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sosoart 2014. 2. 8. 11:12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이이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시집「수평선 너머」(한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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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문학사상사에서「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라는 제목으로 펴낸 각계 명사들의 애송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그 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시는 모든 예술의 원천이며, 또한 사무사(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순수한 지성과 아름다운 정서의 결정체다. 조선시대의 과거가 시 쓰기 시험과 다를 바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사랑할 줄 모르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제로 손학규 이명박 정동영 등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과 각계 인사, 연예인 등 31인이 좋아하는 시를 소개했다. 

 

 이글의 내용이 별반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시를 사랑할 줄 모르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한 대목이 마음에 좀 걸린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시에도 관심을 좀 가지라는 말처럼 들리고, 큰 인물이 되려면 시를 몇 편쯤 읽고서 아는 체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시가 그런 용도로 복무되어야 마땅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시는 간혹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내 삶을 추스르는데 아주 유용하게 기능하는 것도 사실이니 그냥 넘어가겠다. 

 

 그 책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애송시가 바로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다. 이 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그 사람이 되고자’한다며,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물음은 나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 가야할 과제가 되었다. 다만 내가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에 취임 이후 그 신념이 묽어진 것인지, 애당초 진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자기중심적 시 해석에서 비롯된 오독의 결과인지, 아니면 집무실 책상 유리판 밑에 끼워두고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함석헌 선생께서 시에서 말한 ‘그 사람’과는 한참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 국민을 실망시켰다. 많은 정치인들이 좋아한다는 시는 일부에 편중되어 윤동주의 ‘서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정도다. 솔직히 정서작용이 아니라 이미지 포장을 위한 ‘전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저께 2월 4일이 씨알 함석헌 선생(1901∼1989)의 서거 25주기였다. 올해 기념관을 건립하고 전집도 재발행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싸우는 평화주의자’, 인권운동가이자 문필가이며, ‘씨알사상’의 창시자인 선생의 큰 삶과 정신이 ‘큰 인물’될 사람은 물론 국민들에게 오롯이 스며들길 기대한다. 70년대 군사 독재정권시절, 얇디얇은「씨알의 소리」한 권 손에 거머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먹먹하던 가슴이 뿌듯해지던 시기가 있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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