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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수-차이의 형식, 과거와 현대의 조우 / 고충환

sosoart 2016. 11. 18. 20:21


강이수/ 차이의 형식, 과거와 현대의 조우

고충환


대개 작가들은 작업을 하는 저만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고, 작업이 지향하는 목표가 있고, 작업을 지지하는 인문학적인 배경이 있다. 그게 뭔가. 주제다. 작업을 하는 이유이며 작업을 하게 만드는 동력이 곧 주제인 것이다. 이런 주제에 관한한 예외는 없다. 구상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으로 치자면 색채 자체, 조각의 경우에는 물성 자체의 직접적인 제시와 같은 추상의 경우에도 그 자체가 주제에 해당한다. 외관상 이렇다 할 의미내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여기서 주제는 그 자체 결여로서보다는 드러나 있으면서 숨겨진 경우라고 보아야 한다. 형식이 내용이고 내용이 곧 형식인 차원, 형식과 내용이 일치된 경우, 형식 자체가 주제이고 내용이고 이유인 지경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강이수의 조각을 견인하는 주제의식은 뭔가. 이와 관련해서 작가는 의미심장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원시적인 기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현대와 원시의 통합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과거와 현대를 조우시키는, 과거와 현재의 미적 공통형상에 해당하는 기호에 주목하는 등등의 입장을 작업노트에 밝혀놓고 있다. 거듭 과거가 호출되고 있는데, 그게 뭔가. 자연의 본성을 추구하는? 원형적인 형상을 지향하는? 프리미티비즘? 바이털리즘? 어느 정도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원형적인 기호이며 원형적인 이미지를 의미할 것이다. 짐짓 진지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이 문명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잃어버린 것들이다. 야성과 야생, 본능과 본성,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범신론과 물활론, 자연과 자연성, 주술과 제의, 그리고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러니하게도 감성과 감각 같은, 자본주의에 의해 타자화 되고 이성의 이름으로 단죄된 것들이다. 작가는 말하자면 이처럼 잊힌 이야기며 잃어버린 서사를 현재 위로 되불러오고 싶다. 그러므로 그의 기획은 상실된 원형의 회복과 복원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근거를 고대의 암각화며 상형문자와 갑골문자에서처럼 그림과 문자, 형상과 의미의 경계가 넘나들어지는 원시적인 기호에서 찾는다. 그 기호에서야말로 타자화된 서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고 본 것이다. 


강이수, 개, 철과 석재



강이수, 닭, 철과 석재



여기서 작가가 되불러오는 과거는 다르게는 자연성(자연의 본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작가의 작업에서 자연성은 인간과 동물 이를테면 말과 개 그리고 새와 같은 자연소재를 차용하는 경우로 나타나고, 조형을 통해서 자연의 본성을 추구하는 경우, 이를테면 자연스런 느낌이며 질감과 같은 형식적인 특질로서 현상한다. 정리를 하자면 각각 자연소재를 차용하는, 그리고 자연의 본성을 추구하는 경우를 통해서 자연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대 암각화며 상형문자에 나타난 기호를 재해석한 인간형상이며 동물형상을 조형하기도 하고(고대 상형문자에서 글자는 곧 함축된 그림이었고 형상이었다), 고대 고구려 시대 분묘에 그려진 무희의 춤사위를 자신만의 조형감각으로 되살려낸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선 평면화의 경향성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특히 선조 형식을 취한 작업이, 녹슨 철판을 레이저 커팅으로 조형한 작업이, 그리고 석재 표면에 이러저런 패턴과 문양을 새겨 넣은 작업이 그렇다. 이런 평면화의 경향은 멀리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 유래하고 가깝게는 조선시대의 민화에 전승된다. 그리고 그 경우 그대로 사물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일정한 양식화와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는 작가의 작업에도 유의미한 영향관계를 남겨놓고 있다. 예외가 없지 않지만 대개 작가의 조형은 환조에서조차 평면적으로 보이고, 이런 평면화의 경향성이야말로 작가의 조형을 특징짓는 요소 내지 성질로 볼 수가 있을 것. 



양식 혹은 형식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작가의 조형을 특징짓는 또 다른 경우를 지적하자면 대상을 재현할 때 다름 아닌 바로 그것으로 지목되는 결정화된 지표를 따르는 대신 이것과 저것에 대해 동시에 열려있는 비결정화의 방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말은 사람 같고 사람은 말 같다(사람처럼 서서 걷는 말?). 선사시대의 토템(이를테면 곰족이나 까마귀족과 같은, 동물과 인간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을 따른 것일 수도 있고, 현대적으로는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삶을 비쳐본 의인화 내지는 우화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그리고 탈현대적으론 모든 결정화의 도그마에 대한 의심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 혹은 보다 적극적으로는 그러한 의구심의 의식적인 실천논리로도 볼 수가 있겠다. 이를테면 바로 그것으로 지목되는 결정화의 방식을 00같은 것(말 같은? 다만 개처럼 보일 뿐인?)으로 나타난 비결정화의 방식으로, 닫힌 의미를 열린 의미로 대체하는 것과 같은. 이 일련의 과정을 매개로 작가의 작업은 잊힌 서사(동물과 인간, 자연과 사람간의 경계가 넘나들어지는)를 일깨워 현대인의 기원을 복원하는 일이며 잃어버린 반쪽(불구의 원형)을 회복하는 행위에 바쳐지고 있다는 점에 작업의 이유가 있고 의의가 있다. 내용이 있고 주제가 있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새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내놓고 있다. 새 자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으로서보다는 일정한 양식화와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지만, 한눈에도 새 형상이 여실한 작업들이다. 기본적으론 사물대상의 구조적이고 형태적인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고대 암각화에서부터 조선시대 민화에 이르기까지, 좀 더 현대로 넘어오면 각종 우화와 캐리커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변주되고 노출된 기호화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조형한 새 형상에는 민화를 연상시키는, 사람을 새에 빗댄 우화적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하고 사람의 표정을 덧입은 캐리커처를 보는 것 같은 형상의 경우들이 다 포함돼 있어서 쉽게 공감을 자아내고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작업 전체에 두루 해당하는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아마도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경우로 볼 수가 있을 것이지만, 이들 새 작업에 나타난 특징으로는 이질적인 재료 간의 결합과 조합이 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몸통은 석재로, 다리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로, 그리고 부리와 날개 혹은 관은 녹슨 철판을 레이저 커팅 한 조형으로 각각 제작한 연후에 이를 하나의 조형으로 짜 맞춘 것이다. 그리고 눈에는 몸통과는 다른 돌을 심는 일종의 상감기법이 적용되기도 했다. 부위별 형태와 색감과 질감과의 유사성에, 그리고 그렇게 강조돼 보이는 차이에 착안한 것일 터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이처럼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들 고유의 물성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를 광택 처리해 날카로운 다리(발톱?)를 강조하고, 녹슨 철판을 레이저 커팅 처리한 것으로는 관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화강암 재질의 석재를 터실터실한 돋을새김으로 마감한, 때론 돌을 깰 때 만들어졌음직한 우연한(의도된 우연) 비정형의 자국이며 흔적이 여실한 표면이 촉각적인 성질과 함께 새의 몸통과 깃털의 표면질감을 닮았다(이를테면 보푸라기?). 



그렇다면 이 모두는 다만 사물대상(새)과의 유사성을 겨냥한 것인가. 그 경우도 맞지만, 이보다는 사물대상의 본성 곧 자연스런 상태 곧 자연성을 의식한 경우로 보인다. 강돌과 같은 자연석 그대로를 도입한 경우에서 그 적절한 혹은 적극적인 경우를 엿볼 수가 있다. 자연석 자체가 기왕에 가지고 있던 고유의 형태며 질감 그대로를 사물대상을 재현하고 표현하는데 적용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렇게 작가는 사물대상 그대로를 재현하기보다는 일정하게 양식화하고 추상화한다. 사물대상의 구조적이고 형태적인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재료 고유의 물성을 살려 자연스런 느낌(자연성)을 강조한다. 한편으로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와의 결합은 기본적으로 의외의 결과며 예기치 못한 결과를 향해 열린 경우란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사물의 전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더니즘과는 구별되는 탈모더니즘의 경향성에 연동된다. 모더니즘 조각의 단일성과 통일성에 대해 복수성과 이질성이 비교되는 것이다.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와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결합을 통해서 모더니티와는 다른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렇게 재료에 따른 그리고 기법에 따른 부위별 색감과 질감에 차이를 둔 작가의 조각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정감을 자아낸다. 스텐조각도 쇠붙이도 그리고 돌도(그전으로 소급해보자면 나무도 그리고 테라코타도) 저마다 고유한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친근하고 자연스런 느낌을 준다. 작가의 조각은 특히 석조와 목조 그리고 철조와 같은 재료를 근거로 구분한 조각의 전통적인 범주개념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만든다. 조각으로 치자면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를 하나로 결합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조각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보다 근본적으론 차이를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문법으로 불러들여 다른 비전(이를테면 단일성과 통일성의 전제로부터 유래한 비전과는 다른 비전)을 예시해주는 가능성의 한 지점을 열어놓고 있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