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삼월삼짇날/ 함순례

sosoart 2014. 4. 8. 19:51

 

삼월삼짇날/ 함순례

 

궁금하다

 

봄물 오른 길목 배꽃 같은 얼굴로 다가오던

우유 팔 궁리로 밤잠 설친다는

 

판촉물로 받은 공짜 우유들이 제비새끼들 모양 냉장고에 모여 짹짹거리는데

 

뜨음한 친구 소식

 

- 동인지 ‘작은詩앗·채송화’ 제4호『모란 구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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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4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뜨음한 친구소식’이 ‘궁금하다’가 사실상 전부이다. 어떤 친구이냐 하면 곤궁한 살림을 살면서 배달 우유 영업을 하던, 시인에게 곧잘 판촉물 우유를 가져다주기도 하던 그런 친구였는데 뚝 소식이 끊겼다. 궁금하던 차에 그가 건네주고 간 냉장고 속 우유들이 마치 ‘제비새끼들 모양’으로 보였고, 마침 때는 삼짇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우유의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체질인지, 그냥 날름 공짜우유만 받아먹기가 계면쩍어서였는지 개봉하지 않은 우유팩들이 냉장고 안에 그대로다.

 

 어쨌거나 그 친구에게 시인은 그리 ‘영양가’있는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던 친구가 뵈지 않자 그 근황을 궁금해 하는걸 보면 아주 무심한 친구는 아닌 것이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소식이 끊기고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혹 몸이 아픈 건 아닌지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요즘은 세상인심이 냉혹해져서인지 얼마간 보이지 않아도 예사로 생각하고 어쩌다 흥미본위로 뒷담화로만 궁금한 척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염려하며 내 안부를 궁금해 하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건 매우 다행한 일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작은 바지랑대이자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 인터넷 카페 등에서도 누구의 흔적이 요즘 잘 안 보인다든지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수소문을 해서라도 꼭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 친구가 제 자식들에게 어미제비 노릇하면서 먹이나 제대로 물어다주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체온만으로도 세상의 온도를 몇 도쯤 데운다.

 

 예로부터 농부들은 제비가 봄 따라와서 집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자기네들 처마에 집을 짓기 바랐다. 농부들은 제비의 번창을 그해 농사의 풍년으로 여겼다. 그만큼 해충의 피해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삼월삼짇날이 지나면 돌아온 제비를 어디서든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비 보기가 쉽지 않다. 제비가 많다는 것은 먹이가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환경의 쾌적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점차 벌레들도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와야 할 제비가 삼짇날이 한참 지나서도 오지 않는다면 환경의 영향이라 생각할 수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의 우유 영업이 신통찮아서 때려치웠을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깊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 어머니의 여든여덟 번째 생일에 내 어머니와는 아무 상관없는 몇몇 ‘뜨음한 친구 소식’이 궁금하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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