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시인 김용택

sosoart 2013. 8. 17. 12:39

GOLD&WISE

 
[GOLD] 시인 김용택
골목을 지날 때마다 설명을 곁들였다. “여기는 공구 거리야, 한참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지 몰라. 여기는 웨딩 거리, 결혼식과 관련해서 없는 게 없지? 여기는 영화의 거리야. 극장이 있어서 자주 들르는데 밤이면 젊은이들로 가득 차. 저기 저 골목 끝 보여? 예전에는 유명한 번화가였는데 지금은 한산해. 그렇게 변하는 거지. 또 여기는…. 자신이 사는 곳을 신이 나서 이토록 세세히 설명할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발견하고, 그것을 기어이 사랑하고야 마는 김용택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김용택

좋은 삶을 살고 싶으면 글을 써라
오래도록 교편을 잡았던 시인은 퇴임 후 더 많은 사람의 스승이 됐다. 그는 요즘 강연을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 주부, 회사원, 공무원, CEO 등 많은 사람에게 그가 한결같이 건네는 말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삶의 가치, 삶의 방법이 예전과 달라졌어요. 기술과 기능을 강조하던 산업화 시대가 지나갔죠.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데만 가치를 두던 시대가 끝났어요. 이제 새로운 물건이 거의 없잖아요. 반복될 뿐이지. 그러니까 오늘날의 삶은 기술과 기능에 인문학을 보태야 해요. 인문학이 강조되고 강화돼야 변화하는 세계에 잘 대응하고 창조할 수 있어요. 인문학 중에서도 글쓰기가 매우 중요하죠.”
읽는 데 습관을 들이기도 어려운데 글을 쓰라니. 글쓰기가 재능을 가진 특정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대목이다.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쓰는 거예요. 글쓰기라고 해서 꼭 문학을 지칭하진 않아요. 글쓰기라고 하면 유독 문학을 이야기하는데 아니에요. 서점에 가보세요. 문학 서적은 15% 정도예요. 제가 말하는 글쓰기는 시와 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쓰라는 거예요. 자기가 하는 일을 쓰세요.”
글을 쓰려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데, 자기가 하는 일을 글로 쓰다 보면 자세히 보이고 잘 알게 돼서 결국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기업가 중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드물어요. 일과 관련된 내용을 자신이 쓰지 않으니까. 자기 회사인데, 자기보다 회사 사람들이 회사에 대해 더 잘 아는 거죠. 경영자든 누구든 글을 쓰면서 가진 걸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삶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해요. 이걸 끊임없이 반복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죠.”

진짜 공부를 시켜라
나를 바라보고, 내 삶을 들여다보고 정리할 줄 알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정답을 알려주고 그걸 외우게 하는 교육을 하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져 시도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마음대로 놀고 책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기록하는 교육을 해야 요즘 말하는 창조 경제가 이루어져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아요. 정답을 알려주고 정답을 쓰게 하죠. 점수만 많이 맞으면 되는 세상이잖아요. 창조는 정답하고 상관없는 거예요. 창조는 인간성이 풍요로워지고 영혼이 자유로워야 나타나요. 그중에서 글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갖도록 해주는 여러 공부 중 하나죠. 공부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키우게 해주는 것이에요. 그래야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있으니까요. 1등을 하기 위해 외우는 게 공부가 아니죠.”
김용택 시인은 농부를 예로 들었다. 학교도 안 가고 책도 안 보고 선생님이 없어도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들. 배운 걸 다른 곳에 응용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이 바로 농부였다.
“농사짓는 사람은 삶이 공부였어요. 그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만 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공부해요. 대단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여기서 배운 걸 다른 곳에 써먹어요. 우리는 안 써먹지만. 시험 볼 때만 쓰죠. 활용을 안 해요. 농부는 어떤 걸 배우면 내 생각을 고치고 바꿔요. 잘못됐다 싶으면 농사짓는 방법을 바꿔요. 그래서 결국 삶을 바꾸죠. 이게 공부예요. 공부란 지식을 얻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자, 삶의 세계를 바꾸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이 없어요.”
김용택 시인은 농사짓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그들에게 참 많은 걸 배웠다. 논리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을 뿐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농부였다. 그러니 진짜 공부란 농부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
“농부는 자연이 하는 일을 알아요. 바람이 하는 일을 알고, 봄비가 하는 일을 알죠. 달이 차서 보름이 되고 달이 줄어들어 그믐이 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하는 일도 잘 알고 있어요. 과학자죠. 또 논과 밭을 아주 예쁘게 가꿔요. 예술 작품이 따로 없죠. 그러니 그들은 예술가이기도 해요. 그리고 자연의 질서와 변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눈치채고 바꾸려 하고 생각하며 사는 철학자죠.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바람이 불면 앞산에 참나무 이파리가 뒤집어진다고 한다. 참나무 이파리의 뒤쪽은 하얘서 바람이 불어 이파리가 뒤집어지면 산의 색이 뽀얗게 변하는데, 농부는 그러면 사흘 후에 비가 온다고 했단다. 참나무 잎이 뒤집어지는 바람은 마파람, 즉 남풍이다. 남풍이 불면 저기압이 접근해 그 중심에 들어가는데 농부는 자연의 움직임만으로도 그걸 알았다면서 “농부의 말에는 허튼 말이 없다”는 김용택 시인. 이렇게 농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그리고 가정이 바뀌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김용택1

공동체인가, 조직인가
“가정이란 사랑과 애정으로 가꾸는 아름다운 삶의 공동체예요.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가정은 서울대에 가기 위한 강력한 사회 조직이죠. 조직, 역할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아빠는 돈만 벌면 되고, 엄마는 그 돈으로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면 되고, 아이는 공부해서 서울대만 가면 되는 거죠. 애정과 사랑이 없어요.”
애정과 사랑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려면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고 아이가 어떤 꿈을 꾸는지 잘 알아야 한다. 김용택 시인은 그렇게 살고 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딸이 몇 개월 만에 집에 와도 어색함이 없다. 아이는 아빠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고, 아빠도 아이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을 출간할 때면 가족에게 먼저 보여준다. 시인의 가족이 모여 넣을 시와 뺄 시를 가리고 제목을 함께 고민한다. 각자의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서로 존중한다. 이번에 새로 발간한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요.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얘기한 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라는 것이었죠. 딸아이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고, 아들은 대학에 가지 않았어요. 딸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지금 미국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고, 아들은 대학에 가는 대신 일을 하고 있어요. 모두 만족해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니까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늘 편안하고 행복해요.”
꿈은 부모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삶은 세상의 잣대에 맞춰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걸 찾아 자신의 삶을 가꿔야 한다. 김용택 시인이 아이들에게 늘 해온 말이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웠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읽기 시작한 책에 빠져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글을 썼다. 13년쯤 혼자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가 된 자신의 글을 세상과 나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까지 시간은 더디 흐르지만 결국 찾게 되고, 그것을 찾고 나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아버지의 삶을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늦어도 내년 5월쯤이면 시인의 고향인 섬진강 진메마을에 ‘김용택의 작은 학교’가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나는 사람 누구든 들러 김용택 시인과 함께 농사 얘기, 생태 얘기, 시 얘기, 마을 얘기, 문화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놀며 공부할 수 있다. 시인의 학교에 가기 전 미리 행복을 찾고 싶다면 먼저 가족과 작은 학교를 만들어보라. 조직이 아닌 공동체가 되어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라. 시원한 수박을 쪼개 나눠 먹으며 더위를 잊는 김용택 시인의 가족과 같은 여름을 보내다 보면 당신의 삶도 어느새 시가 되리라.

글: 이재영(자유기고가, <엄마의 짧은 휴가 긴 여행: 예쁘다고 말해줄걸 그랬어> 저자) 포토그래퍼: 최충식 어시스턴트: 박혜미

출처: KB국민은행 사외보 GOLD&WISE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