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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천병근 32주기 유작전

sosoart 2019. 6. 6. 21:27


http://www.daljin.com/display/D060092

천병근 32주기 유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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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적 상징주의 화가’ 천병근 유작전 열린다 
잊힌 작가 , 32 년만의 재조명 





*천병근의 생애와 예술 
‘신비적 상징주의 화가’ 천병근 (千昞槿 1928-1987)의 대규모 유작전이 열린다 (조선일보미술관 6월 5일-17 일). 작가 사후 32 년만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유화 50 여점 ,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 60 여 점이 소개된다 .2 년 전에 결성된 천병근 유작전추진위원회 (위원장 천근우 )는 유족 소장 작품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대작 <자애 (慈愛 )>와 국내외 미술관 소장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 또한 전시에 곁들여 화가 천병근의 미술사적 위상을 재평가하는 화집 발간도 진행하고 있다 .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 뮤지엄산 관장 ), 서성록 (안동대 교수 ) 씨가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논고를 집필했으며 , 김복기 (경기대 교수 ) 씨가 생전에 남긴 풍부한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그 생애를 미술사적으로 복원하는 책임 편집을 맡았다 . 

천병근 화백은 1950 년대부터 구상과 추상이 혼융된 독자의 초현실주의 작품을 발표했던 화가다 . 또한 초상화 , 풍경화 , 정물화 , 판화 , 성화 (聖畵 ) 등 다양한 작품 편력을 보여주었다 . 그 중에서 천병근 예술의 평가 대상은 단연 추상 계열의 작품이다 . 특히 구상미술이 대세씀던 국전 (國展 )의 아성에 대항했던 재야 (在野 )미술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조선일보사 주최 )의 초대 , 해방 이후 첫 한국미술 해외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한국현대작가전>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 선정은 실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대목이다 . 특히 후자의 전시에 뽑힌 작가들이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장욱진 등 뒷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 대거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 그동안 잊혔던 천병근의 작가적 위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중요한 잣대로 떠오른다 . 






1959년 천병근회화전이 열린 서울 동화화랑에서 



일찍이 1954 년 천병근의 첫 개인전 서문에서 수화 김환기가 밝혔듯이 , “그의 예술은 향토적인 냄새가 강렬하다 .”(김환기 자신은 이 향토적인 것을 세계화의 예술 지표로 삼았다 .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 바로 이 향토적 민족적 주제를 종교적 서사와 융합하는 것이 천병근 예술의 골간이다 .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생을 신앙인으로 살았다 .(부친은 일제에 저항해 수차례 옥고를 치른 천세광 목사다 .) 이러한 삶의 배경 때문에 , 천병근은 수많은 성서적 주제의 작품을 남겼다 . 주목할 것은 그 성서적 주제를 한국적으로 토착화함으로써 종교화의 한국화를 구현해 냈다는 사실이다 . 천병근은 한국의 종교미술에도 한 획을 그었다 . 





 
<무제> 캔버스에 유채 106×106cm 1959




<불 (佛)> 캔버스에 유채 53×45m 1980


또한 <탑> <심청> <고전> <여인과 호랑이> <우화> <불 (佛)> <항아리> 등 민속적인 내용도 천병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 모두가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새로운 해석에 집중되어 있다 . 이 작품들에는 현실과 상상 , 신비한 종교적 감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 이 대목을 이경성은 ‘씁혼의 언어’라 평가한 바 있다 . 올해 천병근 작품 세계를 집필한 오광수는 “명랑한 색조의 화면에는 초승달 , 별, 눈, 새, 물고기 같은 이미지의 파편들이 부유한다 . 상상의 깊이에서 건져 올린 ‘조형의 시어 (詩語 )’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 

천병근의 화단 활동은 비교적 조용했다 . 여러 이유가 있었다 . 그는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했기에 다른 동년배들과는 학연이 이어지지 않았고 , 무엇보다 작품 외적인 화단 정치와 거리를 둔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씀다 . 이것이 결국 그가 생전이나 사후에 과소평가된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 특히 1970 년대에 제주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중앙화단과 멀어졌다 . 그러다 1979 년에 교직생활을 청산하고 파리에 일시 체류하는 등 전업화가로 새로운 길을 걸었다 . 마침내 1980 년대 들어서 파리와 L.A 에서 개인전이 잇달아 열리고 현지의 주목을 받는 등 창작의 피치를 올렸지만 , 1987 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자화상> 종이에 연필 1940 년대 후반




<자애 (慈愛 )> 캔버스에 유채 130×193.5cm 1956 

*평론가의 말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 뮤지엄산 관장 ) 천병근의 작품은 이미지의 해체과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부단한 추상 세계로의 모색이 있는가 하면 , 추상의 순수성에 갇히지 않고 상징적 설화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확보해 나가려는 의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 같은 천병근의 세계는 초현실주의로 명명되는가 하면 독특한 자동기술에 연유한 문서적 (文書的 ) 초현실 (방근택 )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 이경성의 언급은 그가 초현실주의 계통에 속하면서도 그 독자의 사랑의 언어화를 통한 종교적 감화의 결정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는 초현실주의 계통의 화가인 천병근… 늘 자기 작품을 통해 꿈과 현실을 하나의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신비로운 사랑을 우화적인 수법으로 조형화시킴으로써 이른바 씁혼의 언어에 도달하고 있다 .” 

서성록 (미술평론가 . 안동대 교수 ) 천병근의 회화는 그만의 세계를 구현한 독특한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닿으려면 씁혼의 언어가 필수적인데 독실한 신앙인이자 예술가로서 그는 상상력을 씁혼을 체화하는 주된 수단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 상상력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현실은 가시성을 탈피하기 시작하고 신비롭고 아득한 세계의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 “초현실주의적인 그의 비유화법으로 천화백은 현실적 의미가 가득 찬 상상적 요소로 변형시키고 , 또한 시적이고 신비적이며 창조적인 생명력이 가득 찬 우화의 세계로 현실을 변형시키고 있다 .”
 




*천병근 (1928-1987) 

1928 년 경북 군위에서 천세광 목사의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 1940 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교 릭코 (力行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 1947 년 일본에서 귀국해 목포공립중을 시작으로 목포고 , 경복고 , 배재중 , 서울공고 , 제주제일고 등에서 미술교사를 역임했다 . 1954 년 목포 YMCA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서울의 동화화랑 , 프랑스문화원 , 신세계미술관 , 파리 메디안 엘코갤러리 , L.A 의 갤러리스코프 , 클리블랜드주립대학 등에서 총 9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조선일보 주최 ), 한국현대미술전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 국제자유미술초대전에 참가했으며 , 신기회 한국미술교육협회 성미회 (聖美會 ) 등의 미술단체에서 활동했다 . 1968 년 한국판화협회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 고려대학교박물관 , 연세대학교 , 씁은미술관 , 남농기념관 , 소암기념관 , 청와대 , 미국대사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 

 *천병근 유작전추진위원회는 전시 개막일인 6월 5일 오후 3시부터 <천병근의 생애와 예술>이란 주제로 서성록 , 이애선 씨의 강연을 마련했다 . 이번 유작전은 6월 22 일부터 8월 11 일까지 제주도 소암기념관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