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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는 그림 -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조풍류

sosoart 2014. 9. 5. 20:27

글이 있는 그림 

 

(140)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조풍류

최치원은 토착신앙인 무(巫)사상에 외래사상인 유·불·선 삼교를 회통 융합시켜 자연의 법도를 체득하여 인간본성을 회복하는 것 이를 현묘지도(玄妙之道) 곧 풍류사상이라 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풍류에는 야외아집, 산천유람, 음풍농월, 선유 그리고 시와 그림과 거문고 등 옛 선비들은 자신들의 처지나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풍류를 즐겼다.
조선후기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인 이인문<송석원시회도>와 김홍도<송석원시사 야연도>그림에 보여 지는 것처럼 사대부의 영향을 받은 중인들이 인왕산 지역에 모여서 서화와 음악과 술을 마시며 취흥을 즐겼던 문화가 조선후기 대표적인 풍류로 알려져 있다.사대부와 중인들의 풍류가 있는 반면에 민간에서는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유구한 역사 속에서 끊어지지 않고 발전시켜온 노래와 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판소리, 민요, 굿 등 순박한 서민들의 민속음악이었다. 농업을 국본으로 살아온 우리서민의 민요중에 남도의 ‘농부가’처럼 흥겹고, 멋스럽게 농부의 긍지를 드높인 노래도 없을 것이다. 농부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고된 농사일이 끝나면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고 휴식의 한절기를 보냈다. 노래와 춤을 통해 놀이를 즐기고 햇곡으로 빚은 술로 그 흥을 돋구었다.


푸른밤의 여정-인왕산, 2014, 캔버스천에 호분 분채 석채 금니, 50x60cm

이 모든 놀이야 말로 우리의 피 속에 흐르는 진정한 풍류가 아닐수 없다. 이렇듯 풍류는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여러 가지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우리민족의 종교요 생활이며 정체성이였다. 나는 예향의 도시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 까지 다녔다. 부모님은 진도가 고향이시고 특히 모친은 노래하는 국악인이신데 판소리 명창(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이시다. 나의 유년시절과 소년기는 매일 집에 드나드는 소리꾼들과 한량들이 목이 쉬도록 불러대는 판소리며 민요 그리고 흥에 취해 추는 살풀이춤과 기악연주들을 듣고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판소리 다섯 바탕과 그 장단들은 머릿속에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나에게 화인처럼 각인된 익숙한 소리이고, 몸속 깊숙이 타고 흐르는 가락이며, 내 삶속에 녹아있는 몸의 일부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삶을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인자 중에 하나가 바로 기질이 아닌가 싶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유전자와 성장해 가면서 형성해온 인간관계, 그리고 교육, 취향 등 여러 복합적인 것들에 의해 각인되어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그 기질은 대부분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치면서 그 삶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결국 예술가가 성장하면서 작품으로 창작하여 표현되어지는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타고난 본성과 유년시절의 경험과 체험들이 체화 되어 이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세련되게다듬어 스토리텔링화 하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그림은 내 직업이자 삶의 의미이고 가치인 반면에 음악은 치열한 정신의 노동 끝에 긴장을 풀고 쉬어가는 놀이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지인, 소리꾼들과 함께 술 마시며 음악을 즐기며 정신 줄 놓고 어울리는 풍류놀이는 작품 창작과정에서 지친 정신과 육체를 해방시켜주는 비상구와 같다. 그 시간만큼은 그야말로 여유로움과 풀어짐 그 자체이다.

풍류란, 자연과 예술과 인생이 따로 떨어진 삶이 아니다, 자연과 예술과 인생이 아름답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삶이여야 한다. 옛선현의 말 중에 “강산과 풍월은 본래 주인이 없고 한가한 사람이 주인이로구나.”라는 말이 있다. 그저 바람처럼 물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살자고 작정을 헌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산수자연을 유람하면서 그림과 음악과 함께하는 혼연일체가 되는 삶,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끈적끈적한 정이 흐르는 관계를 통해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류인으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선천적 유전자에 유년시절 듣고, 보고 자라면서 육화되어 버린 우리음악, 그래서 풍류는 나의 동맥 속을 흐르는 혈관과도 같다. 늘 내 안엔 흥과 신명이 모세혈관들을 타고 흘러 다닌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올 가을에도 단풍이 붉게 물들어갈 즈음 풍류 좋아하는 지인들과 소리꾼 데리고 북한산 중턱에서 모여 고상하고 운치 있게 풍류놀이나 해야겠다.


- 조풍류(1968- ) 홍익대 동양화과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8회, 다수의 기획전 참여. 2013년도 중학교 미술교과서 수록-미래앤(구 대한교과서). 브라질 쌍파울로 총영사, 터키 이스탄불 총영사, 앙골라 대사관에 작품소장.

 

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