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선암사/ 정호승

sosoart 2014. 5. 17. 23:50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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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승주 지방을 여행하다가 만약 똥이 마려워진다면, 좀 참았다가 기어이 선암사 해우소에 들어 볼일을 보라는 말이 있다. 김훈은 기행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에서 이곳 선암사 '뒤깐'에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똥을 누는 것은 몸의 찌꺼기인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며. 그 장소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는 해방공간이 되어야 최상인데, 선암사 화장실이 그 자유의 파라다이스라는 것이다.

 

 선암사 ‘뒤깐’은 남자 칸과 여자 칸이 같은 건물 안에서 양 옆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각자 똥깐에 서 있을 땐 서로를 볼 수 있고, 쭈구리고 앉으면 안보일 만큼의 높이로 칸막이가 쳐져있다. 화장실 남녀 칸의 관계가 철벽으로 무식하게 막아놓은 것 보다는 오히려 문명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억지로 떼어놓을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은근한 구분이어야 한다는 뜻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선암사 뒤깐만큼 시의 소재로, 문화의 향기로 다루어지는 화장실이 또 어디 있을까.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파악이 안 되었다지만 지은 지 이백년은 넘고, 칙간이지만 건축 양식이 독특하고 아름다워 국가 민속자료로 지정되기도 한 선암사 해우소. 정말 똥 썩는 냄새마저도 은은하고 향기로운지 알아보려고 나도 십년 전 그 배설의 낙원에 앉아 코를 벌렁댄 적이 있다.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했지만 선암사행 열차가 바로 있지는 않다. 순천으로 가서 어머니의 치맛자락 같은 조계산의 품으로 다시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절집인데, 인간이 선계로 드는 입구이자 신선이 되어 출구로 나온다는 선암사는 그만큼 경관 또한 빼어나다. 장군봉 펑퍼짐한 능선아래 자리 잡은 고찰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사철 꽃을 피우는 도량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가운데 '뒤깐'은 두고두고 되새김하여 우리를 철학케 한다.

 

 정말 그 똥깐에 앉아 똥 구린내 속에서 번뇌와 근심 다 털어내고, 욕망의 찌꺼기 깨끗이 비워내며, 실컷 울면서 위로까지 받는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헛된 욕심의 총화인 인간이 부처님 오신 날의 뜻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헤아린다면야 똥오줌을 누듯 망집의 욕망도 훌훌, 이기의 옹졸도 훌훌 우리 몸 밖으로 내던질 수 있으련만...

 

 

권순진

 

먼산 - 법능스님(김용택 시)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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