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시간의 옆구리/ 이영춘

sosoart 2014. 5. 17. 23:51

 

 

 

시간의 옆구리/ 이영춘

 


“김도연의 소설을 읽으면 시간의 옆구리 같은 걸 느낄 수 있단 말야!"

소설가 이외수의 말이다

난 그 말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시간의 옆구리? 시간의 옆구리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난 것들

보편적인 진리에서 벗어난 것들

과거, 현재, 미래에서 툭 튕겨져 나간 것들

가야할 길 위에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있어야할 사람 집에 다른 무엇이 살고 있는 것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다른 시제가 생성된 것


엉뚱한 것들, 엉뚱한 짓들,


정상적인 혹은 보편적인 상황 위에

또 하나의 엉뚱한 상황,


지하도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나라

석 박사가 되어도 일할 곳이 없는 나라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나라

툭 터져 나간 옆구리 시간의 나라


작년 가을 내 칸나는 40세 젊은 나이로

옆구리 나라로 툭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아픈 시간의 옆구리,

피 철철 흘리는 옆구리 나라의 사람들


 

- 이영춘 시선집 『들풀』(북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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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도연과 이외수, 그리고 이영춘 시인은 모두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문사들이다. 김도연은 산골짝에서 소설 농사를 지으며 사는 40대 젊은 작가이며, 이외수는 누구나 다 알고 자타가 공인하는 살아있는 강원도의 대표적 문화상품이다. 그리고 이영춘 선생은 강원도 시단을 대표하는 여성시인이며 내게는 다정한 누님처럼 느껴지는 분이시다. ‘시간의 옆구리’같은 느낌의 소설을 쓴 사람은 김도연이고, 이를 그의 감성사전식 언어로 처음 발설한 것은 이외수이며, 또 이 말에 곰곰 골똘해져서 한 편의 시로 사유한 이는 이영춘 시인이다.

 

 시선집 맨 마지막에 있는 이 시는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하다. 이영춘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3갈래의 영역으로 나누어 말한 바 있다. 첫째가 사회의식적인 것, 즉 사회적 모순 부조리 같은 것, 둘째는 혈육에 관한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시인 자신의 내면적 고뇌와 갈등을 그린 자아탐색적인 것이다. 그런 시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면 측은지심이 수시로 발동하여 자주 목이 메고 눈물짓는다는 것.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의 옆구리〉에는 시인의 세 갈래 시세계를 은밀히 모두 담고 있다.

 

 ‘시간의 옆구리라?’ 얼른 들어도 슬픔의 리얼리티가 물씬 풍기는 이 삐져나온 시공간에는 순조롭지 못하고 순탄하지 않은, 시간의 정상 괘도를 이탈한 장외의 군상들이 밀집되었다. 우주의 질서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지만 공간, 즉 환경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하루의 해는 누구의 머리 위에서나 떠오르지만 누구에게나 찬란한 것은 아니다. 운명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굴곡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겠고 시간의 곧은 흐름을 잘 타다가 전혀 예기치 못한 충돌에 의해 나가떨어진 이탈도 있다.

 

 ‘석 박사가 되어도 일할 곳이 없는’ 상황, 마흔 살에 생을 마감한 동생의 삶. 그리고 세월호... 시인은 이런 가련하고 원통한 것들이 다 뼈저리다. ‘아픈 시간의 옆구리’는 우리 삶의 실상이고 도처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들이 온통 시간의 등뼈로부터 툭 튕겨져 옆구리에 아프게 몰려있는 시간들이다. 궁핍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시인의 연민과 사랑의 시선에 오래 머문다. 진정 역사는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를 나눠 기억토록 하여 ‘피 철철 흘리는 옆구리 나라의 사람들’이 확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재깍재깍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 위를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터진 시간 속의 사람들을 제발 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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