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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stl- 소장품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sosoart 2019. 4. 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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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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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개최

◇ 고희동, 김환기, 박래현, 박서보, 이중섭 등 근대 거장 중심 특별전
  - 유화, 한국화, 사진, 조각, 공예 등 110여 명 작가의 150여 점 작품
◇ 1900~1960년대 한국근대미술사의 흐름 조망
  - 7월 11일(수)부터 내년 5월 12일(일)까지 과천관 제5,6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소장품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전을 7월 11일(수)부터 2019년 5월 12일(일)까지 과천관 제 5, 6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근대를 수놓은 그림》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통해 1900년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 근대미술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전시로서 고희동, 권진규, 김환기, 박래현, 박서보, 이인성, 이중섭 등 미술 교과서에서 만나는 근대 거장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시기별 주요 특징에 따라 제1부 ‘근대미술의 발아 (1900~1920년대)’, 제2부 ‘새로운 표현의 모색 (1930~1940년대)’, 제3부 ‘의식의 표출 (1950~1960년대)’로 구성된다. 

제1부 ‘근대미술의 발아 (1900~1920년대)’는 외국에서 새로운 미술양식이 유입되고 미술가들이 예술 의지를 펼치기 위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미술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시기를 조명함으로써 변화된 전통 회화 양식, 사진의 도입과 그 영향, 그리고 한국근대미술 초기 유화의 전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 초 근대기 우리나라의 사회상, 문화상 등을 엿볼 수 있는 황철의 사진첩과 한국에 최초로 서양화를 도입한 고희동의 <자화상>(1915),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 주경의 <파란>(1923) 등이 소개된다. 

제2부 ‘새로운 표현의 모색 (1930~1940년대)’에서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미술가들이 누드, 정물, 풍경 등의 다양한 주제를 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등 여러 표현법으로 그려 내고자 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한국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구본웅의 누드작품 <여인>(1930년대),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이인성의 <계산동 성당>(1930년대)등이 소개된다.

제3부 ‘의식의 표출 (1950~1960년대)’에서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회복하고 예술로 희망을 전파하고자 했던 노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추구하였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경향, 추상미술의 전개, 해외로 나간 미술가들의 작품 등 작가들의 의식이 표출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가 파리에서 귀국하여 그린 <산월>(1960), 한국전쟁 당시 박래현이 남편 김기창과 군산에서 피난생활 중 그린 <노점>(1956) 등이 소개된다. 

10개월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유화, 한국화, 사진, 조각, 공예 등 110여 명의 작가가 남긴 한국 근대미술작품 150여 점이 출품되며,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전(‘18.5.3~10.14),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 전환기 궁중회화》전(‘18.11.15~‘19.2.6)과 같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근대미술을 주제로 개최하는 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한국 근대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하며 그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역사의 현장을 이끈 선구자이자 목격자로서 시대의 변화상을 담고자 했던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상흔과 근대의 삶을 체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전시개요
○ 전시제목: 국문 《소장품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영문 1900s~1960s Modern Art from the MMCA Collection 
○ 전시기간: 2018. 7. 11.(수) ~ 2019. 5. 12.(일)
○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6전시실 (3층)
○ 작    가: 고희동, 권진규, 김종영, 김환기, 류경채, 박래현, 박서보, 변관식, 오지호, 유영국, 이인성, 이도영, 이중섭, 임응식, 정종여, 주경, 한묵 등 110여명
○ 관 람 료: 무료
○ 주    최: 국립현대미술관 

■ 관련 프로그램 
○정기해설 
  화-일 12pm 7. 17.(화)부터 진행
  제5 전시실 앞에서 시작


□ 제1부 근대미술의 발아 (1900~1920년대)

1897년 고종이 조선을 자주독립 국가로 규정하면서 대한제국이라 선포한 이후 고종은 국가의 근대화를 위하여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고종은 사진에 관심이 많아 사진가들의 활동을 장려하였다. 또한 근대적 공예 기술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공업전습소 설립은 전통 공예 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공예 양식을 소개하였고, 192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공예가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09년 경술국치로 인해 고종과 대한제국의 이상과 희망은 사라지게 되었고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예술가들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망국의 슬픔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은 1918년에는 서화협회와 같은 미술 단체를 통해 동서 미술의 연구와 후진 양성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미술가들의 사회적 의식의 발현은 1919년 3.1 운동 직후에 대거 이루어졌으며 이는 1945년까지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활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1922년에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창설한 조선미술전람회는 식민지 조선에서 개최된 최대 규모의 공모전인데 당시 전시 공간과 기회가 부족했던 미술가들에게는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이도영은 조석진과 안중식의 제자로 1908년에 미술 교과서 『도화임본』을 발행하였으며, 1909년에는 『대한민보』의 만화란에 그림을 그리는 등 근대 화단에 커다란 성과들을 남겼다. <청죽도, 기명절지도>는 대나무 사이로 한 쌍의 참새가 노니는 모습을 묘사한 <청죽도>와 화병, 국화, 주전자 등을 그린 <기명절지도>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서양화 기법을 사용하고 파, 무 등의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특징을 지닌다. 

주경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이자 근대미술의 개척자로 일컬어진다. 그의 초기 추상 작품들은 당시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매우 실험적이고 독특한 것이었다. <파란>은 색, 선, 면과 같은 기하학적 요소만을 배열하여 구성한 추상회화이다. 그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외국의 미술 잡지를 접하면서 외국에서 유행하던 미술 경향을 접할 수 있었으며, 이 작품은 속도감을 강조하기 위해 연속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미래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 제2부 새로운 표현의 모색 (1930~1940년대)

1920년대 화가들이 후진을 양성함에 따라 점차 미술계의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특히 근대화의 속도가 다른 지역보다 앞섰던 평양과 대구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 화단이 등장하게 되었다. 1920년대 초반까지 새로운 미술 기법의 수용과 주제의 학습에 머물렀던 한국 근대미술의 수준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성적인 양식이나 독창적인 예술 정신을 표출하는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미술의 영향을 받은 미술가들이 표현주의, 추상미술, 전위미술 등을 시도하면서 1930년대에는 미술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루려는 경향이 확대되었다. 이 시기의 미술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국내에서 독학한 미술가들도 등장하여 화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말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해 군국주의에 동조하여 친일 미술의 경향을 보이는 미술가들이 나타났으며 이와는 반대로 활동을 접고 은거의 길을 택한 미술가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45년 광복이 되어 나라를 되찾으면서 미술가들은 새로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전시를 비롯한 미술계 활동, 미술교육, 출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이인성은 서동진이 경영하던 대구미술사에서 수채화를 배웠고, 1931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6회 특선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계산동 성당>은 한국의 나지막한 기와지붕 너머로 십자가가 솟아 있는 대구의 계산동 성당을 그린 작품이다. 서양식 건축물과 한국의 전통 가옥이 공존하는 이 작품에는 당시 새롭게 근대를 체험했던 화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또한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따라 표현된 다채로운 색상은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서동진은 일본 유학 후 고향인 대구에서 대구미술사를 설립하여 서양화 기법과 재료를 보급하고 후학들을 지도하는 등 대구 미술의 발전에 힘썼다. 그의 몇 점 안 되는 유화 작품 중 하나인 <팔레트 속의 자화상>은 자신이 사용하던 팔레트 덮개 안쪽에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화가의 중요한 도구에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서양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구본웅은 1920년대 초반 이종우에게 유화를 배웠고 김복진에게 조각을 배웠다. 구본웅은 1930년대의 한국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여인>은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누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한국 근대기의 누드화 중에서도 강렬한 표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가슴을 한껏 드러낸 자세는 매우 과감하며,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붓질은 검은색, 빨간색, 녹색, 흰색을 주조로 하여 강한 인상을 준다. 
구본웅, 여인, 캔버스에 유채, 47x35cm, 1930



□ 제3부 의식의 표출 (1950~1960년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광복 직후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려던 모든 이들의 꿈을 짓밟은 비극적인 참화였다. 그러나 미술가들은 피난 생활 중에서도 작업 활동을 유지하고 크고 작은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였다. 1949년에 처음 개최되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1953년에 재개됨으로써 미술계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국전의 분위기에 반기를 든 진취적인 작가들은 모던아트협회, 현대미술가협회, 창작미술가협회, 신조형파, 백양회 등 재야적인 성격의 협회를 창설하고 전시를 개최하였다. 미국과 유럽을 통해 유입된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화가들은 구상 경향의 작품에서 점차 추상으로 작품의 경향을 전환하였다.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화가들의 국제적인 경험이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1950년대 말부터 프랑스, 미국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기 시작하여 1960년대 초・중반에 귀국하였으며 미술계에 서구 현대미술의 최신 경향을 유입하였다. 이때부터 대규모 국제 전시에 참가하는 횟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해외 미술과의 교류 기회가 많아지고 그 범위도 확대되면서 화가들에게 새로운 창작 동인을 제공하였다.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1930년대 동경에서 유학하면서 입체주의, 기하 추상 등 여러 전위적인 경향을 실험하였고, 광복 이후 신사실파를 조직하였다. 민속적 기물과 자연 풍경을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1956~1959년 파리에 머물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파리에서 귀국하여 그린 <산월>은 산을 암시하는 검은 선들이 겹쳐 있고, 푸른색의 둥근 달이 배치되어 자연의 형태를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이중섭은 제주도, 부산 등을 전전하며 고된 생활을 하였다. 1951년 봄에는 제주도에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로 모자이크 벽화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1951년 12월에 부산으로 이동한 후 이듬해에는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낸 채 홀로 남게 된다. 이 무렵 제작된 <애들과 물고기와 게>는 자신이 처한 불우한 상황과 상반되는 이상향의 모티브를 보여준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순수함을 밝은 웃음, 즐거운 율동으로 표현하였다.
김환기, 산월, 캔버스에 유채, 97x162cm, 1960

  

류경채는 ‘자연과의 교감’을 지속적인 주제로 다루면서 자연을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감각적인 색채와 추상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해 나갔다. 1954년 국전에 출품된 <산길>은 자연 속에서 대담하게 수직으로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를 반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쟁기에 황폐해진 자연의 회복을 꿈꾸면서 전쟁기 이후 혼란기에 관람객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화면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다.

<노점>은 박래현이 남편인 김기창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친정인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전쟁의 여파로 힘들고 고된 생활을 하면서 시장으로 나오게 된 여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골목에 늘어선 노점의 여인들의 모습은 건물과 함께 수직적으로 늘어서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러한 수직성은 작품의 느낌을 더욱 동적으로 보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