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시인모독/ 김용오

sosoart 2016. 5. 29. 00:29





시인모독/ 김용오



11. 역시 알고 보니 시인들은 사기꾼이더라. 그러나 그들의 거짓말이 생각했던 것 보다 성스럽고 정직하여 어느 누구도 함부로 걷어차거나 미워할 수 없으니 더욱 큰 사기꾼이더라.

 

12. 다들 잘 먹고 잘사는 요즘 같은 산업 사회에 스스로 굶주림을 선택하고는 끝내 오지도 않을 미지의 그날을 꿈꾸며 살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거지들. 오냐, 시인 만세다.

 

13. 시인의 직업으로는 창녀촌의 포주가 가장 안성맞춤이다. 그 이유는 묻지 말라. 게으르기 짝이 없는 그들 자신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14. 오직 슬퍼하기 위해서, 오직 거룩한 바보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내던져진 소금같은 족속들. 거듭 바라노니 신의 저주가 있으라.


 

15. 시인이 한 사람씩 죽을 때마다 천상의 별이 하나씩 떨어져 사라진다는 옛 이야기를 오늘도 진실처럼 믿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아프게 눈물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제 이세상 어느 구석에도 없다고 하느니.

 

16. 그대가 죽어서 땅 밑에 묻혀있다 아무도 몰래 백년 후에 혹은 천년 후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있다고 해도 다시는 시인의 삶을 살 수 없으리. 그대는 이미 시가 필요없는 딴 세상이 되어 있을 거니까

 

17. 순진한 독자들은 널리 애송되는 좋은 시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시인들의 인격마저 작품과 동일한 시적 향기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한 착각에 불과하다. 세상 인기를 누리는 시인일수록 위선적인 사이비가 많다는 것을 알라.


18. 평소에 고상한 척 머리를 꼿꼿이 들고다니던 시인들 까지도, 종합문예지나 시 전문지 같은 발표지면을 가지고 있는 분들 혹은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나 심지어 유명하다는 평론가들 앞에 서면 옆에서 보기 딱할 정도로 머리를 굽히고 두 손을 비비며 비굴해진다. 작품의 질보다는 빨리 유명해지고 싶은 속물 근성의 성감대를 보는 것 같아서 입맛이 쓰다.

 

19. 날마다 시인들은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죽음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일종의 비현실적이고 과대망상증이라는.

 

 

 

20. 만약 그대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우편으로 보낸 이쁜 장정의 본인 시집이 믿었던 친구의 집에서 그것도 넓은 안방의 화려한 장롱 밑의 받침대로 사용되어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일로 하여 친구의 집에 갔다가 만약 그대가 값비싼 장롱 밑에 형편없는 몰골로 구겨진 시집의 주검을 불행하게 목격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다시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지리라. 분명 이 사건은 엄연한 사실에 속하지만.

 

21. 어떤 날은 온종일 침침한 방구석에서, 또 어떤 날은 이른 아침 조간신문 하나 사서 들고는 국립공원 같은 곳에 혼자 찾아 들어가 고도처럼 놓여 있는 한쪽 구석지의 나무 벤치 위에 다 읽은 신문지 한 장을 깔고 남은 한 장은 얼굴을 덮은 채 벌렁 나자빠져 마음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인생 실업자들. 그들이 진정 하고자 꿈꾸고 있는 것은 가치 있는 행동이 아니라 허무맹랑한 생각의 붓으로 이 세상을 마구 색칠 하려는 정신병자 같은 짓이다.

 

22. 우리 문단에 퍽 덕망 있다고 알려진 중견 시인이요 평론가인 모 교수로부터 나는 이런 슬픈 고백을 들었다. 하루는 청탁받은 원고를 쓴다고 방바닥에 엎드려 끙끙거리며 잡히지 않는 언어와 땀흘리는 시름을 끝도 없이 벌이고 있는데 아무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온 아내가 머리맡에 어질러 놓은 원고지를 고의적으로 짓밟아 뭉개고는 휭하니 집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 마치 징그러운 뱀처럼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23. 논밭 팔고 소 팔아 가슴 저리게 보낸 돈으로 그는 어렵게 대학을 마쳤고 열심히 글을 써서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병아리 시인이 되었다. 다음 해 운좋게 첫시집까지 출판하는 행운을 얻어 제일먼저 그는 소중한 시집 한 권을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가난한 시골 고향으로 부모님을 뵈러 내려갔다. 더욱 늙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께 삼가 큰절을 엎드려 하며 글썽거리는 마음으로 첫 시집을 안겨 드렸다. 한참동안 물끄러미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더듬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였다.
"얘야, 이 책 한 권 팔면 쌀 열가마 정도는 바꿀 수 있는 거지. 허허 이제 논밭도 사고 외양간의 누런 황소도 다시 보게 되었구나. 허허허."

 

24. 성경 속에는 전염성이 강한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서 그 책을 볼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읽어야 한다는 니체의 잠언처럼 어제 오늘 마구 쓰레기가 되어 쏟아져 나오는 시인들의 시집을 읽을 적에는 역시 질긴 고무 장갑이라도 두손에 끼고 보아야 하리니. 전염성이 신속한 언어의 바이러스들이 시의 행간에 덕지덕지 숨어서 우리들을 잔뜩 노려보고 있으므로.

 

25. 원래 시인은 그 옛날 노동이나 사냥을 할 수 없는 육체적인 불구자들, 즉 쓸모없는 병신이었다고 영국의 시인 "데이 루이스"가 말하였지만 요즘에 와서는 사대육신이 멀쩡한 정신적인 불구자 시인들이 더 많이 태어나는 것 같다.

 

 

 

26. 마구 쏟아지는 문학 잡지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신인상이나 추천제도를 만들어 놓고 마구 똥오줌을 배설하는 것처럼 엉터리 시인들을 뽑아대고 있으니 어디 백화점의 상품처럼 시인들을 바겐 세일이라도 하려나 보다.

 

27. 한때 유행하였던 산아제한이라는 포스터처럼 시인제한이라는 포스터를 멋있게 만들고 그 위쪽에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라도 쓰고 길거리 벽보판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덕지덕지 붙여놓으면 어떨지 몰라. 지구촌의 인구 폭발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피임약이나 피임 도구 혹은 피임 수술 팜플렛을 타락한 시인들에게 더러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28. 시인이라는 관사는 수컷의 아름다운 뿔도 아니고 면허증도 아니고 자격증도 아니다. 스스로 자청하여 고뇌를 찾아 다니는 사람. 어쩌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가브리엘 천사. 언제나 사람이 살고있지 않은 무인도처럼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29. 시인들 중에 한번도 손에 흙이나 기름을 묻혀본 적도 없는, 부르조아같이 호화로운 저택에서 날마다 양주를 마시고 빈둥빈둥 놀면서 노동자나 농민들의 삶이 어쩌구 저쩌구 노래하는 관념적인 위선자들이 많다. 알고보면 그들의 정신적인 패배주의는 인기를 얻기위한 치사스러운 엄살일 뿐이다.

30. 부디 간청하오니 시인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친구들의 고뇌나 불행까지도 시적 재료로 삼는 염치없는 자들이다.
 
 

김용오 시인
 

 
 
경북 포항 출생, 2012. 12. 25 숙환으로 별세
건대 대학원 수료
 
1982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제 11 회 현대 시인상 수상
제 24 회 시문학상 수상
 
시집
신의 수염, 동화작용, 두 사람에 관한 성찰, 사부곡, 멀티 오르가즘, 명상집 여자 현상학, 시인모독
동인당 약품(주)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일 년 전쯤인가? 김용오 시인의 “시인모독 1~10편”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11~30편을 이어서 소개를 해드립니다.


어쩌면 시인의 숙명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시인도 인간이기에 또 생활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야하는 고뇌를 풀어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무릇 우리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올곧게 살아가는 이, 쉽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 능수능란하게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처세를 발휘하며 화려하게 살아가는 이, 뒷켠에서 주변인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너무 개떡 같아 분노에 젖어 자신을 괴롭히는 이.......... 등


별의별 행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며, 자책하는 모습이 자칫 저와 같이 산촌에서 은둔하며 애써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살려는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조소를 머금은 자화상을 연상케 합니다.


“마구 쏟아지는 문학잡지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신인상이나 추천 제도를 만들어 놓고 마구 똥오줌을 배설하는 것처럼 엉터리 시인들을 뽑아대고 있으니 어디 백화점의 상품처럼 시인들을 바겐 세일이라도 하려나 보다.” 라는 26장에서는 마구 양산하는 시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 허탈해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어디 시인뿐이겠습니까? 문학의 장르에서는 수필, 소설, 비평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은 무차별적으로 늘 있어왔던 일이겠지요.

어디 문학의 분야에서만 그럴까요?


미술, 음악, 서예 등의 분야뿐 아니라 정치는 물론 이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현상이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교육이나 연구 분야에서도  논문의 표절, 명의의 도적질 등 목불인견의 세태는 아마도 인류가 생겨난 이후 계속되어온 현상일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참 속상합니다.
왜 상식적이고 옳은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지 못하고, 온갖 권모술수와 비리와 허위 그리고 거짓만이 진실을 누르고 승승장구를 하는 것일까?


“나 돌아가고 싶네, 진실과 상식이 잣대가 되는 그런 세상으로........‘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이 세상의 변해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늙은이들은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정은 메말라가고 도덕과 정의는 추억의 한 장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 하다면 너무 심한 표현이 될려는지.........?

이제 밤은 더욱 깊어가는 산촌의 시간 한 가운데 있습니다.


별빛은 점점 선명해지고 숲 속의 새는 모두 잠들었건만 오직 이름 모를 한 녀석만 한 시간여를 계속하여 우짖는 밤입니다.


세상이야 누가 뭐라 한들 여전히 보란 듯이 돌아갈 터인데 어느 한 몸이 부르짖어 말해 보아야 무엇 하겠습니까? 누가 눈이나 깜짝하겠습니까?

누구엔가 위로를 받고 싶은 시간입니다.


조병화 시인의 “하루만의 위안”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들기 가슴을 비비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다 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늘은 해질 녘에 앞뜰의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 토마토, 옥수수 등 채소와 뒤뜰의 블루베리에 물을 듬뿍 주고, 예전에 만들어 쓰고 있는 침대를 다시금 손보는 작업을 하면서 40여년 전 기타를 치면서 즐겨 불렀던 CCR의 “Who’ll stop the rain”,  “Have you ever seen the rain” 등의 음악을 소리 높여 들어보았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예전 젊은 시절 즐겨들었던 팝송이나 클래식음악을 들으면 종로나 삼각동, 명동 등의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듣던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제는 오지 않을 그 옛날의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서글퍼지는군요.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