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GOLD] 시인 신달자

sosoart 2013. 8. 17. 12:44

[GOLD] 시인 신달자
신달자

신달자 선생은 이름 뒤에 숨지 않는다. 글은 그에게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의 꿈이다.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고, 각종 문학상에 이름을 올려서가 아니다. 세월을 이겨내온 작가의 감성을 꾸준히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시간 앞에 주눅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신달자에게 주어진 2013년이라는 새 시간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를.

행복도 나 자신도 낮추지 말자고요
2013년,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운 1년이 주어졌다. 여전한 열정이 무서울 정도라는 고희(古稀)의 작가 신달자 선생은 앞으로의 1년 모두 행복하자고 했다.
“새해에는 모든 것에 감동하고 가진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할 줄 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나 자신도 그렇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늘 없는 것만 말해요. 항상 가난하고 재미없죠. 그러지 말고, 좀 더 가진 것에 대한 행복을 누리고 살았으면 싶어요. 언젠가 갤럽 조사를 보니까 70% 정도의 사람들이 월급은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대요. 월급은 재미없는 돈인 거지. 그냥 나가는 돈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보면 모든 소비는 즐거움이잖아요. 그 돈으로 내 가족이 먹고 입고 살고 있잖아. 굉장히 고맙고 즐거운 내 돈이죠. 이까짓 월급이 아니고, 행복한 내 돈인 거예요. 2013년에는 모두들 자신의 행복을 낮추지 말고, 자신을 낮추지도 말고 모든 것에 감동하면서 살기를 바라요.”
스스로를 높이며 살자는 덕담으로 시작한 작가와의 대화는 새해 계획으로 이어졌다. 시인협회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눈 쌓인 운현궁의 풍경은 달력의 첫 장 같았다. 자연 곁에서 한없이 자그마해진 우리들이 새 달력 속에 들어가 걷는 듯 이야기가 계속됐다. 나는 작가의 좀 더 구체적이고 비밀스러운 새해 계획이 궁금해 세 가지를 물었다. 새해에 갖고 싶은 것, 버리고 싶은 것,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계획을 쏟아냈다.

신달자2

2013년 가장 갖고 싶은 것
“가장 갖고 싶은 건 여유예요. 여유라는 게 참 신기해서, 그냥 남는 시간 같지만 아니거든. 여유라는 건 뭘 하게 만드는 시간이에요. 잊어버린 것도 찾게 하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게 하고, 안녕 하고 인사도 하게 하고, 모든 것에 아는 척하게 만들어주죠. 이런 삶이 잘 사는게 아닐까 싶어요. 아침에 나오면서 오늘 할 일을 죽 메모해놓고, 밤에 집에 들어가 한 일들을 지우는 습관이 있는데, 해야 할 일을 끝냈다는 만족감은 있지만 그 안에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깝죠. 개인적으로 일에 매달려 몇 년을 정신없이 살았거든. 여유가 생기면 그냥 터덜터덜 걸으면서 안 보던 걸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좋은 친구들을 갖고 싶어요. 마음을 서로 나누는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뭐든지 해낼 것 같거든요.”
여유와 친구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왜 늘 수직의 목표만을 새해 계획이라고 생각했을까? 많이 벌지 않아도, 좋은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와 그것을 나눌 친구가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새하얀 다이어리 맨 앞장에 ‘여유와 친구’라고 새겨 넣는다면 그 두 단어만으로 1년이 꽉 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그렇다면, 새해에 그가 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버리고 싶은 것과 나누고 싶은 것
“나는 단점이 너무 많아요. 그중 하나가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는 건데, 그래서 우리 집에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내 머릿속에도 정리 안 된 사고가 너무 많고요. 정돈이라는 건, 필요한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게 돼서,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아닌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하죠. 이런 정돈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풍수지리에 보면 운을 얻고 싶으면 잔인하게 버리라고 나와 있어요. 운은 절대로 복잡한 곳에 오지 않아요. 싫어하거든. 이렇게 이론으로는 아는데, 실제 내 인생은 많이 복잡하죠. 머리가 깨끗이 정돈되어 있지 않아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게 많아요. 사고 자체를 스마트하고 날씬하게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그것에 연연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고 투명하게 살고 싶어요.”
그는 불필요한 것을 정리해냄으로써 그 빈자리를 소중한 것에 내어주는 2013년을 희망했다. 과연 나에게 불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의 가치로운 것에 대한 고민을 숙제로 안고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다.
“나누고 싶은 것은 마음이죠. 마음이 있어야 행동도 나오는 거니까요. 다 핑계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마음 나누는 일을 잘 못했어요. 두어 달 전에 막내까지 결혼을 시켰으니 자식에 대한 숙제도 끝났고, 지금이라도 마음을 나누면서 살아야죠. 살아보니까 나누는 기쁨은 주는 사람에게 훨씬 커요. 받는 기쁨이 주는 기쁨을 이길 수 없어요. 그 기쁨을 이제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여유와 친구를 갖고 주변을 정돈하고 마음을 나누며 사는 2013년, 신달자의 2013년은 직선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위로 치솟아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원형이었다. 마음에서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는 새해 계획은 정말 멋졌다.

신달자3

생각보다 우린 가진 게 많다
“사실 마음 같아선 지금도 맨발로 나무에 기어오를 것 같아요. 열정이 두려울 정도예요. 옛날에 우리 어머니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는 게 싫었어요. 쳐다봐야 방도가 생기지, 나는 그렇게 살았어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너무 많았죠. 오르지 못할 나무투성인데, 떨어지면서 발목이 부러지고 상처 나고 피가 나면서, 오르고 오르고 그렇게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었어요. 떨어지더라도 올라가는거죠.”
희망도 행복도 떨어져 발목이 부러질지언정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내 것이 될 거라며 그는 “이 세상이 아무리 엉터리여도 하는 자를 못 당합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새해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렇게 다독였다.
“우리는 늘 언제나, 또 누구나 사정이 나빴어요. 부모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혹은 나 자신 때문에 사정이 늘 안 좋았죠. 하지만 올해에는 사정이 나쁘다고 핑계 대지 말고 뭔가 즐거워할 일을 찾았으면 싶어요. 생각보다 우린 가진 게 많아요. 조국도 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고, 사계절이 아름다운 자연도 있고. 돈이 가진 것의 기준이 되진 않아요. 반드시 돈이 있어야 즐거운 것도 아니고요. 동네 골목 싸구려 음식이라도 가족이 모여 함께 먹으면 그게 잔치죠. 비교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사세요.”
나보다 잘난 사람, 부자는 늘 많기 때문에 비교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신달자 시인. 2013년 한 권의 에세이와 한 권의 시집을 새로 출간할 계획인 현재 진행형의 작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둥글게 굴러갈 그의 새해 계획을 듣고 난 뒤 물었다. 지금 행복한가요?
나? 나는 행복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에디터: 이재영/포토그래퍼: 최충식/어시스턴트: 박혜미

출처: KB국민은행 사외보 GOLD&WISE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