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그래서, 그리고?/ 이상훈

sosoart 2014. 3. 8. 23:29

 

 

 

 

그래서, 그리고?/ 이상훈

 

 

복싱을 하며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하자 웬 주먹질이냐고 했다 제대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자 공장에나 다니지 뭔 공부냐고 했다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하자 저 놈이 머리는 좀 되는 놈이라고 했다 연극을 시작하자 밥 빌어먹기도 힘든데 웬 연극질이냐고 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자 넌 연기 체질이라고 했다 연극을 그만두고 신학 대학에 간다고 하자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고 했다 졸업 후 호떡 장사를 하자 그럼 그렇지 니가 무슨 목사가 되겠냐고 했다 목사가 되어 거리와 전철에서 설교를 하자 돈키호테 같은 놈이라고 했다 십년 후 무신론자가 되어 김밥장사를 하자 그냥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시를 쓴다고 하자 연구대상이라며 시집이나 하나 달라고 했다

 

- 시집『가재가 부르는 노래』(namebooks,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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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안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담아낸 이른바 ‘성장서사’의 속성을 드러내는 시가 꼭 한 두 편씩은 끼어있기 마련이다. 그 점에서 대개의 첫 시집은 내밀한 서정이 자전적 서사를 아늑하게 감싸는 일종의 서정적 ‘서사 시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느지막이 시업으로 들어선 경우에는 성장통에 관한 고백보다는 구체적 경험들로부터 얻은 인생논적 깨달음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반성적 사유가 더 짙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 시에는 시인의 이력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세상을 향해 ‘그래서, 그리고?’ 어쩔 거냐며 외치는 빳빳한 목청의 핏대가 느껴진다. 삶에 대한 변명이자 고분고분한 자술서이기도 한 이 시를 통속적인 호기심으로 대충 읽자면 누구라도 그의 인생유전을 두고 '연구대상'으로 여길 만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되는 심각한 주제를 고뇌하면서 오히려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도 엿보인다.

 

 문득 인간 예수의 내면세계를 심리학적 상상력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민요섭이 떠오른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본적 회의를 품고 있는 민요섭처럼 '신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이상훈 시인 스스로에게도 숱하게 던졌으리라. 좀 더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인식하려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들을 아프게 거쳤기에 신의 논리에서 벗어나 현세적 의무에 충실하고자한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소설 '사람의 아들'은 선과 정의로 표상되는 천상의 논리와 지혜와 자유로 특정 지워지는 지상의 논리 사이에서의 충돌을 주제로 삼았는데, 시인 역시 지상의 논리에 더 기울어져 뵈지만 여전히 그 갈등의 노정에 놓여있다. 누구에게도 능수능란한 삶이란 없다. 단 한번 뿐인 생이기에 누구나 시행착오는 겪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착오된 삶이라 여겨지는 그 다채로운 삶의 무늬들이 천상의 논리를 구하는데 있어서 유리한 경험치일지도 모르겠다.

 

 예술 또한 우리를 여러 번 살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며, 시 쓰기는 매순간 우여곡절을 만들어주는 썩 괜찮은 수단일 것이다. 부재로써 존재하는 것들, 잠재된 의식 속에 도사린 그런 상처와 결핍의 존재, 아주 가까이 있는데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을 눈앞에다 대령해준다. 그래서 지난날들의 트리우마를 하나씩 지워가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 이상훈 시집에서 흥미로운 것 가운데 하나가 시인의 딸 이혜민이 쓴 표사다. 어느 대목에선 비문에 가깝게 읽혀지긴 해도 딸의 글을 받아 시집의 뒷 표지로 써먹은 시인으로서는 대단한 홍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시 <황사>에서 학교에 안간다고 좋아하던 시인의 두 딸 중 첫째다. 객관적이지도 주관적이지도 못한 곁눈질로 시인 이상훈의 시들을 읽는다. 필연적으로 어떤 시들은 나의 현실이다. 가끔은 자연에 누워있는 것들이 벌떡 일어나 뺨을 후려치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 나온다. 어떤 말이나 시도 툭, 던진다. 사실 던져놓고 다시 만지작거린다. 그 손자국에 사람 '이상훈'과 솔직하기를 머뭇대는 외로움이 보인다. 담담하다고 괜찮은 것은 아님에도, 검은 글자 밑에서 새오나오는 붉은 빛으로 알 수 있다. 시의 여백에는 읽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묻는다. 이 시들은 좀 더 많이 공허하기 때문에 읽기 위해 감정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시의 발원지에 가깝지 않더라도. 원하던 것을 더듬어 차가움을 느껴본 사람일수록 나같이 아플 것이다. 남은 기분을 표현할 방법을 잘 모르겠다. 다시 읽어본다.

 

 

권순진

 

 

Send In The Clowns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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