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오탁번시인의 "부재중 전화"

sosoart 2016. 8. 14. 12:59




부재중 전화

                             오탁번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열자

간밤에 온 부재중 전화가 뜬다

발신자는 권오문이다

오호嗚呼,

여든두 살 영철 형님이 그에 떠났구나!

 

원주중학교 입학금을 대준

영희 누나의 오빠,

영철 형님의 맏아들 오문이가

병원 영안실에서 건

부음訃音 전화가 분명하다!

깜짝 놀라 바로 전화할까 하다가

한순간, 멈칫한다

 

어쩐다? 어쩐다?

매일 붓방아만 찧다가

오늘 꼭 밀린 원고 끝내려고 했는데

이 일을 어쩐다?

10, 적막이 흘러간다

- 어쩌긴, , 어째? 이 새끼야!

원주중학교 1학년짜리가

다 늙은 나에게 소리친다

오문이에게 급히 전화한다

언제 서울 오세요?

아저씨랑 술 한잔 하고 싶어요

 

아무도 모르게 흘러간

적막의 10분 동안,

나는 정녕 무엇이었을까

사람 되라고 중학교 보내준

그 옛날의 형님 앞에서!

보신탕에도 못 낄

비루먹은 개새끼 아니었을까

 

 

요즈음 그야말로 살이 물러질 정도로 더운 날이 계속되어 밤에도 푹푹찌는 무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름밤입니다.

외손주가 있는 서울과 아들이 잠시 머물고 있는 춘천을 오가다가 어제는 누추하지만 편안한 나의 홍천 작업실 동락재同樂齋에 와서 며칠 방치하여 소나기에 대나무 자라듯 훌쩍 올라온 잡초를 뽑기도 하고 낫질을 하여 잔디도 조금 다듬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 폭염의 햇볕 아래에서 작업을 하다간 자칫 하늘에 먼저 올라갈 것 같아서 땡볕 아래에서의 작업은 피하고 오후 5시 이후에나 밭일을 합니다.

 

이재 끝물이 되어가는 토마토와 그리고 우리 외손주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는 마지막 수확을 걷우고 고추와 가지도 이달 말쯤이면 마지막 수확이 될 것 같습니다.

 

참외는 몇 해 길러봤지만 새 순을 잘 잘라주어야지만 큰 놈으로 제대로 따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과일 종류도 마찬가지이지만, 꽃이 피고 작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고 다 튼실히 자라는 것이 아니어서, 아깝지만 과감히 솎아주어야 잘 자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간들의 성장하는 모양새와도 같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노지에서 기르는 참외는 이제 8월 달이나 되어서 노릇노릇하고 과일이 커지면서 따먹을 수 있게 되는데, 참외란 놈은 과일이 그냥 땅에 닿아 있으면 모양새도 이지러지고 벌레가 과일을 파먹어서 과일의 밑이 땅에 직접 닿지 않도록 돌이나 화분 받침을 엎어 놓아 밑받침을 해줍니다.

어제도 벌레 먹은 잘 익은 참외 몇 개를 아깝지만 버리고 맛있게 익은 놈 대여섯 개를 따서 아작아작 씹히는 맛을 음미하며 잘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두 내외가 모두 허리 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깨도 회전근개파열이다 무엇이다 하여 온 몸이 성한 데가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마당의 텃밭은 그만 가꾸기로 했습니다. 아니 이번 김장배추 농사부터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15년간 비록 30여평 정도의 텃밭에서 고추, 오이, 상추, 쑥갓, 가지, 토마토와 배추, 무 등의 김장채소는 물론 참외, 수박 등의 여름 과일도 심어 먹어서, 시장에서 파는 채소나 과일 등과는 근본과 종이 다른 싱싱하고 저농약, 유기농의 채소를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쇠퇴해가는 몸을 돌보고 건강유지를 위해 자그만 농사는 여기서 중단하기로 중대 결심을 한 것입니다.

 

어제 밤은 시원하게 아주 잘 잤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잤는데, 요 근래에는 기상이변이랄까 온난화 현상으로 이곳도 한여름 밤에는 선풍기 없이 잠을 이루기가 어려운 날이 며칠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저런 것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오탁번시인의 시집 시집 보내다를 아무 곳이나 손에 집히는 대로 펼쳐보았더니 바로 이 부재중 전화의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평소에 친구와 얘기하듯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물처럼 무리 없이 흐르는 그의 시를 매우 좋아해서 산촌에서 울적한 날이든지 외로움을 느낄 때나 작업이 막힐 때에는 그의 시집을 펼쳐보며 잡념의 시간을 정리해보며 살아가는 날들을 곱씹어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물론 오탁번시인의 시만을 천착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장년과 노년에 든 여러 시인의 시를 오랫동안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탁번시인의 시는 우선 솔직해서 좋습니다.

저 역시 6.25 전쟁 발발시 외가인 청주로 피난 가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충청도는 제2의 고향으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년시절의 청풍명월 충청도에서 보냈던 많은 시골에서의 자연 속에서 놀던 경험과 감성이 그대로 몸에 핏줄기로 돌아 나이 먹어 은퇴를 하고 나서 이렇게 연고도 없는 강원도의 산촌으로 귀의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 이 모든 평온한 마음의 안식처는 항상 나를 그곳에 가있도록 서울에서 밀쳐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산촌에서 15년을 지내다 보니 시야가 탁 트이는 바닷가 한 마을로 옮겨가 소박한 초막에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태우고, 나무와 함께 공예의 작업에서는 도깨비 탈과 인테리어효과도 겸한 1미터 내외의 장승작업을 제주의 돌하르방과 콜라보레이션하여 독자의 작업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또한 전통공예이기도 한 소반의 작업에 천착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루지는 못할지언정 이 산촌을 떠나 바다가 있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 나머지 여생을 살고자 하는데,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신념으로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려다가 너무 곁가지가 길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러한 일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군요.

세상을 살면서 도움을 받았던지 아니면 마음으로 큰 위안과 영향을 받아 지금의 내가 있는데 아주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고마운 분이 누구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분이 학창시절의 훌륭하신 선생님이었든 직장생활의 고마운 선배님이었든 또는 생활주변의 고마운 어른이었든 아니면 집안의 커다란 어른이었던 그런 분은 누구나 마음에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오탁번시인의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도 그것과 유사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이 제 머리를 잡어 뜯듯이 자조自嘲 하는 보신탕에도 못 낄 비루먹은 개새끼 아니었을까”..............

이런 마음은 비록 시인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 살다보면 내 편리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잘못된 생각과 행동인줄 알면서 애써 스스로 자위하고 정당화하며 지나가는 일들이 결국은 나중에 깊은 후회를 하게 되며, 때로는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여늬 시인 같으면 자신의 이러한 면모를 시로 표현하며 남에게 굳이 알리려하지 않겠지만 오탁번시인의 시에는 그런 감춤이 없어서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이러한 시는 시작時作의 구성요소도 아니며 자신을 미화하고 마치 세상의 모든 감성을 가진 자처럼 온갖 미사여구와 말장난을 하는 몇 몇 인기시인(?)이라 하는 자들과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은 인간미와 심성 그리고 나 대학교수였었네....!”하는 시건방짐 뭐 이러한 것들과는 동떨어진 향촌의 마을에서 그저 이웃집 늙은 아저씨로 살아가는 그의 겸손함과 꾸미지 않은 그러한 점이 그의 시에서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도 죽기 전에 자신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雜筆의 흔적을 책으로 만들어 지인들과 자식에게 교감하며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만 오탁번시인처럼 솔직담백하며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도는 그런 살아있는 또 인생의 냄새가 묻어있는 그러한, 잡필이라도 끄적거릴 수 있을까....?하고 감히 소망을 해봅니다.

 

그의 이 시집에는 이러한 시도 있습니다.

혹자는 주책이다” “뭐 이런 시가 있노?”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로서 이러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솔직하고 용기 있는 일일까 싶습니다. 대학의 강단에서 강의를 하던 국내 유수의 대학의 교수로서 어떠한 비난과 비아냥이 난무할 지도 모르는 이러한 시를 발표하는 오탁번시인의 자신감이랄까 또 순수성이 좋을 뿐입니다.

 

그의 시 궁둥이를 한 편 더 소개합니다.

 

 

궁둥이

소나타 N20을 십 년 넘게 탔더니

궁뚱망뚱하니 말썽을 부린다

에잇! 너는 소나 타고 다녀라!

새 차 뽑을 궁리하면서

지나가는 차의 궁둥이를

눈흘레하듯 요리조리 살펴본다

BMW 745i 좋다마다

BENZ S-Class 좋다마다

암소만 한 SUV를 뽑아?

 

일기예보 볼 때도

레이더 영상은 안 보고

찐빵같이 부푼

기상캐스터의 궁둥이만 본다

에라, 나잇값이나 해라!

나한테 욕을 좀 하면서도

더 나이 먹어 눈에 백태 끼어

맛있는 팥소 딴딴한

예쁜 궁둥이도 못 보면

인생 종 친 것이라는 생각에

헐거워진 틀니 쩝쩝 다신다

 

30년 전 포니 뽑을 때

미끈한 앞대가리만 봤다

젊은 시절 연애할 때도

곱살한 얼굴만 봤다

하뿔싸!

중요한 건

앞이 아니고 뒤다

궁둥이다

 

 

25~30년 전 쯤에는 소나타를 타면 그래도 직장에선 중견간부로서 중산 상위층이라 하였고 장, 차관급 기관장도 그랜져가 배당이 되었는데, 지금은 나라가 잘 살게 되고, 개인소득이 높아지다보니 젊은이들도 그랜져, SUV고급차 아니면 외제차를 몰고 다닙니다.

그 시절엔 자가용차도 요즘처럼 흔치도 않았지만 소나타를 타는 사람들 보고 (cow)나 타라하고 하며 시샘하는 말들을 들었던 것이 기억 납니다.

 

또 요즈음 느끼는 것은 왜 공중파든 종편이든 왜 기상캐스터는 옷을 그렇게 꼭 끼는 것을 입고 생긴 형체가 적나나함을 지나쳐 선정적이기도 하게 옷을 입히는 것인지 모두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그녀들의 볼륨을 강조하기 위해 옷의 뒷자락을 크립같은 것으로 잡아맨 장면이 화면에 비치기도 하더군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며, 그렇다면 기상캐스터 당사자들은 그런 것을 감수하며 즐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만약에 내 딸 자식이 저렇게 화면에 나온다면?.......... 상상하기도 싫군요.

 

여권신장, 남녀동등을 부르짖고 남성들의 눈초리를 성추행과 연결시키면서도 왜 여권운동하는 여성들은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 아내도 민망하다고 합니다.

 

옛날 TV뉴스 인터뷰 화면이 생각납니다.

 

기자가 어느 한 중년남성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여성들의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짖궂은 표정으로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제발 기상캐스터들의 의상도 일상적인 것을 입히면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 땅의 여성들이 반대를 할까요?

옛날 김동완 기상해설가의 기상예보가 얼마나 구수하고 재미있었던가요? 벗고 몸매 자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매스컴에서도 선정적임을 조장하는 것이 뭇 남성들에게 성범죄자를 양산케 하는 주범이 아닌가? 묻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연애할 때도

곱살한 얼굴만 봤다

하뿔싸!

중요한 건

앞이 아니고 뒤다

궁둥이다

 

이런 표현을 시인이 시집을 통하여 만천하에 발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야하다거나 성 도착적이거나 음흉하다고 생각되 않는 것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시작詩作 상의 그런 표현이 아닌,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이기에 재미있고 구수하다고까지 생각된다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여하튼 앞으로 발간 될 오탁번시인의 새로운 시집에는 또 어떠한 인생살이의 모습이 투영되는지 기대가 됩니다.

 

아주 더운 날의 연속입니다.

이 땅의 모든 장, 노년층 여러분 폭염에 건강 잘 보살피시고, 절대 무리하지 말고 내 건강부터 잘 챙기십시오. 그것이 자녀들 도와주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한 여름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