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공존의 이유/ 조병화

sosoart 2015. 5. 29. 19:26

 

 

 

 

공존의 이유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네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조병화

 

 

조병화 시인

조병화 (趙炳華, 192152~ 200338)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호는 편운(片雲)이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경성사범학교, 제물포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의 교사를 지냈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는 도회인의 애상을 평이한 수법으로 노래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55년 중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세계시인대회장, 세계시인대회 대한민국 국제 이사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명예 계관시인,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지냈다. 1959년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비롯하여 국민훈장 동백장, 모란장, 서울시 문화상, 3·1 문화상,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학상, 금관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 하루만의 위안,인간고도,밤의 이야기,시간의 숙소를 더음어서,공존의 이유,남남등이 있다. 200338일 별세했다. 향년 83.

생몰 192152(경기 안성시) ~ 200338(향년 81)

학력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쓰쿠바 대학교 물리화학과) 졸업

데뷔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수상 1985 대한민국 예술원상  6

경력 1995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7

 

사람을 깊이 사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또 그의 비밀도 나 역시 공유하며 서로의 속내를 투명하게 볼 수 있고, 눈 짓, 손 짓 하나로 또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를 알 수 있어서, 그와 같이 즐거워하고 슬퍼도 하면서 모든 것을 같이 나누는 것이 깊이 사귀는 것일까?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나를 도닥여 주고 단순히 말만으로 곤경을 위로하지 않고 그의 가진 어떤 것으로 나의 곤경을 파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아까워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나를 깊이 알고 사랑하는 마음인 걸까?

 

내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 때 손을 내민 듯 만 듯 손끝만 살짝 잡으며 잠시 잡았다 놓는 사람은 나와 깊이 사귀지 않는 사람일까? 나를 한 낱 가벼운 자기를 세우기 위한 제 주변의 단순한 둘러리로만 여기며 마음을 깊이 사귀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음일까?

 

내가 온 마음으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려하고 모두를 주려고 하는 마음인데 그녀는 자신의 득실을 따지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화려한 몸짓과 외양만을 추구한다면 그것도 나를 향한 사랑과 깊이 사귐을 위한 메시지일까?

 

어느 타인이 우연한 나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와 배려를 베풀게 되었고, 자기에게 득이 되었다 해서 아무 부담 갖지 말라며 내가 바라지도 않던 선물공세를 펼치면 많은 부담이 되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내가 아끼는 애장품 중 일부를 보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자그만 선물을 구입해서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제가 보낸 것 만큼이 안된다고 연락마저 끊어버리는 사귐은 과연 얼마나 가벼운 사귐일까?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귀게 됩니다. 그것이 비록 찰라적인 짧은 인연의 사귐이던, 내 마음 모두를 실어 깊이 사귀는 인연이던 바라던 바라지 않던 많은 만남과 사귐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관계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천륜의 깊은 관계로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주 위중한 위기에 빠져있을 때도 서로를 꼭 안고 한 몸으로 헤쳐 나가는 무한한 사랑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친구라던지 사회적 필요에 의한 관계, 또 서로 사랑하는 이성관계 등 이루 말 할 수 없이 수많은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남과의 관계와 만남에서 많은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보람도 있지만은 그와 다른 한 편에선 많은 시기와 방해, 질투 또 나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로 작은 상처는 물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매우 커다란 구렁이에 빠져 생활과 영혼이 피폐해져 사람구실을 못할 정도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친구간의 배신, 사귀는 애인의 배신, 심지어는 수 십 년을 살아온 부부간의 배신 등 나쁜 일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서 사람을 사귀는 일이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어려울 적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사귈 때 깊이 사귀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는 것이 나의 영혼을 보호하는 소극적인 자구책이 되는 셈이지요.

 

저도 인생 칠십을 살아오면서 실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졋지만 나의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때로는 오해도 있었고, 저 역시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는 깊이와 속셈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해도 있었지만, 치명적인 영혼의 상처와 경제적인 커다란 손해도 많이 보았었습니다.

내가 보내주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와 나눔만큼의 정이 돌아오지 않는 친구, 오히려 그 마음을 이용만 했던 친구도 적지 않게 있었고, 순수한 마음을 제 일신의 명예와 진급, 부에 이용해 먹은 자도 있었습니다.

결국 세상은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우친 후, 그것도 중년이 지나서야 겨우 깨우친 후 모든 사람은 깊이 사귀지 마세로 결론을 얻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맹자는 友也者 友其德也” “벗을 사귄다 함은 서로의 덕을 사귄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덕을 서로 나누어 사귀면 벗이 되고,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을 저울질해 서로 사귀면 이웃이나 동료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로우면 찾아오고 해로우면 떠나가 버리는 것이 주변의 이웃이나 동료이고 이로울 때는 멀리 있고, 해로울 때 찾아오는 것이 벗이라고 했습니다.

 

오성과 한음의 그런 우정은 전설에서만 듣는 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골동품적인 흔적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요즘은 이라는 말 자체가 실종되어 버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도연명陶淵明은 집 앞에 국화를 심어두고 벗이 오면 그 국화를 따 술을 빚어 벗을 청해 술을 나누었다합니다.

 

저도 이 산골로 귀촌한 후, 저의 초라한 우거 동락재에 늦은 봄날 꽃사과나무에 흰 꽃이 만개하면 그 꽃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몇 년 전 정성스레 담가두었던 산약주에 기르던 닭 삶아 벗을 청해 술잔을 나누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추억으로만 남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어느 국문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은 곧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덕을 나눈다 함은 삶을 나눈다는 것

벗을 사귀는 것이 덕을 사귀는 것이니 벗은 서로 삶을 나눈다

삶을 나누면 숨길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어 비밀이 없다

그러나 재물을 나눈다면 숨길 것도 많고 감출 것도 많아 비밀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삶을 치수로 재고 저울로 달려고 한다

이 얼마나 세상이 살얼음판인가!

 

삶을 사귈 줄 알면 그 순깐 행복하다

삶을 흥정하려고 들면 그 순간 불행하다

내가 지금 불행함은 내 삶을 저울질하며 무게를 따지는 까닭이다>

 

 

남을 깊이 사귀지 말자는 말은 어떻게 보면 다분히 자기 방어적인 지극히 소극적이며 답답하고 쪼잔한 처세의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험하고 오니汚泥투성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면, 나를 덜 손해 보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지요.

 

어설프게 손을 잡는 친구가 있다

어설프게 인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어설프게 웃다마는 친구가 있다

...............

...............

바람이 부는 서울

햇빛 아래, 나의 길 종착의 도시

다리목의 거리

두루 소요 하며

남은 여정, 맑은 하늘 걷우는 날까지

되도록이면 피해서 살아 돌음에

어차피 그저 그런거! 하지만

오다 가다 때로 만나는 골목길

이건 실로 어설픈 일이다

 

보게나! 그냥 지가가세

먼 길이로세

많은 사람, 바쁜 길이로세

어차피 헤어지는 장터

.................

................. 

조병화 시인의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다리목에서의 일부였습니다.

 

 

살다보니 지나온 인생살이가 참 우습기도 하고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이제는 진정 이 세상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봄꽃이 활짝 핀 이 산촌 우거 동락재 앞마당엔 이제 앵두꽃과 진달래가 활짝 피었습니다.

목련은 화려하고 고운 자태를 잊은 듯 누렇게 변해버린 꽃잎을 마구 땅바닥에 버렸고, 벚꽃은 이제 마지막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밖으로 나서 가벼운 걸음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