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sosoart 2017. 2. 12. 15:51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즈음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들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 하겠습니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

이생진 


출생  1929년 10월 1일  충남 서산시
학력  국제대학 영문과
수상  1996 윤동주 문학상 수상 
        2002 상화 시인상 수상

출처: Daum


적어도 인생 60을 더 살아온 이 나라의 남성들은 다분히 가부장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남에게는 살갑고 자상하며 친절하게 대하지만 아내와 자기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대부분 노년 남성들의 자화상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의 남자라 하는 족속들은 아내의 그런 수고와 희생에 단 한번도, “여보 고맙구료.  수고 했어요!. 이렇게 아무런 탈도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던 것도 다 당신 탓이오.  고맙고 사랑합니다.” 라고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으니, 여성들의 시선으로 보면 참으로 못 된 인간들이 아니겠습니까?


하긴 우리도 할 말이 있긴 있지요.   “남자란 것이 어디 가벼웁게 아양을 떨며  입바른 말이나 하고 양반 책상물림 주제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사나? 그리고 부부지간에 꼭 그런 말을 해야 아나?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경향은 봉건적 유교사상에 젖어 살아온 우리 민족의 고쳐야 할 점이지 남편들이 못 되먹어서 또는 여자에게 지기 싫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여성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남자들이 밖에 나가서는 친절하고 자상하고 예의를 갖춘 멋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길 바라면서, 왜 집안에 들어와서는 남보다 수 백, 수 천 배 더 귀중한 존재인 아내와 자식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저 욱박지르고 큰소리만 냈던가?  왜 가족이란 이름이 한없이 나만을 이해해 줄 거라고만 생각을 했던가? 후회스럽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앞으로는 “여보,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얘들아 고맙다. 나도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라는 말들로 표현하고 싶은데 막상 표현하려면 입 안에서 나오려다가 사그러져 버리고 왠지 오글거리고, 나 같지 않은 모습 같아서 하질 못하는 것일 뿐이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내들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흘러가는 경향이 남자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쪼그라들고 여인네들은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정네들이 제 한 몸 잘 먹고 잘 살자고 했던 것은 아니잖습니까?


일례로 기러기아빠를 자처한 남정네들을 볼 적에 정말 딱하고 안 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들의 돈줄로서만이 존재하는 남편들을 볼 때, 뭐 그리 커다란 영화를 보겠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기러기아빠들에게 또 한 번 돌을 던지는 꼴이 되겠지요? 


무릇 남정네란 젊은 시절 자기의 일터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며 올인을 하게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가족의 부양도 책임지며 실로 가볍지 않은 사회생활을 해 나가게 마련이지요.  그렇기에 젊은 시절부터 은퇴 시까지 가정과 직장을 병행해서 자신의 역량과 발전을 위해 몰두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가정을 소홀히 한다는 마음보다는 더 나은 우리 가정을 위해 잠시 비껴두고 사회생활에 전력투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가정보다 사회생활에 거의 전념을 하는 것이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이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론 그 사회생활의 행태는 곧이곧대로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며 아부나 불의와의 타협은 없이 맑고 돈과는 거리가 멀게 무능한? 사회생활을 하므로서 가정에 부정한 돈은 물론 그 흔한 상품권이나 구두표 하나 집에 가져다 주지 못하고, 고위직으로 재직을 하고 있다 해도 명절에 선물 꾸러미 하나 들어오는 법이 없는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있는가하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러나 저러나 내 실속만 차리면 되지 청렴과 결백이 뭐 말라빠진 것이냐? 그것이 밥 먹여 주냐? 하면서 온갖 떡고물, 뇌물, 부정한 현금이나 물품을 챙기면서 남들이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유능한?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자, 이렇게 두 가지 부류로 인간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 어쨌던 그러그러한 사회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한 후, 우리네 평범한 보통 남정네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등진 노년의 생활에 들어가게 됩니다.
경제력이 없으니 어디 편하게 밖에 나가 친구 한 번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선뜻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 편한 마음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나님들은 남편의 은퇴 후,  그간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을 하며 “이제부터는 나도 나를 위해 나머지 생을 살아야겠다는 훌륭하고 도도한 자의식에 젖어 남편을 걸리적거리는 한 개의 물건으로 여기고 삼식이, 껌딱지, 찐드기 등으로 비하하며 제 생활을 즐긴다고 합니다.  뭐 절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하긴 우리가 외식을 하러 나가보면 거기엔 남정네들 보다는 젊은 여성은 물론 중년 이상의 여인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 남정네들이 직장 근무를 할 때에는 점심값 아끼려고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인들의 외식밥상은 적어도 괜찮은 메뉴와 기름진 음식 그리고 술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아, 여자들도 아끼고 사는 것만은 아니구나.  평소에 남편과 자식들 건사에 자기를 위해 맛있는 것 못 먹었을테니 외출할 때 한 끼만이라도 호사하는 것이 뭐 대수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남정네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그렇게 희생을 했으니, 이제라도 내가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방송이나 여러 매체에서 은퇴한 남편을 동네 강아지처럼 부르고 표현할 때는 사실 배신감은 물론 요사이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황혼이혼이나 졸혼을 떠올리게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경우는 김대중 정권 때에  자기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웠다고 국가기관이나 공직에 마구마구 온갖 무능하고 자격도 안 되는 놈들을 심어놓으며, 직장에서 오랜 근무경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마치 무능한 공적公賊이라 매도하고 명퇴를 강요하거나 압박을 하던 때에, 전문직 필수임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꼴이 눈부셔 남들이 상위 5%, 철밥통이라고 하는 공직을 그야말로 “야 이 더러운 00들아, 잘 처먹고 잘 살아라!”하고 발로 박차고 나왔습니다.


물론 아내와 자식들의 반대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성정에 그야말로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나왔었습니다.

해서 책상물림 주제에 늘 소망해왔던 귀촌을 위해 이런 저런 대망?의 일을 벌였다가 소위 남의 입에 고스란히 적지 않은 돈을 쳐 넣고, 그나마 아내가 가족의 생계를 위한 생전 해보지도 못한 생계의 일선에 나서서 소위 대기업의 전문 의류 프렌차이즈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 다 잃지 않고 조금이나마 남게 된 것이고, 더 다행스런 것은 거주하는 집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최악의 사태는 면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버리고 비우는 것을 남편 탓으로 몰아가지 않은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아내와 가끔 얘기를 합니다.


그때 당신이 퇴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하위계층으로 전락하지도 않았고 아이들도 마음 고생하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을 거라고... 지금은 웬만한 직장사람의 연봉이 1억을 넘지 않습니까?


제 성질 못 이겨 욱하는 마음에 사표를 던지고, 또 1년이란 세월동안 사표 수리를 하지 않았으면 못이기는 척하고 그대로 머물러있지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세상이란 것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은 것 일진데.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자들이 하는 짓이란 것이 국민들의 보통 사람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김대중 이후 노무현 시절엔 더욱 더 그런 꼴이 가관이어서 한 기관의 감사라는 자리에도 어디서 빌어먹던 놈인지, 새파란 아이를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앉혀놓으니 아는 것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직원들 눈초리는 하찮은 인간이 아닌 벌레처럼 없수이여기니 시위나 주도하고 완장이나 차고 날뛰던 놈들이 자리보존하기에도 얼마나 괴로우면 툭하면 근무시간에 나가서 사우나나 하고 낮술이나 처먹고 했으니 이 세상 공무원이나 공직사회가 잘 돌아가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그런 행태는 그 이후 이명박이나 지금의 박근혜 시절도 마찬가지니까, 이 나라 정치하는 자들은 모주리 삼태기에 담아 똥물에 던져버려야 할 존재라 해도 모자란 일이지요.   


어쨌거나, 퇴직하고 뭇 인간들의 사기의 표적이던 시절, 매장에서 아내를 도와준답시고 같이  출퇴근을 했지만 차라리 매장에 없는 것이 도와주는 성격이 되어서 이곳 산촌의 초막으로 들어와 장래를 도모하던 시절 아내가 생활전선에서 고생하는 마음이 아픔에 사무쳐 이런 넋두리를 해보았습니다.   


간절한 그리움으로
 
쓸쓸한 마음
깊은 그리움으로 이어져
불현듯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여보.....”,

당신은 늘 그리운 만큼의 거리에
떨어져 있구려

손 닿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에 존재하면서
가득히 오고가는 보고픈 마음
내 마음 당신으로 가는 그 길로 이어지며
한없이 고요하구료

창밖엔 내 마음 위에 소복이 눈 내리고
소리없이 하얗게 쌓인
그 겨울 한가운데
 
겨울의 나목裸木은 제 놓인 자리에서 홀로
묵묵히 봄을 기다고 있구료

아, 천지 사방이 고요한 세월
존재로 가득한 이 세상
 
아, 한적한 이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
 
당신은 그 자리에, 나는 이 자리에

여보, 
우리는 이렇게 있구료

간절한 그리움으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의 고생에 대한 긍휼한 마음의 표현이었지요.


수년 전부터는  두 내외 모두 허리 수술로 건강치 않은 몸으로  외손주의 보육을 위해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로서 부모로서 대입부터 대학생 시절 집에 홀로 내쳐두고 거두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대한 보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고 육아휴직을 하여야 하기에 우리 내외가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람의 여생.


그레이 노매드grey nomad가 되어 아무 때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허리도 건강치 못하고 고혈압, 당뇨 등으로 지친 노년 건강하게 살다가 죽고 싶은데....

그레이 노메드가 어디 당키나 한 소리인가? 허허롭기도 합니다만, 미련 없이 남아있는 조그만 거소도 처분하여 이제는 아내와 둘이서 따뜻한 남해쪽이나 제주도에 초가 한 칸 빌려서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 강원도 산촌으로의 귀촌이란 것도 저지르고 어언 십 오년에다 두 해가 더 지났는데, 따뜻하고 공기 좋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집을 빌려 건강한 말년 그리고 더 늙어 움직이지 못하기 전에 조촐한 국내 섬 여행이나 다니며 아내는 아내대로 다시 사군자를 치고 그림이나 그리며 나 또한 그림 그리며 기타와 키보드 연주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노래하고 베토벤, 브람스도 감상하며 목공예와 그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작업도 하며 살기를 소망해봅니다. 


오직 용기 있는 자에게만이 기회가 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