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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계의 공통분모로서의 추상/ 이선영

sosoart 2016. 6. 10. 07:16

 

강한석 / 여러 세계의 공통분모로서의 추상

이선영

여러 세계의 공통분모로서의 추상

  

이선영(미술평론가)

  

강한석 전에 출품된 다채로운 풍경화와 정물화는 추상화와 자연, 종교, 음악과의 밀접한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문학도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 5회의 개인전을 치른 화가이지만, 그는 2000년대 초반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평생 시를 써왔다. 그 활동의 연장 선 상에서 문인협회 회장도 역임 했으며, 시집도 출간한 작가에게 문학은 보이지 않은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직장 은퇴 후에 거의 출퇴근하듯이 수원의 화실을 오가며 하루 몇 시간 씩 그림에 몰입하는 동안, 글쓰기는 다소 뜸해지긴 했지만, 문학과 미술은 언제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이웃 예술로 남아있다. 막연한 생각의 흐름을 문장으로 뽑아내는 기술과 막연한 이미지의 흐름을 형상화하는 것은 비슷하다. 관념과 이미지는 선재 한 후, 나중에 문학이나 미술 같은 양식으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결과물을 나오고 나서야 자신의 생각이 어떤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이상한 순서를 가졌다. 그래서 예술은 자기탐구의 주요한 수단이 되곤 한다. 






보통, 미술에 있어 문학은 이야기로 끼어들지만 추상적 요소가 강한 강한석의 그림에 구체적 이야기는 없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도 없다. 이 전시에서 인간이 나타나는 작품은 딱 한 점이고, 추상적 실루엣으로만 나타난다. 그는 산문이 아니라, 시를 써왔기 때문에 문학은 사실주의 보다는 추상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시는 산문보다 함축적이다. 서사가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적 요소는 깔끔한 구성으로 일순간에 파악될 이미지로 고정된다. 구성적 특질은 그의 작품에서 강하게 흐르는 또 하나의 요소인 음악을 생각하게 한다. 음악은 문학처럼 작품 이면에 잠재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상으로 나타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 그에게 악기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마치 악보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또한 문학에서의 시만큼이나 추상적이다. 물론 음악도 가사가 있을 수 있고, 표제음악처럼 어떤 내용을 가질 수도 있지만, 악기 연주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 자체는 추상적이다. 음악에 있어서 인간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경지에 이른 음악의 경우, 목소리는 악기가 되고 악기는 목소리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이 전시에서 양적으로 제일 많은 것은 풍경화다. 그러나 작가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 풍경은 아니다. 전시 직전에 마지막으로 완성된 작품 한 점에 수직선이 지배적인 아파트 도시의 풍경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곳은 얼마 전에 계획된 도시로, 현대적 삶의 기능에 충실하게 합리적으로 설계된 신도시지만, 작가의 시선은 보다 먼 곳에 꽂혀있다. 그것은 바다를 끼고 있는 고향 마산의 풍경이다. 그가 그린 고향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일만큼, 우리는 단기간에 너무나도 빠르게 광대한 시공간을 통과해왔다. 세상은 변해온 만큼 더 변해갈 테지만, 70대의 화가에게 지난 몇 십 년이 바꿔놓은 풍경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 여기에 주목했다면 사실적인 풍경이었을 테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비롯된 때와 곳에 대한 추억과 상상은 추상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종교적인 것은 풍경에 곁들여 나타난다. 그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건축 모양새, 종탑과 십자가,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종교적 도상들(포도, 물고기, 떡 등)이 그것이다.








강한석의 작품에서 풍경은 보여 진 것, 상상, 상징 등  많은 요소를 자연스럽게 포괄한다. 다양한 요소들에 공통 어법을 부여하는 것은 기하학적인 구성이다. 그의 작품에서 색은 화사하고 선은 리드미컬하다. 여기에서 자연과 추상은 크게 대립되지 않는다. 추상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추상적인 미술이 자연과의 연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와는 반대로 이 연결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더 강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칸딘스키는 추상에 가장 좋은 이름으로 ‘실재적(real) 미술’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이 미술은 ‘외부세계와 나란히 하나의 미술의 세계, 정신적인 성격의 세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미술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요, 실재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강한석의 작품이 추상적인 어법을 강하게 구사하면서도 완전한 추상이 아니라,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처럼 보이는 이유는 상술한 바와 같은 실재에 대한 감각에 있다. 만약 이러한 감각이 부족하다면, 그림은 알록달록한 장식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칸딘스키는 [점 선 면]에서, 예술과 자연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추상예술은 자연형태 없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아래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추상과 사실성의 대립은 변증법적으로 종합된다. ‘추상화가들은 자극들을 미지의 자연이나 자의적 일부 자연에서가 아니라, 자연전체로부터 얻으며, 이러한 표현들은 작가 내부에서 종합된다’(칸딘스키) 추상적 언어가 구성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면으로 나와 있는 강한석의 작품에서, 풍경은 심상적이다. 일부 풍경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요소는 작가가 자연에서 발견한 보편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마치 자연으로부터 엄격한 추상 언어를 도출한 몬드리안처럼, 추상적 관계를 통해 자연은 재구성되는 것이다. 몬드리안을 비롯한 초기 추상 화가들은 조형적 언어를 감축하고 이 요소를 통해 ‘우주적 관계를 정확하게 재구성’하고, 그로서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이 대목에서 추상적 풍경은 자연을 초월하는 진리, 가령 종교적 세계관으로 표출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나 모진스키는 [20세기 추상미술의 역사]에서, 몬드리안은 신(新)플라톤주의 철학자처럼, 예술이 고차원의 리얼리티, 혹은 자연을 초월하는 진리를 반영하기 원했으며, 그 완벽함을 통해 예술이 사람들로 하여금, 위대한 깨달음이나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믿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神智學)자 블라바츠키가 하늘의 수직성(활력성, 남성의 원칙)과 그와 동등한 땅의 수평적인 지평선(평온성, 여성의 원칙)으로 설명한 직각의 이론에 크게 공명한다. 이 두 개의 선이 상호교차 하여 만들어 내는 십자가는 생명과 불멸에 대한 유일하고 신비적인 개념을 나타냈던 것이다. 강한석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수직, 수평선의 교차 형식은 평형을 유지함으로서 궁극적 보편자의 형식을 그린다. 그것은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세계를 연출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하적 추상의 정적인 조화 뿐 아니라, 활력 또한 있다. 강한석의 작품의 활기를 부여하는 주요소는 음악이다. 


이 전시의 작품 중 9점에 등장하는 다양한 악기들은 작가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작품 제작 순서 또한, 악기부터 시작하고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그랜드 피아노, 목관 악기, 현악기 등은 이런 저런 조합을 통해 작품마다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작가는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것들이 어떤 기능을 따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과 추상을 반대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떤 기능을 따르는 구조란 공중에 붕 떠 있을 수 있는 추상에 중력과도 같은 구체성과 필연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구성이라는 방법론은 미술사에서 미술과 디자인, 건축과의 내적인 관계를 다져왔고, 현대 정보사회와도 조응하는 구체예술(concret art)의 어법이 되어왔다. 여러 차원들을 관통하는 추상이라는 공통분모는 강한석의 작품이 단순한 정신성을 넘어서, 보편과 구체에 뿌리내리려는 지향을 알려준다. 즉 그것은 예술이 단순히 잉여나 장식이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음에 대한 메시지이다.   

 

출전; 문화공장오산(오산시립미술관)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