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눈 오시는 날/ 오탁번

sosoart 2016. 3. 1. 21:03






눈 오시는 날/ 오탁번

 

눈 오시는 날

밖을 가만히 내다본다

넉가래로 눈 치우느라 애를 먹겠지만

그거야 다음 일이다

그냥 좋다

눈을 맞는 소나무가 낙낙하다

대추나무는 오슬오슬 좀 춥다

대각선으로 날리던 눈발이

좀 전부터 허공에서부터 춤을 추듯

송이송이 회오리치며 쏟아진다

ㅅ ㅅ ㅅ, ㅎ ㅎ ㅎ, 소란스레 눈소리 들린다

메숲진 앞산 보이지 않는다

내내 함박꽃처럼 내리는 눈을

그냥 무심히 내다본다

눈길에 운전하느라 애를 먹겠지만

그거야 다음다음 일이다

그냥 좋다

눈 오시는 날

 

 

아직도 아기의 티를 벗지 못한 어린이집엘 다니는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시계불알처럼 서울과 시골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더구나 한파가 닥쳤던 지난달과 이 달에 한두 번 보일러가 말썽을 부려 사람을 불러 고치며, 또 마당의 세 마리 진돗개의 밥도 주고 녀석들이 배설한 얼어붙은 똥을 치우랴...... 시골의 보금자리에 내려와도 어디 한 번 마음먹고 낮잠을 잔다거나 한가하게 책 한 번 들여다 볼 겨를이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번 삼일절 징검다리 연휴에 겨우 며칠 내리 이 한촌寒村의 우거 동락재에 머물러 시집을 손에 들고 읽어볼 잠시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옛날에 읽었던 소설이나 시집 그리고 전공분야와 달리 인문사회분야의 서적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일은 젊은 시절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금 느끼고 알게 되어 늙은이의 독서는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의도와 그 배경을 더욱 더 유추하게 되고, 이순, 칠순을 지나면 더 나아가서는 저자보다 더 넒고 깊은 이해와 통찰력으로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 이 나이에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평소에 좋아하던 오탁번 시인의 시집 시집을 모처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기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서울과 대도시의 인간사와 인연의 한 복판을 떠나 외로움과 고적함 속에서 자기를 성찰하고 또 더 깊은 사고思考의 침잠의 늪으로 들어가 앞으로 남은 시간 더 구차하지 않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의 위안이기도 합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제적 여건의 테두리 안에서 자급자족함은 물론 바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그 흔한 푸성귀 하나 심고 가꾸어 먹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서울이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귀촌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기도 하거니와, 막상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하다보면, 10 년을 훨씬 넘긴 몸 노동의 생활을 겪고 나이가 점점 더 들게 되면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지게 됩니다.

 

더구나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비와 눈이 적어 가뭄 걱정을 하게 되다가 이렇게 삼월을 하루 앞에 두고 10센티 이상 많은 눈이 오게 되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늙어가는 육신이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때에 오는 눈을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이라서 산야山野와 나뭇가지 위에 쌓인 설화雪花는 사진으로 담지 않으면 너무 아까운 풍경이어서 마당에 나가서 뜰 안의 눈

쌓인 풍경을 담아 일상의 이야기를 담는 불로그에 옮겨 귀촌하여 살아가는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또 뒷산으로 들어가 순백의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척추 수술을 한지도 근 10년이 다되어서 그런지 다시금 또 허리가 시원찮아 지면서 게을러지기도 하고, 혹여 미끄러운 눈길을 걷다가 넘어져서 골절이나 엉치뼈를 다치게 되면 생명의 위협이 될까봐 매우 조심을 하게 됩니다. 늙어서 엉치뼈가 골절이 되면 전혀 움직이질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게 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무에 그리 장수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실수라도 잘못되면 자식들에게 아주 무거운 짐을 지울 수는 없으니까 근신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끔은 눈이 오면 설레기도 합니다.

어쩌면 훨씬 더 젊었던 시절의 여러 벗들을 떠올리며 또 잠시라도 마음을 담았던 어느 남자 아닌 사람과의 추억이라든가 지난 일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아득한 옛날에 젖어들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냥 무심히 내다본다

눈길에 운전하느라 애를 먹겠지만

그거야 다음다음 일이다

그냥 좋다

눈 오시는 날

 

시인의 말처럼 그냥 좋은 눈오는 날도 있게 마련이지요.

몸은 늙어 가지만 기억 속의 일은 늙지를 않으니까요.

 

오탁번 시인의 이 시집이란 시를 읽다보니 작년 가을쯤 까지 활판시집을 보내주셨던 박건한시인의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금 또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박건한 시인은 재작년 이동활의 음악정원이라는 인터넷까페에 그의 시를 소개하였던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고맙다는 뜻에서 시인이 함께 주도한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활판인쇄의 원형을 보전하기 위해 파주 출판단지에 소재한 출판도시 활판공방에서 간행한 미려한 크로스 장정의 국내 유명 중견시인 100인의 시집 중 출판된 시집 30여권을 보내주셨습니다.

    

물론 시집의 대금을 받지 않고 보내주셨기에 공직을 은퇴한 저로서는 국가공무원은 아니었기에 공무원연금의 수혜를 받지도 못하고, 퇴직 후 책상물림으로 거친 사회풍파에 휩쓸려 어리석게도 노후를 대비한 자금?을 인생수업료로 탕진하여 가진 것도 없기에 자신의 공예예술의 하잘 것 없는 재능으로 작업한 작품 한, 두 점으로 미약한 마음을 전하기만 했었지요.

 

그러다가 아래 오탁번 시인의 시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저에게도 박건한 시인께서 그 귀한 감태를 보내주셔서, 시집 한 권 정가가 오 만 원인 그 선물에 항상 부담을 느껴왔었는데다가 남도의 귀한 감태까지 보내주신 마음에 아주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가끔 특별한 날 고마운 분들께 성의를 표하기 위해 홍천더덕을 보내드리곤 했던 차에, 마침 서울 올라가는 길에 단골 더덕상에 잠깐 들려 박건한 선생께 보낼 더덕의 정성스런 택배 송달까지 부탁을 하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실은 박건한선생께서는 사모님과 사별하신지 적지않은 세월이어서 더덕을 보내드려도 반찬으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아 오히려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홍천의 더덕은 맛이 괜찮아 망설임 끝에 보내드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박건한 선생으로부터 전혀 소식이 없어서 혹시 건강에 문제가 생기신 것이 아닌가 많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탁번 시인의 시 시인2”에서처럼 목포에서 파주 활판공방까지 네 시간 반을 두루미처럼 활활 날아오는 박건한 시인...........”으로 표현될 만큼 건강한 선생께서 그렇지는 않을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혹여 내가 보낸 자그마한 선물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선생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메일로 왜 그리 소식이 없으시냐.......?” 묻는다면 이 사람이 시집을 계속 받고 싶어 그러는 것 아닌가......?”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으므로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만약에 짐작대로 선물이 보잘 것 없어 결례를 범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간이 바빠서 택배를 더덗상에 위임하고  물건을 확인하지 않고 서울로 향한 불찰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습니다만.....

박건한 선생님 그동안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연한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징검다리 연휴가 거의 지나가고 있습니다.

며칠을 쉬고 또 다시 서울과 이 산촌의 우거를 바삐 다녀야하겠습니다.

어느덧 삼월! 이제 봄이 이 동락재의 뜰 울타리까지 찾아 왔습니다.

목련의 겨울눈이 벌써 톡톡 터질 듯합니다.

새봄, 우리 모두 건강하고 북한이 우리를 향하여 핵탄두를 견양하고 있는 즈음에 정치인들은 제 출마와 당선을 위한 권모술수를 떠나 진정 국민과 나라의 안위를 위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멸사봉공하기를 바라며, 될 수만 있다면 백해무익한 국회와 국회의원들은 제발 지구를 떠나게 해주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시인2/ 오탁번

 

남녘 바다 찰감태 먹고

 

입맛 살아난

 

입춘날 아침!

 

목포에서 파주 활판공방까지

 

네 시간 반을

 

두루미처럼 활활 날아오는

 

박건한 시인의 눈매 떠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