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 이론·비평·컬럼·작가

그림의 뜻-(63)백악산 아래 구름물결 속 청와대가 평안하길/ 최열

sosoart 2014. 6. 11. 20:08

 

최열 그림의 뜻-

(63)백악산 아래 구름물결 속 청와대가 평안하길

최열

 정선 - <백악산>


산새는 울음 그치고 꽃은 져서 날아간다 山禽啼盡落花飛
나그네는 못가도 봄은 벌써 가버렸지 客子未歸春巳歸
갑자기 남녘 바람 정을 불러 일으키니 忽有南風情思在
뜰을 휩쓸어라 고운 풀 우거졌네 解吹庭草也依依

- 정도전(鄭道傳), 「사월초하루」, 『삼봉집(三峰集)』




정선, 백악산, 종이, 44×33.5cm, 개인 소장



정선은 백악산을 여러 폭 그렸는데 이 작품 <백악산 취미대>는 취미대가 아니라 백악산 전경을 그린 작품이다. 우뚝 솟은 백악의 위용이 대단한데 하단을 받쳐주는 구름 물결이 좌우로 장강처럼 흐르니 마치 하늘에 뜬 산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구름 물결 아래 검푸른 숲이다. 경복궁 북쪽 담장쯤일 터이다. 그렇게 경복궁을 감춰두고 구름 물결 위쪽에 가파르게 취미대 터를 배치함으로써 이 땅이 신비한 장소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 백악산에는 백악신사(白岳神祠)만이 아니라 저 삼각산의 신령까지 모시는 삼각신사(三角神祠)까지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신령스런 땅이었다. 

그림에 구름 물결 흐르는 장소는 오늘날 청와대 터다. 이 땅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이 터에 처음으로 궁궐이 들어선 때는

 『고려사』에 나오듯이 고려 숙종 6년째인 1101년 9월 남경(南京) 궁궐을 개창하면서이다. 그때 이곳을 답사한 신하들은 다음처럼 아뢰었다. 

“저희들이 노원역, 해촌, 용산에 가서 산수를 살펴본 즉 도읍을 정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面嶽)의 남쪽 산수 형세가 옛 문헌의 기록에 부합되오니 청컨대 삼각산 주룡의 중심 지점인 남향관에 그 지형대로 도읍을 건설하소서라고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고려사』, 숙종 6년 10월) 


그러니까 지금 청와대가 들어앉은 자리는 고려 남경궁궐 터인 셈이다. 그렇게 300년을 내려오다가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천도를 위해 권중화(權仲和)로 하여금 궁궐터를 조사하라고 하였더니 『태조실록』 1394년 9월에 아뢰기를 고려 때의 남경 궁궐터가 너무 좁으므로 그 남쪽으로 내려와 개창할 것을 아뢰었고 그렇게 해서 건설한 것이 바로 오늘의 경복궁이다. 이렇게 되자 남경 궁궐터를 후원(後苑)으로 삼아 여러 정자를 지었고 또 상림원(上林苑)을 두어 기화요초를 기르는 식물원으로 가꾸었다. 또한, 농번기 때면 왕과 왕비가 친히 이곳에서 모심기하는 친경(親耕)의 현장이었으며 대원군 때는 후원 둘레에 담장을 설치하고서 문무 대과를 치르는 시험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0년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하였으므로 ‘금호방(禁虎榜)’이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기간 내내 그러한 땅이었다가 1939년 9월에 접어들어 이곳에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다. 경복궁을 헐어내고 1926년 조선총독부를 완공한 때로부터 무려 14년이나 지난 뒤인데 그때까지 총독관저는 남산 밑 필동 2가에 위치한 화장대(和將臺)였다. 조선총독은 이곳 관저로 이주해 오면서 건물 이름을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경무대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철근콘크리트에 백색 타일을 발랐는데 무엇보다도 지붕이 광채 나는 청색(靑色)으로 아주 먼 거리에서도 그 색깔이 눈에 띌만했다고 한다. 

6년이 지난 1945년 해방이 되고 9월 미 군정이 시작됨에 따라 군정장관 Hodge 중장,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이승만 대통령이 차례로 사용했다. 일본인 통치자가 사용하던 이름인 경무대라는 이름을 청와대(靑瓦臺)로 바꾼 것은 4·19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다. 물론 이 건물은 1993년 10월 철거해 버렸고 지금의 청와대 건물은 1992년에 지은 것이다. 고려 숙종이며 조선 태조는 물론 일제 총독, 미 군정 장관,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땅과 그 건물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모두 이슬처럼 사라지고 만다. 오직 유구한 것은 저처럼 우뚝한 산, 백악의 자태요, 흐르는 구름일 뿐. 요즘 남녘 바다 세월호의 비참으로 힘겨운 나날인데 정말이지 청와대가 평안하기를 소망하며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사월초하루」에 불렀던 슬픈 노래 읊조린다 .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