갑자기 마주친 호수의 아침 햇살 같았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나 혼자, 때로는 아이들과 날마다 이 작은 동산의 솔숲을 찾았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왔다. 아이들도, 솔숲도 부산해졌다. 아이들은 내가 없어도 스스로 편을 갈라 야구도 하고 축구도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가에 앉아 나는 행복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기를 바꾼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놀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아이들은 놀면서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고쳐 상대방과 맞춰나간다. 야구공이 잘 맞지 않는 방망이를 스스로 고치고 바꿔 익숙하게 해서 야구공을 잘 치게 되듯,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자기를 바꾸고 고쳐 상대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삶이 공부라는 것을 우린 잊고 산다. 그러므로 놀 줄 알아야 살 줄 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관계를 맺고 산다. 나 홀로 살지 못한다. 자연이 그러하다. 사람도 자연이어서 소나무 한 그루가 사는 것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같은 이치다. 관계의 정상화가 삶 아닌가. 소나무 숲도 이와 같고 그와 같다.



 

소나무 숲 속에는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새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솔숲 사이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은 고왔고, 따사로웠으며 빛났다. 청설모들이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뛰어다니면 묵은 솔잎들이 실 날처럼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렸다. 새들이 울었다. 박새였다. 작은 박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가 앉으면 솔잎들이 떨어졌다. 싸리나무 잎이 자랐고 쑥들이 돋아났으며 제비꽃이 피어났다. 아이들과 앉아 제비꽃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솔숲은 달라졌다. 나뭇잎들은 그야말로 쑥쑥 솟아올랐다. 막 태어난 나뭇잎들이 받아 든 아침 햇살은 나를 놀랍게 했다. 어쩌면 저렇게 햇살과 새잎이 아름다울꼬. 아이들과 나무와 풀과 하늘을 나는 새들이 다 한 몸이었다. 4월과 5월 내내 나는 감탄으로 그 솔숲을 찾았다. 느린 듯 빠르게 자연은 변해 간다. 새잎은 피어나 자라고 숲은 우거져 간다. 한두 달 걸어 다녔더니, 길이 제법 뚜렷해졌다. 나를 따라나선 아이들도 늘어났다. 숲에 들면 아이들은 마구 달렸다. 아이들은 ‘천천히’ 가 없다.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자기의 삶으로 만든다. 어디서나 뛰고 달린다. 아이들은 늘 숨이 차다.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이 다 새롭고 신비로워서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다. 내 뒤에 처진 아이들은 없다. 늘 앞서 달린다. 어느 날 나는 솔숲에서 돌아와 아이들이 뛰노는 땅과 아침 호수를 바라보며 시를 썼다.


출처: 국민은행 KB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