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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 이선영

sosoart 2015. 4. 3. 22:15

이선영 

 

21세기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

이선영

21세기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

  

이선영(미술평론가)

  

들어가며


미술작품은 그 자체가 한 개인과 시대를 오롯이 담아낸 상징적 우주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은 이러한 소우주들이 모인 또 다른 우주이다.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논하는 것은 단순히 미술계를 구성하는 특정 제도나 기관에 대한 것을 넘어선다. 현대의 미술관은 그것이 탄생된 근대라는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으며, 미술관 스스로가 암시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미와 예술, 미학과 미술사, 분류와 해석의 체계라는 담론을 포함한다. 또한 미술관은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뛰어난 작품에 대한 선별기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전시대의 왕족이나 귀족의 호사가적 수집과 달리, 주먹구구식의 우연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체계화된다. 미술관 속의 작품들은 이러저러한 신기한 요소가 있는 무질서한 골동품 더미를 넘어서, 합리적 이성에 의해 체계적 그물망으로 포획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또한 당대의 시각적 욕망의 정점에 있다. 


어느 시대보다 많은 작가와 예술작품, 그리고 정보가 쌓여있는 시대에 선택되는 미술관 속 작품들은 물신주의적 숭배와도 무관할 수 없으며, 작가나 관객에게 그 가치와 의미의 기준이 되어주곤 한다. 미술작품이 수집, 분류된 후 전시가 이루어지는 순간 미술작품은 예술성 뿐 아니라, 공공성과 대중성이라는 또 다른 요소와의 역학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미술관은 예술성, 공공성, 대중성이 조우하는 문화의 장이다. 미술관은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는 공적기관이며, 대중들과의 소통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 뛰어난 예술가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축적된 미술의 역량, 그 질적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대중성과 공공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세계화로 인해 더욱 활성화된 스펙터클과 관광의 시대에 보편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시각문화의 총아로 부각되고 있다. 21세기의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논하는 이 글은 근대에 탄생한 담론/제도로서의 미술관이 근대 이후의 국면에서 어떻게 문맥화, 또는 재맥락화 되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1. 기념할만한 것과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

  

유물이 보존, 복원, 분류, 전시되는 박물관에 비해 미술관은 당대의 예술을 다루지만 이 글에서는 둘을 분리하지 않고 ‘뮤지엄’을 말할 것이다. 그것들이 생겨난 19세기 이래 뮤지엄 간의 전통/현대의 구분이 있기는 했지만, 기획전시를 통해서 양자의 경계는 수시로 무너지곤 하기 때문이다. 유물은 어떤 시간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으며, 당대의 예술품도 어떤 기원과 목적을 예시한다. 유물이든 당대의 예술품이든 어떤 시간의 흐름을 전제한다. 오늘은 곧 어제가 되고, 미래는 곧 오늘이 된다. 시간적 선후관계에서 미학적 논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어떤 대상을 분류하거나 의미 짓는데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건져낸 것들로 채워진다. 그것들은 어떤 시공간을 상징하는 기념비로서의 속성을 가진다. 어떤 역사적 사건의 증거이거나 그자체가 예술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대상으로 평가받거나 하는 뛰어난 예증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나 무엇이 기념할 말한 대상인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은 없다. 기념비적인 것들이 소장, 전시되는 장소이고 그자체가 기념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은 그 기관이 생겨났던 근대 시대부터 기념비성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념비는 그 자체가 ‘무상함과 죽음을 떠올리며, 몰락의 환영이나 그림자를 통해 사랑할 수밖에 없음’(데리다)을 예시한다. 근대와 기념비 간에 스며있는 멜랑콜리의 상당부분은 양자 간의 모순--루이스 멈포드는 ‘그것이 기념비라면 근대적인 것일 수 없고, 그것이 근대적인 것이라면 기념비일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때문이다. 제임스 영은 [기억과 기념비]에서, 통합적인 의식과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에만 가능했던 기념비, 즉 고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공통의 이상과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기념비가 근대에 와서는 기념비성의 수사학만을 찍어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근대 자체가 전통을 파괴하고 만들어진 것이기에, 공통의 기억은 그것이 사라진 순간에야 제도를 통해 보존될 필요가 있었다. 근대에 탄생한 박물관 미술관은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담아냈다. 그것은 전통, 민족, 국민 등의 관념이 흔들리던 시기에 그러한 관념들을 발명했던 근대의 역설을 공유한다. 확실하게 존재하기에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졌기 때문에 요청되는 것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는 [수집/박물관]에서, 근대에 역사적으로 조직된 공공 박물관은 근대화한 민족국가에서 시민의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형성에 중심이 되어왔다고 본다. 동시에 그것은 근대 세계의 사회적 현실을 위장하는, 다수의 본질주의와 역사주의적 허구를 꾸며내고 전파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미술관은 미술이라는 개념을 통합했다. 그는 근대 유럽의 창안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인 미술은 역사에 대한 회고적인 재기술의 효과적인 이념적 도구였다고 본다. 


미술관과 미술이라는 개념은 그 태생적 동형성 때문에 서로를 강화한다. 미술관은 미술이란 개념의 해체, 또는 확장에 따라서 가변적인 기능과 역할을 맡는다. 미술관은 어떤 때는 보수주의의 첨병으로, 어떤 때는 진보주의의 첨병으로 부각되는데, 그것은 미술관과 또 다른 상보적인 기능을 가지는 갤러리나 대안 공간, 기타 공적,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통제 불능의 이질적 예술 행위를 얼마만큼 반영하여 확장성을 가지게 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다양한 삶의 문맥에서 나왔던 산물들이 그 기능들로부터 해방되어 중성적으로 연출된 공통의 공간에 나열되고 비교되는 것, 즉 미적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커다란 변화를 말한다. 그것은 발터 벤야민이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논한, ‘숭배가치’에서 ‘전시가치’로의 변모이다. 근대이전, 즉 예술이 아닌 제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은 익명의 창조자에 의한 것이며, 예술가 자신보다 더 상위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앙드레 말로가 [상상의 박물관]에서 말했듯이, 근대이전 시대의 조각상들과 그림들은 궁궐, 지하 분묘, 성소, 사원의 정면, 무덤, 석굴 같은 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장소에 있었다. 그것은 신들, 악마들, 사자들의 현전과 조화되는 다른 세계의 장소들, 성소들이다. 벤야민은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은 처음에는 마술 그 다음에는 종교의식의 필요에서 생겨났기에, 아무리 간접적으로 매개된다고 하더라도 이 근원은 아름다움의 숭배의 가장 세속적인 형태에도 남아있다고 본다. 수도원의 벽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큐브에서 이 숭배가 세속화된 종교 의식으로 수행된다. 실로 미술관은 모든 것이 가상화되고 있는 현대에 진품성에 깃들인 아우라를 연출한다. 예술작품은 제의로부터 해방되어 잠시의 자율성을 구가하지만, 곧 근대의 상품 형식과 대면한다. 백화점 쇼윈도나 상품의 카탈로그처럼 작품들은 화첩이나 책자에 사진으로 복제될 때 작품의 맥락은 물론 그 규모조차도 가늠하기 힘들다. 


총체적 맥락이 아니라 분리된 단편으로 또 다른 문맥 속에 밀어 넣어지는 방식은 미술관의 관행과 비슷하다. 벤야민은 가장 완벽한 복제에 있어서도 한 가지 것은 빠져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 현재성, 곧 그것이 위치한 그 장소에 있어서의 일회적인 현존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문맥이 변화됨으로서 사라지는 작품의 현존성을 미술관은 재구축하려 한다. 미술관은 원본이 있다고 믿어지는 장소지만, 원본이라는 본질은 복제라는 타자에 기댄다. 관객들은 미술관에 가서야 그동안 복제품으로 봐왔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은 수많은 복제물로 인해 그 실체를 갖는 어떤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대표적인 복제 방식은 사진이다. 사진이 세상 자체를 수집한다면, 미술관은 제의로부터 자율화된 예술에 행한 것은 사진적인 방식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벤야민은 사진, 즉 기계복제의 발명으로 하여 예술전체의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닌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2. 양식의 역사를 재현하는 미술관

    

미술관은 작품 소장과 전시를 통해 당대의 미술을 체계적으로 재현한다. 미술관과 미술이라는 상호보족적인 개념은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틀 내에서 모든 시대와 장소와 민족을 상상하는 수단을 제공’(도널드 프레지오시)했다. 다양한 기원을 가지는 예술작품이 한데 모여 열린 가시성의 장은 결코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도널드 프레지오시는 [수집/박물관]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스타일은 세계의 유럽화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자, 서구 지배권을 말하는 세계 공통어라고 말한다. 미술관은 미술의 역사를 가시화하는 유력한 장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그 자체가 과거의 또는 당대의 미술 역사를 축약하는 강력한 문맥을 형성한다. 미술사는 작품들 사이의 연속성과 차이의 관계를 수립하고, 미술작품이 배치될 수 있는 이상적인 맥락과 범주로 구축되어 있다.  예술작품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열린 예술작품]에서 형식은 사고와 느낌 그리고 소재를 조화롭게 배치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면서 작품 자체가 요구하고 드러내는 법칙에 따라 이 세요소를 통일시켜 나가는 구조화된 대상으로 정의한다. 미술관에 수집되고 사진으로 찍은 ‘벽 없는 미술관’으로 완성되는 광범위한 작품을 가로지르는 것은 판별 가능한 형식요소들 사이의 관계, 즉 양식이다. 앙드레 말로는 형태를 통한 문명의 표현, 또는 형태들의 집결을 양식이라고 부른다. 19세기의 위대한 신화들, 즉 자유, 민주주의, 과학, 진보와 같은 것들은 인류가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 이후로 경험한 가장 큰 희망으로 미술관은 그러한 가치를 수렴하는 장소가 된다. 미술사는 ‘수용과 재현의 형식들’, 혹은 ‘바라봄의 범주들’(뵐플린)을 변별화하면서 형식적 범주들의 연쇄를 기술한다. 작품은 미술사라는 그 자체로 조밀한 사건의 그물망에 설정된 하나의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 


미와 그 역사를 정초하는 미술관은 그자체로 무엇인가를 재현한다. 자크 데리다는 [벤야민의 이름]에서 표상의 방식을, 곧 재현적이고 매개적(매체적)이며, 따라서 기술적이고 효용적이고 기호론적이고 정보적인 차원에 의해 도래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예술의 언어가 표상으로 작용함으로서 최고의 권위와 계몽적 효력이 발생한다. 도널드 프레지오시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상을 박물관학적이고 박물관학 외적인 것으로 구분함으로서, 원본과 복제, 현실과 허구, 표현과 재현 사이의 역설적인 구별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이와 같은 이중성이 계속해서 작동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약탈, 후원, 구매를 통해서 모은 재산을 모험이나 수집으로 가장하면서 박물관은 재현의 체계를 구축한다. 미술관에서 보여 지는 것들은 양식, 태도, 가치, 사람들의 역사와 진보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존재와 표현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창문으로 여겨진다. 


미술관은 가시적인 것을 가독적인 것으로 표현함으로서 기호학처럼 참조적이며 변별적이다. 미술관은 진정한 시각성의 대전이 되며, 시각 장(場) 외부에는 소수의 미술사가들이 안다고 여겨지는 진리를 상상토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미술관이 재현하는 기호는 하나의 해석만을 낳지는 않는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해석의 한계]에서, 해석한다는 것은 또 다른 텍스트를 만들어냄으로서 텍스트의 세계 또는 세계의 텍스트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열린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은 단 하나의 시니피앙(의미의 담지자) 속에 담겨진 다수의 시니피에(의미)라고 말한다. 미술관은 하나의 텍스트를 제시하기 보다는 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관습이 위반되는 정도에 따라 전통적인 미술에서 현대적인 미술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텍스트 사이의 무한한 연쇄성의 추구는 표류와 해체를 낳고, 후세의 작가에 의해 작품으로 응축될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3. 가시성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던 고전주의 시대 박물학 담론

    

미술관이 작품을 선택, 분류, 해석하는 것은 미술관 자체의 담론적 실행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근대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선조격인 고전주의 시대의 박물학의 담론부터 추적된다. 미술작품 또한 박물학의 대상인 자연처럼 뒤엉켜 있는 상태를 벗어나 마디마디 분할되어 나타나는 특성에 의해 확인된다. 미셀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개진되는 바, 고전주의 시대의 박물학에 대한 담론은 생물학은 물론 박물관과 미술관, 아니 재현과 관계되는 모든 담론이 발생하는 과정과 그 구조적 논리를 고고학적으로 탐색한 결과이다. [말과 사물]에 의하면, 분류법이 기호들의 공간적 동시성 내에서, 즉 통사법 내에서 기호들을 취급하고 있다면, 발생론은 기호들을 시간적 유비물로, 즉 시간적 전후관계로 분할한다. 여기에서 역사란 가시적인 모든 사물들과 이 사물들 속에서 발견된 모든 기호들로 짜여 진 광활하고 복잡한 그물조직이다. 


한 생물의 역사는 그 생물과 세계를 연결해주는 의미론적 그물조직 전체 내에서의 그 생물 자체였다. 박물학이라는 새로운 역사서술의 자료들은 단어들이라든가 원전이라든가 기록물들이 아니라, 사물들이 병치되어 있는 투명한 공간들, 즉 식물 표본상자라든가, 박물 표본실이라든가 정원이었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장소에 의해서 피조물들의 가시적인 표면은 그것들의 공통 특징에 따라 분류됨으로서 이미 분석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식물원이나 동물표본실 같이 수집된 자연을 볼 수 있고 묘사할 수 있는 공간은 미술관의 선조라고 할 수 있다. 푸코에 의하면 고전주의 시대의 자연사 박물관과 정원은 볼거리를 순회 전시하던 방식을 한 표 속에 사물들을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으로 뒤바꾼다. 그것은 사물을 눈과 언설에 연결시키는 새로운 방식이다. 박물학은 언어를 가능한 한 관찰하는 시선에 가까이 접근시키고 관찰되는 사물을 가능한 한 단어에 접근시킨다. 


박물학은 가시적인 것을 명명하는 작업으로 침묵하는 대상을 언표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로서 가시성의 새로운 장이 강력하게 형성되었는데, 여기에서 관찰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 소수의 사물을 체계적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일한 개별 실체에 직면한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가시적인 것에 대한 이와 같은 분절화 속에서 언어와 사물의 최초의 대면은 모든 불확실한 것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정립된다. 구조는 누군가가 본 것을 기술할 수 있게 해준다.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자연발생적인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구조는 가시적인 것을 제한하고 여과함으로서 가시적인 것이 언어로 바뀌어 씌여질 수 있도록 해준다. 구조는 한 동물이나 식물의 가시성을 그것을 기록하는 언설에로 완전히 이행시킨다. 생물체처럼 작품 역시 언어라는 질료 속에 각인됨으로서 순수한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 


과학자들처럼 동일한 시기의 미술가나 미술이론가들은 동일한 그물망을 사용한다. 박물학이란 하나의 학문 곧 하나의 언어로, 동일한 동물이나 동일한 식물은 동일한 방식으로 기술될 것이다. 미술 작품은 지구의 표층을 뒤덮고 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구조의 덕택으로, 기술적인 언어 속에 질서 있게 편입된다. 미술 역시 가시성의 분류 공간 내에서야 인식하고 볼 수 있는 지식, 즉 가시적인 것에 대한 기술이다. 미술관은 식물원과 박물학 표본실과 마찬가지로, 구조들로 이루어진 책이요, 특징들에 따라 분류되고 분류된 류들이 전개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박물학적인 관점에 의하면, 뛰어난 큐레이터는 분류와 배치, 명칭부여만으로 작품의 모든 세목들이 합리적으로 정렬시켜, 그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는 가시적인 것에 대한 지시이며, 그 지시는 언어에 선행하는 일종의 선별을 통해 가시적인 것을 언어로 옮겨 써질 수 있게 만든다. 


체계는 자기의 기술에 의해 세밀하게 병치되어있는 요소들 중에서 특수한 소수의 요소를 선택한다. 이 몇몇 요소들은 특권적이며  배타적인 구조인 즉, 동일성과 차이는 전적으로 이 구조와의 관련 속에서 검토된다. 결론적으로 푸코는 박물학이 배열과 지시라는 자기의 종국적인 임무를 성취한다고 본다. 미술 역시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개체들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모든 차이들의 표--연속적이며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보편적인—를 마련한다. 한 동물이나 한 식물은 자기와 구별 가능한 타자들에 의해 구속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동일성은 방법과 체계는 차이라는 일반적 그물망을 매개로 규정된다. 고전주의 시대의 박물학은 표상의 총체에 항구적인 질서의 가능성을 도입하려는 일련의 복잡한 조작들을 내포한다. 


박물학에 의해 분류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동일한 공간 내에 기원을 갖는데, 이 공간은 표상 자체 내에서 열린다. 표상은 시간, 기억, 반성, 연속성에 봉헌되기 때문이다. 박물학자는 가시적인 구조라든가 이 구조의 명칭(특징에 따르는)과만 관련될 뿐 생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박물학의 종국적인 목적은 사물들에게 참된 명칭을 부여해주는데 있다. 실로 자연을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를 토대로 해서 참된 언어를 정립한다는 것이요, 새로운 것은 해묵은 담론의 공간을 결정적으로 혼란시키는 새로 배열된 지형이 나타남으로서 가능해진다. 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유파의 발생은 한시대의 구조적 담론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가능하며, 그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인식 틀을 마련한다. 미술관이 재현하고 있는 미술작품들 간의 동일성과 차이의 표는 어떤 작품이 전통과 연속적이고, 어떤 작품이 불연속적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4. 문화적 공공영역으로서의 미술관 

   

미술관이 예술작품에 대한 어떤 규범과 규칙을 재현하는 담론의 공간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공공영역에 속한다. 미술이 미술관에 모이기 이전, 즉 근대이전의 시대에 미술은 그자체가 공공의 자산이었으며, 작가와 관객은 공통의 상징적 우주 속에서 함께 교류했다. 그것을 독창적 개성을 발휘한 뛰어난 산물도 물신적 체계의 상단부에 위치한 값비싼 물건도 아니었다. 수지 개블릭 [모더니즘은 실패했는가]에서 원시미술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았고, 사적인 견해를 반영하지 않으며 혁신적이지도 시장을 위해 생산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모더니즘 시기 이전까지 미술과 미술가는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질서들을 통합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술은 독특한 개인의 산물로 여겨졌고, 고립된 예술가들의 대사회적 소통도 여의치 않아졌다. 공공영역(public sphere)은 너나없이 자기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근대 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증거 하는 역설적인 영역이다. 


비평이 생겨난 것은 이러한 공공영역에서였다. 미술이 공동체와의 관련이 희미해지는 순간, 그 관련성을 주장해주는 부류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어떤 기획을 통해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려했고, 비평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검증하려 했다. 테리 이글턴은 [비평의 기능]에서, 근대 유럽 비평은 절대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17, 18세기 절대국가의 억압적인 체계 내에서 유럽의 시민계급은 스스로를 위해 권위주의적 정치의 잔인한 법령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계몽적 비평으로 이루어진 분명한 담론적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민계급의 공공영역은 절대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클럽, 신문, 커피하우스, 정기 간행물 등 사회제도의 제반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그곳에서 개개인은 이성적인 대화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나누기 위해 모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비교적 단합된 집단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공공영역의 투명한 공간에서는 사회적 권력이나 특권 또는 전통 같은 것들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성의 합의에 바탕 한 담론 가능한 주체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이러한 이성의 규준. 규범들은 ‘권위가 아니라 건전한 인식, 건전한 이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드라이든)이다. 그러나 공공영역은 곧 위기에 처해진다. 교양인의 공화국, 즉 모든 생산자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생산양식 하에서 동등하게 교환되고 무한히 사용가능하며 고갈되는 법이 없는 상품인 담론을 생산해내는 소생산자들의 사회는 시민계급의 자유에 대한 이상과 부합했다. 이러한 이상적인 담론의 영역에서만 지배가 없는 교환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공공영역 자체의 이데올로기적인 자기표상에 따른다면, 이 공공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리 이글턴이 지적하듯이, 문화가 귀족적 혹은 종교적 기능에서 해방되어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유통될 때 비로소 문화는 예술작품의 직접적인 사회적 사용 가치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진리나 미와도 관련된 보편적인 비평적 담론은 만들어낼 수 있다. 계몽주의의 추상적인 범주와 규범은 상업주의의 추상적인 교환가치에 상응한다. 시장 경제력이 점점 예술작품의 운명을 좌우하게 됨에 따라, 취향이나 교양이 세련된 대화나 합리적인 토론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 무엇이 취향이고 교양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다른 곳에서, 즉 공공영역의 경계를 넘어 시민사회의 상품생산 법칙에 의해 결과 되는 것이다. 공공영역이란 이제는 온건한 합의라기보다는 격렬한 경쟁을 의미하게 된다. 공공영역의 발생과 쇠퇴의 역사 속에 새겨진 이러한 기원으로 인해, 공공영역 속 미술관의 수집과 전시에 대한 평가나 흥행에 있어서 공공적 여론을 대신하려는 시장의 힘은 날로 거세진다. 

   

5. 스펙터클과 세계화 시대의 미술관

   

감각에도 역사가 있다. 구술성의 시대에는 듣는 감각이 문자성의 시대에는 보는 감각이 민감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게 된 근대는 시각성의 시대라 말해진다. 시각성의 시대에 미술관은 다른 오락적 소비적 스펙터클과 경쟁하는 유력한 문화적 제도로 떠오른다. 시각문화의 대세 역시 근대로부터 비롯된다. 바네사 슈와르츠는 [구경꾼의 탄생]에서 19세기 파리를 무대로 하여, 도시 생활의 구경거리 화와 대중문화 출현의 상호관련에 주목한다. 저자는 근대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출현한 시각과 관련된 시설, 사령 대중출판물, 시체 공시소, 밀랍 박물관, 파노라마와 디오라마의 열풍을 분석한다. 그 시설의 경영자들이 이질적인 대중에게 공통의 시각경험을 제공했다. 도시는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을 자극하는데, 익명적 대중은 조용히 서로의 표면을 바라보면서 시각적으로 상호작용한다. 현실은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대상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되었다.  


군중 속 개인들은 선정적인 일상생활의 구경거리를 탐욕스럽게 소비하면서 일상생활이 구경거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다함께 즐겼다. 구경이라는 도시문화가 출현하면서 미술관 또한 시각적 쾌락을 즐기는 새로운 종류의 군중을 맞는다. 공공공간의 재구성과 새롭게 출현한 화려하고 활기에 넘치고 유혹적인 소비 공간 속의 새로운 군중들과 미술관의 관계 또한 주목해야 한다. 미술관은 도시가 제공하는 구경거리의 수용자로서 새로운 군중의 출현과 관련된다. 보는 것은 쾌락 뿐 아니라 권력과 관계된다. 보는 자는 또는 보여 짐을 의식하면서 자율적으로 자기를 조절한다. 보는 모든 행위에는 소비주의와 필연적이다. 스펙터클이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기 드보르)이라면, 미술관 역시 스펙터클처럼 자본화된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내재한다. 기 드보르가 염려했듯이 스펙터클은 물질적으로 인간과 인간간의 분리와 소외의 표현이지만, 이 소외된 힘, 즉 우리로부터 빠져 나간 바로 그 힘을 다시금 전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관 역시 도시가 제공하는 수많은 스펙터클의 하나로 소비될 수 있다. 실로 현대 미술은 거대한 스펙터클의 흐름 가운데 작은 지류에 불과하게 되었음을 자각할 때, 미술관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그러나 현대의 미술관 역시 관광의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 이브 미쇼는 [기체 상태의 예술]에서 기계복제 시대 이후 진품성과 아우라의 상실을 논하는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예술작품에는 변함없이 지속되는 본질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변화와 기술적 발명품에 의존하는 역사적 본질만 있다고 강조한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 이후 예술작품은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규정하는 절차들에 얽매이게 된다. 레디메이드는 예술을 절차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비본질화에 박차를 가했다. 모든 것과 아무것이 예술이 될 가능성은 예술이 이미 모든 곳에 편재해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미술관 또한 표상이나 의미, 상징이기 보다는 강렬하고 특별한 경험을 낳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대표적인 예는 여가활동과 관광이며, 미술관은 구경꾼이자 소비자이자 관광객인 도시적 대중에게 미학적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브 미쇼는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예술은 어느 때에 존재하는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가능성이란 그것을 싸안는 제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미술관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위한 기분전환을 위한 장소이자, 즐거움을 위해서 최대한 시간을 잘 보내도록 효과적으로 잘 관리된 하나의 관광명소가 된다.  관광은 본질적으로 미학적 경험이다. 관광객은 모든 타산적인 손익관계를 넘어선 감동을 찾아 나선다. 관광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기분전환, 도피, 오락, 감동, 즐거움 등이다. 그러한 스타일은 모두 미학적인 태도를 특징짓는 거리유지와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적 향유의 시대에 더 많은 미술관과 예술, 더 많은 문화와 예술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예술작품의 향수를 포함하는, 또는 대체하는 심미적 경험으로서의 관광은 세계화를 바탕으로 한다. 박물관 미술관의 탄생은 근대에 새삼 강조되기 시작한 민족, 국민의 관념과 밀접하다. 필립 블롬은 [수집]에서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19세기에 일었던 박물관 열풍은 각 국가들이 유서 깊은 역사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근대 민족국가의 기획 속에서 강조된 박물관 미술관의 역할은 완결성과 보편성의 성취였다. 대중교육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은 이 기관은 제국주의가 세계 구석구석까지 팽창해가면서 새롭게 발견한, 약탈물을 문명의 진화라는 관념에 입각해서 전시하겠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근대 민족국가들에서는 민족의 역사와 신화를 구성해야만 했다. 그들은 박물관을 신전처럼 짓고 성소처럼 꾸밈으로서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심에 정당성과 합법성을 부여했다. 박물관은 국가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요사업이었다. 


역사만큼이나 전통은 ‘근대적 발명’(에릭 홉스봄)이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현대성과 정체성]에서 근대 전통주의는 지역공동체의 자기규정, 민족적 자율성, 전통적 가치, 근본주의적 종교를 재정립하려는 열망 혹은 정치 운동으로 나타난 진정성 없는 관념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창조라는 점에서 활성화된 것이다. 전통이 모든 인간 행위의 의미와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규정하고 존재에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며, 총체적 우주관 속에 고정된 규범과 예절체계이자 문화로 표상되는 측면을 말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형성된 국가 정체성을 통해 세계는 문명화/ 원시성 그리고 우리/그들로 이분화해서 인식하는 위계적 관점으로 배열되었다. 위계화, 다시 말해 유럽의 산업문명으로 나아가는 진보라는 관점에 입각해서 자국의 다양한 지역들을 서열화하는 것이 진화주의의 핵심이다. 중심의 문화를 재현하는 미술관은 유럽세계의 헤게모니에 중심 역할을 했다. 


조나단 프리드먼에 의하면 이국주의와 원시주의는 이 같은 우주론적 소산 가운데 하나였고, 문화의 역사는 문명과 비문명의 진화적 관계로 설정되었다. 근대의 박물관 미술관은 중심과 주변적 구조의 이데올로기적 표상 속에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폭력적으로 중심부가 팽창된다. 교역, 전쟁, 약탈 등은 부의 원시적 축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먼저 채운 것도 이러한 체제의 경쟁적이고 팽창주의적 본질의 산물이었다. 근대 이후, 세계는 지배적인 시장문화로 통합되면서, 미술관이 대변하는 역사와 문화, 예술은 정체성의 문제가 되었다. 서구의 고유성은 동양이나 원시성과 대조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유럽정체성은 과학, 진보, 민주주의, 상업의 유럽이었고, 고대 그리스는 부상하는 유럽정체성의 중대한 한 측면을 이루었다. 서구의 본질로서 고전시대라는 정체성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가장 잘 발견될 수 있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계의 공통어’를 확립하고, ‘세계의 유럽화 하기 위한’(도널드 프레지오시)의 첨병이었다는 것이다.

    

나오며


근대적 세계관은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통제하는 인간의 자기 의식적 의지’(다니엘 벨)라는 구호에 전형적이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근대주의를 ‘부, 지식, 경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자기축적 과정’(괴테)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오직 발견, 성장, 자연에 대한 점진적인 통제, 다시 말해서 발전만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무한한 축적을 위해서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장, 무한한 우주라는 우주관이 필요하다. 이 우주는 자기 통제된 에고가 마치 자본처럼 스스로를 실현하는 팽창 공간이다. 근대의 미술관은 이러한 팽창공간을 문화적으로 재현해왔다. 그러나 미술관이 앞선 미래만 바라보는 근대적 시간의 축을 극복하지 못할 때 그 폐해는 문화와 예술로 돌아온다. 근대주의를 지배한 세속화와 합리화 과정은 실재와 표상된 공간 간의 명확한 구분을 바탕으로 한다. 중심부/주변부로 나뉜 문화에서 미술관은 선진/후진, 진보/야생이라는 위계적 범주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미술관이 탄생했던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예술은 중심/주변이 뒤섞여 소용돌이친다. 21세기의 미술관은 일련의 구속된 제약으로서 문화, 자연과 대립하고 자연을 억압하는 문화라는 근대적 개념, 근대성이 문화에 끼친 파괴적인 영향을 벗어나야 한다. 근대의 기획 속에 포함되어 있던 역사, 예술, 주체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키는 21세기의 미술관은 더 이상 근대의 단선적 진보라는 역사주의적 환상으로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억압하지 않을 것이다.

 

출전; 수원 시청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