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이중섭 / 희망으로 피어난 절망의 시대
이선영
희망으로 피어난 절망의 시대
이선영(미술평론가)
내년에 탄생 100주기를 맞는 이중섭(1916-1956)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림 재주를 가졌고, 당시로서는 아무나 갈 수 없었던 해외 유학에 외국인 여성과의 사랑과 결혼, 가족과의 생이별, 극심한 가난과 고독한 죽음 등, 근대화가에 대한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진 예술가다. 사후에 재평가 되어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유통되며 또 그렇기 때문에 위작시비도 끊이지 않는 ‘국민’ 화가의 대열에 올라섬으로서, ‘천재’ 화가의 드라마틱한 사연은 마무리된다. 그것은 이중섭에 한정된 특수성이기 보다는, 미술이 사회 제도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라는 시기의 보편적 특징을 각인한다. 시대가 그런 인물과 작품을 탄생시켰고, 역으로 그런 인물과 작품은 그 시대를 구체화한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추적해보면, 파란만장한 시대와 예술가로서의 길이 만나고 겹치고 틀어지는 보편적 과정을 피해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민족과 자아가 힘차게 투사된 대표적 도상(소)의 확립,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한국인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와 전쟁 통에 위기에 처했던 민족과 가족, 자아라는 주체들 중, 가족과 자아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더욱 위기다. 민족문제의 경우에도, 아직 통일이 안 된 상태이고 분단의 모순은 우리 사회를 옭죄어왔으며, 심지어는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해 세계평화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정보혁명에 의해 더욱 빨라진 시간 감각 때문에 더욱 지금과 멀리 떨어진 시절의 예술가라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그는 지나간 시대의 예술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관념은 적어도 예술이 한때나마 치열하게 시대적이었음을 말한다. 이중섭은 다양한 심급의 주체들에게 가해진 고난보다는 희망에 치중했다. 그러나 절절한 희망사항은 그가 직면했던 고난의 강도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파란 많은 시대를 관통하면서 궁지에 몰린 예술은 저주받은 현실에 대한 강력한 보상 기제로, 바람직한 삶의 양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이 투사되는 효과적인, 또는 유일한 창구가 되었다. 이중섭의 작품에서 위기에 처한 자아, 가족, 민족이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할 곳은 만물이 조화롭게 엮여 있고 상응하는 자연으로 나타난다. 올해 초 현대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사랑, 가족’ 전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 엽서, 은지 등에 새겨 넣은 작품들이 대거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공개된 70여점의 작품 및 자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인 소장가가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 기증한 은지화(銀紙畵)들이다.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한 은지화는 이미 그가 오산 고등보통학교에 재학 당시 먹으로 검게 만든 한지를 철필로 긁어 하얀 바탕을 드러내는 스크래치 기법(Grattage)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중섭의 고향은 평안남도였지만 6.25 전쟁으로 원산에서 부산으로, 제주로,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거듭되는 피난 생활이 야기한 경제적 빈곤은 이전에 했던 실험을 담배 포장지라는 버려진 재료에 적용시키게 했으며, 곧장 가족과 이별한 상황을 표현하는 절절한 형식이 되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은지화는 나중에 대작으로 완성될 수도 있는 임시방편의 밑그림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40세로 마감한 짧은 생애는 밑그림이 완성작일 수밖에 없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유화로 그려진 소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목록에서 부차적인 위치를 가진 소품이나 자료이기 보다는, 그 자체의 자족적인 소우주로 빛난다. 그가 감당했던 어두웠던 현실을 인식할수록 은지화는 더욱 빛난다. 길이가 15cm 밖에 안 되는 은지화는 가족과의 행복한 재회라는 강력한 갈망이 투사된 부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담뱃갑 속 방수 처리된 포장지인 은박지를 펴서 끝이 뾰족한 도구로 드로잉하고 그 위에 담뱃진이나 물감을 칠한 후 마르기 전에 닦으면 음각된 선에 물감이 드러나 독특한 효과를 자아낸다.
전쟁 중 빈곤의 시기에 캔버스와 물감을 대신한 은지는 곧잘 쓰레기를 예술로 변화시키곤 했던 현대미술의 흐름과 함께 한다. 담배나 초콜릿 등을 싸는 포장재인 은지는 새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접혀지고 뜯어진 선들이 자연스럽게 구성에 포함된다. 6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공개된 작품 [신문 보는 사람들]과 [낙원]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이미지와 동양적 이상향에 등장하는 복숭아나무가 있는 풍경(桃源境)이 담겨있다. 뉴욕이라는 현대미술의 중심지는 이중섭의 한국적 이상향을 높이 평가했지만, 한국은 달랐다. 1955년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의 개인전 때 출품한 은지화 일부가 춘화 취급을 받으며 철거된 사건이 있었다. 당국에 의해 철거된 것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이 합체를 이루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풍경이었다. 인간이나 이성중심주의를 벗어나, 만물이 연결된다는 사고는 동서양의 종교나 현대의 생태주의와도 조응하지만, 우리사회는 만물 간의 합체를 외설로 받아들이는 등, 그의 작품을 제대로 받아들일만한 문화 예술적 역량이 부족했던 셈이다.
전쟁을 비롯한 현대사회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단절이다. 이중섭의 작품에는 단절되기 이전의 총체적 상이 담겨있는데, 그 세계의 주인공은 천진한 아이였다. 아이들을 그를 둘러싼 모든 것과 닿아있고 그것들과 소통한다. 작가의 일대기를 염두에 둔다면, 그 아이들은 우선 일본에 가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어른 역시 아이로 표현된 작품도 있다. 인생의 유토피아 시기라고 볼 수 있는 어린 시절, 그리고 어른이 돼서도 실낙원 아닌 낙원에 있을 수 있는 어른 아이의 모습이다. 전형적인 어른 아이는 바로 예술가가 아닐까. 그들은 그림 속 유토피아에서 영원히 노닌다. 그리운 아이들과 여인이 있는 장면은 진한 가족애를 담고 있다. 가족은 소우주에 투사된 유토피아의 공간이다. 그의 유작 중에는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엽서와 편지에 글과 함께 담은 그림들이 많고, 때로 그림만 담은 편지도 있다. 멀리 떨어진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편지는 희망사항으로 가득하다. 이중섭의 은지화에는 가족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도 있다. 여기에서 그려지는 대상과 그리는 주체는 하나가 된다.
이중섭 하면 대표 이미지로 떠오르는 소 역시 가족들과 결합하면 희망의 땅으로 함께 가는 정겨운 존재가 된다. 소를 얼마나 자세히 관찰했던지 소도둑으로 몰렸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그는 소를 많이 그렸다. 붉은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황소에는 고통 받는 자아와 민족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는 소에 대한 시--‘....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를 쓰기도 했다. 소 그림이 외국인에게 스페인의 사나운 투우와 비교될 때는 크게 실망하면서, 자기가 그린 소는 ‘착하고 고생하는 소, 한국의 소’라는 것을 강조했다.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으면서도 울뚝불뚝 힘이 있는 소는 원초적 자연력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자연이 고난에 처해지거나 고난을 극복한다. 작품 [길 떠나는 가족]에도 나타나듯이 때로는 인간들을 고통 없는 땅으로 인도한다. 소는 사막 같은 현실을 횡단하여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도달하는데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존재처럼 다가온다. 낙원에서도 소와 인간은 소통한다. 이중섭이 꿈꾼 고통 없는 땅이란 자연과 하나 되는 역사 이전의 원초적 세계이다.
자연의 극복을 바탕으로 진보한 현대에 자연과의 균형과 조화는 상상으로만 가능하며, 그 상상은 그림 속에 오롯이 구현되었다. 천진한 아이, 사랑하는 여인, 가족, 소, 그리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연은 유토피아의 기호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고 그림에서나 가능했을 뿐이다. 그의 작품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미지의 섬이나 갖가지 식물로 둘러싸인 정원 같은 유토피아의 지형학이 내재하며, 여기에서 서로 다른 종이 소통하고 결합한다. 작품 속 지천에 널린 물고기와 과일은 지금의 결핍과 대조되는 풍요에의 희망을 표현한다. 따스한 봄, 생명이 약동하는 여름, 풍부한 결실이 있는 가을의 이미지다. 원초적 시공간으로 떠나려는 현대의 화가에게 야수주의나 표현주의는 적절한 언어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서구사조의 피상적인 모방이 아니라, 비슷한 갈망이 투사된 결과다. 이 세상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담는 예술은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야 했던 예술가에게 더욱 진실이었다. 예술을 통해 구현된 행복에 대한 약속은 도피이자 저항을 낳았다.
출전; 설화수 매거진(2015.12)
도판은 ‘이중섭의 사랑, 가족’ 전(2015년 1.6--3.1, 현대화랑)에서 왔습니다.
작품 캡션(위에서부터)
1. [도원], 1953 무렵, 종이에 유채, 65 x 76 cm
2. [봄의 어린이], 종이에 유채, 연필, 32 x 49 cm
3. [그리운 제주도 풍경], 종이에 잉크, 35.5 x 25.3 cm
4.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종이에 연필, 유채, 25 x 37 cm
5.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들], 종이에 유채, 연필, 27 x 39.5 cm
6. [게와 물고기가 있는 가족], 은지에 새김, 8.5 x 15 cm
7.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지에 새김, 유채, 10 x 15 cm
8.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은박지에 유채, 11.5 x 15 cm
9. [황소], 1953년 무렵, 종이에 유채, 32.3 x 49.5 cm
10. [소], 종이에 유채, 27.5 x 41.5 cm
11. [길 떠나는 가족], 종이에 유채, 29.5 x 64.5 cm
12. 부인(마사코, 한국명 이남덕)에게 보내는 이중섭의 편지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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