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하건데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비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개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 죽비
하다 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 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거리며, 떨며, 다만
하늘을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同樂茶軒-문화와 예술 > 詩가 있는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0) | 2013.07.08 |
---|---|
그리운 사람 얼굴처럼 / 김용택 (0) | 2013.07.08 |
[스크랩] 철조망에 걸린 편지 / 이길원 (0) | 2013.07.06 |
[스크랩] Brian Crain:Piano & Cello Duet With Yujeong Lee (0) | 2013.07.06 |
눈물/ 한용운 (0) | 2013.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