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하동포구에서 굽이굽이/ 고재종

sosoart 2013. 11. 13. 20:10

 

 

하동포구에서 굽이굽이/ 고재종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의 새하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빚깔이거나, 강은 도요새 댕기물떼새 흰고니 떼를 속속 날려선, 그것들의 신신하고 유유한 하릴없이 아득한 날갯짓이거나로, 시방 내겐 요렇듯이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다.

 

 강 곁에 모람모람 들어앉은 마산면 피아골 화개면 집들, 산 위 구중심처의 화엄사거나 쌍계사 절들을 보면,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피안인지. 난 다만 봄볕 융융한 그 사이에서 저기 달래 냉이 자운영을 캐는 산사람들 본다. 저기 은어 쏘가리 버들치를 건지는 강사람들 본다. 저들 저렇듯이 산길 물길로 흐르며 마음엔 무슨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새는 날리는지.

 

 난 다시 꽃구름에 홀리고 새목청에 자지러져선, 우두망찰, 먼 곳을 보며 눈시울 함뿍 적신다. 그러다 또 애기쑥국에 재첩회 한 접시로 서럽도록 맑아져선, 저 산 저렇듯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푸르러지고, 저 강 또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그렇게 불었던 것을 내 아둔패기로 새삼 눈치라도 채는가 마는가. 시방은 눈감아도 저기 있고 눈떠도 여기 있는 한세상 굽이굽이다.

 

 지리산이여, 하면 내가 네 노루막이 위 청천에 닿고, 섬진강이여, 내가 네 자락 끝의 창해에 이르는 길을 찾기는 찾겠는가. 가슴속의 창날 우뚝우뚝한 것으로 스스로를 찔러 무화과 속꽃 한 송이 피울지라도, 가슴속의 우북두북한 것으로 깃을 쳐 죽을 때 꼭 한번 눈뜨고 죽는다는 눈먼새 한 마리쯤 날릴지라도, 생의 애면글면한 이 길, 누구라서 그예는 일렁이지 않겠는가.

 

 

- 시집『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시학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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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은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남강과 섬진강의 출발점인 지리산은 기묘한 산세와 특유의 웅장함으로 찾는 이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특히 지리산자락 아래로 섬진강이 유려하게 흐르는 구례는 예부터 세 가지 큰 것과 아름다운 것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들녘이 크다고 했고, 경관과 소출(각종 농산물과 특산품 등), 인심이 아름답다고 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비롯해 수많은 도참비기들은 구례를 살기 좋은 곳으로 지목해왔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길 주변엔 명당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일 뿐 아니라 고재종 시인이 전해주는 이곳의 봄 풍경처럼 정말 경관 하나는 ‘끝내주는’ 명소들이 줄지어 섰다. 이 시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봄철 ‘홍보용’으로 작정하고 쓴 것 같고 또 그렇게 읽히기도 하지만, 사시사철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 아닐 때가 어디 있으랴. 섬진강 19번국도 따라 하동포구 80리 길은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정평이 났다. 벚꽃길이 물들면 그대로 잠시 눈을 뗄 수 없는 단풍길 아닌가.

 

 눈 감아도 일렁이는 ‘생의 애면글면한 이 길’ 이 가을에 다시 또 걷고 싶었는데 올해는 그른 것 같다.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의 새하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빚깔’의 때를 기다릴 도리 밖에.

 

 

권순진

 


Romance sans paroles et rondo elegant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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