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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개의 미술공모전, 그 실상과 허상/ 김달진

sosoart 2014. 6. 27. 15:41

60여개의 미술공모전, 그 실상과 허상



60여개를 넘는 공모전 홍수시대


현대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공모전은 60여개를 넘고 있다. 지난 해에 상형전공모전(10.21~30 호암갤러리)과 신기회공모전(10.25~30 경복궁역미술관)이 새로 생겼고, 예정되었던 신미술회공모전은 금년으로 연기되었다. 올해에는 한국파스텔작가회 주최로 파스텔작품공모전(5.26~6.1 동덕미술관)이 열릴 예정이다.


미술공모전은 관(官), 언론기관, 미술그룹, 민간단체 등에서 주관하고 있다. 관전(官展)은 일제 강점기의 鮮展과 해방이후의 國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전은 지난 81년에 폐지되고, 82년부터 출발한 대한민국미술대전이 그 후신이다. 미술대전은 86년부터 문예진흥원에서 한국미협으로 이관되었다. 언론기관 주최의 대표적인 공모전이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 등이다. 미술그룹 주최의 공모전은 1960년대에는 5개에 불과하던 것이 70년대에 3개, 80년대에 다시 11개가 늘어났다. 


대체로 새로운 공모전이 생기면 어떤 기대감에서 많은 응모작에 몰렸다가 다음에는 줄어들지만 근년에는 전반적으로 미술인구가 급증하여 출품작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미술대전은 최근에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룹공모전의 응모작수를 보면 목우회공모전 459점, 한국수채화공모전 384점, 구상전공모전 372점, 청년미술대상전 282점, 창작미술공모전 107점, 상형전공모전 218점, 신기회공모전이 148점이다.(88년 기준)


시·도미술대전은 지방에서 활동하기에 용이한 발판을 굳힐 수 있는 추천·초대작가 제도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작품상으로는 어떤 뚜렷한 특색을 찾기는 어려우며, 대체로 과거 국전처럼 한국화 양화 조각 서예 공예 사진 건축 7개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방 미술대전은 1984년부터 지역 미술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연말에 문예진흥원 기획으로 시도미술대전수상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전국의 공모전 56개를 장르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한국화 1, 양화 판화 수채화 9, 조각 1, 공예 디자인 15, 서예 2, 건축 1, 사진 4, 종합전 23개이다. 

종합전과 공예, 디자인 부문의 공모전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전국적인 공모전의 자료를 모았지만 누락된 공모전이 있음을 밝혀둔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전 폐지 전후에 쏟아져 나왔던 민간 공모전이다. 한국미술문화대상전, 한구현대미술대상전, 전국서화대전, 서울미술제, 한국서예대상전, 단원예술제, 한국미술대전, 신미술대전, 백제미술대전, 한국서화예술대전, 한국전통예술대상전, 대한미술전람회, 대한서화작품평가대상전, 국제예술대전, 한국예술전람회 등이 그것이다.

 

이 민전들은 ‘신인발굴’ ‘정신문화의 창조적 계승’ ‘국제미술계 진출’이란 거창한 모토를 내걸고 공모전 홍수시대를 열었다. 이들 공모전 중에는 국회의원, 전직 장관 등 유명인사를 앞세우거나 문화공보부, 문화예술진흥원 후원이라는 것을 미끼로 무더기 시상, 무원칙의 초대·추천작가의 남발, 작품기증 강요 등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이 전시회들은 권위있는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 중앙 화단에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 도제수업이나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 사람, 취미나 교양으로 그림을 시작한 문화센터 수료생 등 아마추어 작가들이 화력을 얻어내려는 약점을 적당하게 이용해 왔던 것이다. 



각종 시상제도와 요강


우리 미술계에서 공모전이 등장한 것은 60년대 신상회 공모전(1962~68)을 시작으로 목우회 공모전(1963~현재), 백양회 공모전(1964~77), 대한산업미술가협회공모전(1965~현재), 구상전 공모전(1969~현재)이 자리를 굳혀왔다.


그룹공모전은 한국화 수채화 판화 섬유조형 일러스트레이션 전각 등 종합공모전에서 소홀히 다루고 있는 부문을 특색있게 이끌어 나가면서 자기 그룹의 세력확장에 이용하기도 한다. 출품자들은 자신의 작품 경향에 맞는 공모전을 선택하고 수상을 통해 회원으로 가입, 자기 성장의 발판을 굳혀갈 수 있다. 권위있는 공모전에 비교하여 수준에 못미치는 작품들도 상당히 모여들지만, 그룹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연례적인 발표기회를 얻고 화단의 선배들도 사귀며 또 그 덕을 보기도 한다. 


최근 그룹공모전은 소속 회원들만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론기관과 공동주최 또는 후원을 얻기도 한다. 한국귀금속공예가협회가 중앙일보사와 개최한 한국현대장신구전은 성공한 예이다. 한국디자이너협의회는 86년부터 경향신문사와 디자인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없어진 그룹공모전에서 수상했던 당시 신인들은 지금은 중진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신상회공모전에서 1회 이주영, 2회 하종현, 3회 윤주숙, 5회 손영성, 7회 이두식, 백양회공모전에는 1회 송계일, 2회 이영수, 3회 유영렬, 4회 박미연, 5회 김철성, 6회 최응규, 7회 정하경, 8회 김보희, 9회 김이경, 10회 이귀임, 11회 박영대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공보부에서 주최했던 신인예술상전(1962~68), 조선일보사의 현대작가공모전(1961~63), 한국일보사의 한국미술대상전(1970~80), 공간사의 공간대상전(1975~79), 전남매일신문사의 전매미술대상전(1977,79)과 부산에서 열렸던 대한민국 국민미술전(1965), 동아국제미술전(1968) 등이 우리 미술사에 기록될만한 공모전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신문사공모전 기타 공모전들이 한결같이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 발굴을 위해 각종 시상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몇몇 공모전의 시상 내용은 보면 다음과 같다. 


● 대한민국대전: 대상에 매입 상금 200만원과 해외시찰 경비지원 300만원, 우수상 100만원

● 서울현대조각공모전: 대상 300만원, 우수상 200만원, 특선 100만원

● 중앙미술대전: 대상 300만원과 파리왕복항공권, 장려상 100만원, 특선 30만원

● 동아미술제: 대상 200만원, 동아미술상 100만원, 87년부터 특선 신설

● 후소회공모전: 이당미술대상 500만원, 금상 200만원, 은상 100만원, 동상 50만원(2명)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과거 국전의 추천 초대작가 제도가 폐지되어 연속 출품이 낮아졌다. 동아미술제는 해마다 대상수상작가초대전을 마련해 주며, 수상작가 모임인 미술동우회, 공예동우회, 사진동우회가 있다. 중앙미술대전은 역대대상수상작가 초대전으로 그쳤고, 청년미술대상전은 개인전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미술대전이나 새로운 형상성을 내거는 동아미술제, 다양성의 공존을 표방하는 중앙미술대전은 어떤 뚜렷한 작품 경향이나 이념의 특성이 없이 조환(85 후소회공모전대상, 86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86미술대전 대상), 문봉선(86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한국화, 87동아미술상-문인화, 87중앙미술대전 대상, 87미술대전 대상)과 같은 상복 많은 작가도 탄생시켰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국전에 비해 수상작가의 문턱이 낮아져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 대학원생, 특히 민전에서는 대학 재학생들이 화려한 스포트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수상작가 중에는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작가도 많다. 



 ‘3대 공모전’의 비교


현행 공모전 중에서 순수미술 분야의 3대 공모전이라 할 수 있는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교해 보았다. 공모전 대상수상작가를 장르별로 살펴보았더니, 동아미술제는 6년간 5명(서양화 2, 조각 3), 중앙미술대전은 11년간 24명(한국화 7, 서양화 8, 조각 7), 미술대전은 7년간 23명(한국화 7, 서양화 7, 판화 2, 조각 7)이다. 주목되는 것은 동아미술제는 응모작이 제일 적으면서도 조각부문에서 3명의 대상작가를 배출시켰다. 우연인지 장려책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세 공모전의 대상작가를 출신 대학별로 나누어 보았다.(표5 참고) 전국에 미술대학, 미술학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만 표안에 들어오는 학교는 8개뿐이었다. 홍익대가 가장 많은데 특히 조각은 독점하다시피 11명을 기록했고, 서울대는 한국화부문에서는 한명도 없고, 동덕여대는 의외로 한국화에 강세를 보여 3명이었다. 지방대학은 계명대에서 유일하게 서양화에서 2명을 배출했다. 


공모전의 성격을 좌우하는 심사위원의 구성을 보면(표4 참고), 동아미술제는 작가 중심으로 평론가들이 더러 참여했는데 부문별 3~4명, 중앙미술대전은 작가와 평론가 2명(4회에서 9회까지) 중심으로 3명까지이다. 미술대전은 부문별 5~14명의 많은 인원이며, 2~4회는 1,2차로 나누어 심사위원을 두었다. 한편 청년미술대상전은 유일하게 단독 심사제를 채택하고 있다. 도표를 참고하면 한국화 부문은 안동숙씨가 동아미술제와 미술대전 양쪽에서 가장 많이 참여했으며 이구열씨가 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 각 3번을 역임했다. 중앙미술대전의 서양화부는 김윤수, 변종하씨께 내맡긴 셈이고, 미술대전은 가능한 심사위원의 중복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심사위원의 작품경향, 출신교, 사제지간, 파벌, 인맥 등이 공모전의 당락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모전의 전시장소는 주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회관,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세종문화회관, 호암갤러리 등이 이용된다. 그러나 대형 전시장이 부족하여 전시작품 수에 비해 장소가 비좁은 것이 문제다. 사설단체가 주최하는 공모전, 회원전과 공모전을 겸한 전시회, 대학미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전 신문에서 읽은 한 구절을 상기하고자 한다. 


“화력 한 줄을 만들기 위해 연중 붐비는 공모전에서 주최측은 출품자와 줄당기기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챙겨간다. 공모전을 창립하는게 훨씬 수월하게 돈을 모은다.”(장윤우, <미술계도 거듭 태어나야 한다>, 스포츠서울 1988년 11월 16일자)


모든 공모전이 운영의 문제점을 검토 재정비해야 할 단계에 도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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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신상회: 모던아트협회, 창작미협, 신조형파의 일부와 무소속의 서양화가와 조각가 23명이 1962년 창립. 2회부터 디자인부가 신설되었다. 68년 해체되었다.

 * 목우회: 사실계열의 서양화가 17명이 1958년 창립. 뒤에 조각가들이 참여했다. 63년부터 공모전 실시. 77년부터 83년까지는 입상작을 프랑스 르 살롱전에 출품시켰으며, 81년부터 한국화, 사군자 부문까지 공모전을 확산시켰다.

 * 백양회: 동양화가 9명이 1957년에 창립한 그룹으로 78년까지 활동 후 해체. 64~77년까지 공모전을 개최했다.

 *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현존하는 최장수 미술그룹으로 1946년 10명의 작가들이 조선산업미술가협회전으로 출발. 초기에는 포스터 중심이었으나 공예를 포함시켰고, 65년부터 공모전을 실시했다.

 * 구상전: 새로운 구상을 지향하는 서양화가 19명이 1967년에 창립. 69년부터 공모전을 실시했으며, 80년대에 들어 한국화가도 참여하고 있으며, 공모작품도 한국화까지 수용하고 있다.

 * 신인예술상전: 1962년 2월, 공보부에서 5.16 혁명을 기념하고 신진 예술인의 창작의욕을 고무시켜 보다 높은 민족예술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재정, 문학, 음악, 무용, 연극, 국악, 연예, 미술, 건축, 사진 등으로 나누어 특상 수석상 차석상 장려상을 주었다. 미술은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에서 64년부터 판화가 추가. 68년까지 지속되었다.

 * 현대작가공모전: 조선일보사 주최로 1957년부터 69년까지 현대작가초대전(8,9,11회는 열리지 않았음)을 개최. 5,6,7회에는 신인 공모전을 함께 개최했다.

 * 한국미술대상전: 한국일보사 주최로 1970년 창립. 1회때는 추천작가와 일반 공모작으로 나누어 심사했으며, 2회와 3회(1976년)는 일반 공모작품을, 4회(79년)는 동·서양화초대전으로 열린 후 커미셔너제로 운영방식을 혁신, 6회는 쉬고 7회(80년)까지 개최된 전시회.

 * 공간대상전: 월간 《공간》 주최로 1975년 회화, 77년 조각, 78년 건축, 79년 도예를 공모했었다.

 


도표 생략


김달진 /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 월간미술 1989년 2월호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