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소니골통신 160: 비워내기 유감

sosoart 2017. 12. 10. 23:45

 

 

 

 

비워내기


              정진규

 

우리 집 김장날 내가 맡은 일은 항아리를 비워내는 일이었다
열 동이씩이나 물을 길었다 말끔히 가셔내었다 손이 시렸다
어디서나 내가 하는 일이란 비워내는 일이었다  채우는 일은
다른 분이 하셔도 좋았다   잘하는 것이라고 신께서 칭찬하셨다
요즘 생각으론 집이나 백 채쯤 비워내어 그 비인 집에 가장
추운 분들이 마음대로 들어가 사시게 했으면 좋겠다 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셨으면 좋겠다

 

 

정진규 시인

 

정진규

 


생몰    1939년 10월 19일 (경기 안성시) ~ 2017년 09월 28일 (향년 77세)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데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나팔서정'수상이상시문학상  외 
경력    1988 현대시학 주간

 

 

이제 어느덧 12월의 중순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곳 강원도의 산골에는 눈이 새벽부터 제법 내려서 모처럼 산과 나무에 한 자락씩 눈이 쌓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겨울의 모양새를 갖추며 추위도 한 몫을 더해 내일부터는 좀 더 추워진다 하는군요.


강원도의 겨울은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 제일 추운 곳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제일 긴 곳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정진규 시인처럼 김장철이 되면 김치를 담을 항아리를 깨끗이 씻고 비우며, 배추를 절이기 위해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아 굵은 소금을 양에 맞게 붓고 배추를 넣어 절이는 일은 제 몫이 됩니다.  ‘다라이’란 말은 일본말로 일제의 잔재이긴 합니다만 딱히 대체할 말이 없어 할 수 없이 ‘다라이’란 말을 썼습니다.

 

귀촌하여 산촌에서 살다보니, 더구나 추운 강원도의 산골에서 살다보니 김장을 담그면 꼭 삽으로 땅을 파서 김장독 2~3개를 묻는 일도 당연히 고물이 다 된 이 늙은이의 몫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들보고 김장하니 “네가 바쁜 와중이라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어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나이를 점 점 더 먹어가니 꾀도 나고, 허리 수술을 한 지가 오래됐지만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이라든지, 힘 든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마음을 먹고, 김장도 이제는 50포기 정도만 하고 김장독을 묻는 대신에 김치냉장고에 넣어서 익혀 먹는 걸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비워내는 일이 자기 몫이라 하였지만, 이 몸은 별로 비워낼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아주 온 마음이 가벼운 인생이 되어, 비워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요량이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일을 해야만 할 일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젊은 시절부터 짬짬이 그려왔던 그림은 다 젖혀놓고 다시금 처음부터 시작을 하기 위해 드로잉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드로잉은 일찍이 중, 고교때 벌써 60년 전이 다 되었지만 미술시간을 통해서 배우고,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마추어 화가로서 수채화와 유화를 그려가면서 붓을 놓지는 않았었지만, 이제 나이 들어 새롭고 겸손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취지에서 드로잉의 작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미술작업은 목공예의 작업과 달라서 특별한 공간과 작업장을 필요로 하는 목공용 중대형 전동기계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저 스케치북과 간단한 그림도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므로, 시공時空의 제한을 받지 않고 할 수 있어, 아직도 서울에서의 외손주의 육아를 졸업하지 못한 지금은 여러모로 제한적이지 않은 드로잉의 작업에 매주나마 일정시간을 몰입할 수 있으니 정신적인 젊음과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10여년 이상을 정진해 온 목공예의 작품 작업을 하지 못하는 공허함을 드로잉으로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는데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귀촌하면서 당초의 계획은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및 즐겨듣던 고전음악 및 국악의 판소리, 창 등의 감상, 그리고 목공예의 작품 작업에 천착하기 그리고 맨 나중의 계획이 여행기 및 산문을 쓰며 그림이 있는 자전적 기록물의 출판하기였는데,

 

지금은 마음을 비우기는커녕 기왕에 소장하고 있는 개인 도서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지식과 정을 공유하고 나누는 일, 마지막으로 작업장 내에 자그마한 비영리카페를 운영하여 바리스타로서 핸드드립커피 한 잔을 나누며 여러 귀촌인과 여행자들과의 소통 및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노후를 마무리 하는 과제를 더 늘리고 있습니다.

 

과연 다 할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으나 뜻이 통하면 길은 열린다 하니 한 번 해 볼 노릇입니다.

 

시인은 집을 한 백 채쯤 마련하여 추위와 외로운 소외감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싶다는 거룩한 마음을 표현 하였지만, 이 몸도 퇴직 전까지는 하늘과 주변의 도움으로 남만큼 편하게 살아왔으니, 비록 고액의 연금을 받는 공무원 출신은 아니지만 어디 이타利他적 행위가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 마음도 비우고 돈도 비워진 이 몸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훌훌 벗어진 이 한 몸 진정 바른 일이고 바른 주변 사람이나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지금도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마음이 준비 되어있고, 불의를 저지른 자들과 부정한 자들,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위한다며 온갖 현란한 말로 혀를 놀리는 자들, 정치 한답시며 국민을 우습게 보며 얼마 못 갈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안보이게 하라고 정의가 부르면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비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이 세상에서 십년무상의 권력을 쥔 모든 자들이 정말 마음을 비우고 모든 국민을 위하며 멸사봉공滅私奉公하기를 염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