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32: 인터넷 카페의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sosoart 2007. 3. 26. 07:27
 

 

동락재에 이사온 다음 해까지는 울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울에서 온 사람들의 전원

주택은 모두 오자마자 담을 먼저 둘러놓기 때문에 자기들과의 단절을 선언한다고 생각들을 하는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도 담을 치지 않고 얕은 나즈막한 나무 울타리를 쳤습니다.

오른 쪽 갤로퍼는 사고가 나서 폐차 하기 이전의 사진입니다.  

 

 

 

동락재의 창밖으로 보이는 속초저수지의 해가 산봉우리 뒤로 떨어져 숨는 모습입니다.

누구 말처럼 황혼에 지는 해가 더 붉게 하늘을 태운다고 했던가요?  말은 맞는 말이지요?  

 

 

 

 

동락재의 커다란 거실 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입니다.

저의 아내는 비가 오는 이런 날을 매우 좋아 한답니다.  모르지요. 처녀 적에 좋아하던 사람과의 추억

이 떠올라서 일까요........?  그런 낭만의 추억까지 남편이라고  막을 수는 없는거겠지요.

 

 

 

 

<동락재 통신-32>     2003. 7. 23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 정기모임 훌륭하게 잘 치루시고 마무리를 하신 모든 회원님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참석을 하고 싶었지만, 지독한 감기에 지금도 골골대고 있습니다.


만남의 인연이란 그렇게 시작이 되어 계속 소중한 인연으로 잘 가꾸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 역시 형제와 친인척이 많지 않아, 사람을 사귀고 그 만남의 인연을 아름답게,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저 마음먹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만들어 지는 세상이 아니기에 삶에의 기대와 희망이 일순 허물어지는 그런 쓰라림도 맛볼 때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설프게 손을 잡는 친구가 있다

어설프게 인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어설프게 웃다마는 친구가 있다

............... 

............... 

바람이 부는 서울

햇빛 아래, 나의 길 종착의 도시

다리목의 거리

두루 소요 하며

남은 여정, 맑은 하늘 걷우는 날까지

되도록이면 피해서 살아 돌음에

어차피 그저 그런거! 하지만

오다 가다 때로 만나는 골목길

이건 실로 어설픈 일이다


보게나! 그냥 지가가세

먼 길이로세

많은 사람, 바쁜 길이로세

어차피 헤어지는 장터


................. 

................. 


조병화님의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다리목에서>의 일부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방법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그를 위해 해 줄 것이 없어 안타까운 그런 만남도 있고, 그저 손을 잡는 둥 만 둥 손끝만 살짝 잡고 악수하는 손끝을 한, 두 번 흔들다가 헤어지는 만남, 무언가 나에게 이득이 있을 것 같아 가식의 웃음을 웃는 만남도 있을 테고,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고 싶고, 내가 크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고 싶어 하는 그러한 만남도 있을 수 있겠지요.


管鮑之交와 같은 그러한 만남을 이루어 가기는 힘들지라도, 내 마음을 아무런  댓가 없이 활짝 펴서 보여주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같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이 나에게는 몇이나 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 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를 접어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라고는 기억이 되지 않지만, 나이 30을 넘어서부터는 사람의 만남은 곧 헤어짐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고, 헤어질 때에는 나름대로  의 이별의 예절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 예절은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을 해왔고, 나름대로는 그 예절을 지켜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수를 할 때에, 어떤 이는 자기의 손을 주기가 그리도 아까운지, 아니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과의 악수가 가문의 수치처럼 영 내키지  않아서인지? 또는 거만해서 그런 건지 손끝 한 마디만 살짝 주었다 마는 사람들이 있지요?

삶의 선배들이 얘기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서 하나의 불문율은 그런 악수를 하는 자 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오히려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신뢰가 가고 왠지 믿어도 될 사람 같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는 악수 할 때에 손끝만 살짝 잡는 사람과는 손을 잡다가도 그냥 놔버립니다.

되도록이면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시건방지고 오만하며 불쾌한 악수의 태도입니까?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 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 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 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 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의 全文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배워야 할 것은, 준비해야 할 것은   "내가 마지막 할 말이 무엇이며, 마지막 두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 가를 알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마지막 남길 것은? 그리고 더하여 남길 말은? 그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70~90 평생의 짧은 생을 살아가나 봅니다.


지금 동락재 마당 앞의 2차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지날 때마다 꼬리에 물보라 같은 물살을 튀기며, 비오는 날의 우울한 상념을 깨치며, 요란한 흔적들과 소리들을 뿌리며 지나갑니다.


오랜만에 장마 같은 장마비를 보고 있습니다. 지붕을 타고 거실 창 앞 테라스로  내려 떨어지는 빗소리가 폭포수처럼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모처럼 맞은 방학기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벗 삼아 저 쪽에 소처럼 누워있는 저수지의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와  그 뒷편으로 구름이 산자락에 운무를 휘감으며 무심히 돌아가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실의 넓은 창 앞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산자락의 소나무를 휘감으며  안개구름이 서서히 그의 운무의 화필을 놀려가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의 이 盆地와도 같이 아늑하게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간마을, 조용한 동락재 주변에 놓여있는 커다란 자연의 정원들이 그 외로움과 슬퍼서 아름다운 듯한 그 자태를 부끄러이 들어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입니다.


방학하는 날, 서울에서 동락재로 돌아오면서 저수지를 막 올라서려는 도로를  가로질러 노란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중닭 크기의 새를 보았습니다.

 

아마 저는 뻐꾸기가 아닐까?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조류 원색도감을 찾아  보았는데 거기에는 없더군요.

정부기관 문교부 발행의 도감도 충분한 자료가 수록되지 않아 정확하지가 않은가 봅니다. 새도 암수에 따라 모양도 다를 수 있고, 색깔도 아주 달라서 우리가  구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을 듯 합니다.


가끔은 이름 모를 새, 아주 고운 파란 하늘색의 날개를 볼 때도 있고, 빨간 목과  노란 깃털의 화려한 자태를 가진 새를 볼 때도 적지 않습니다. 봄에는 앞산에서  딱다구리 종류의 새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메아리를 타고 긴 여운을 남기며 요란스럽게 존재를 알리기도 합니다.


가능하다면 새들과 온갖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새소리는  녹음을 하여 두고 싶은데, 생각만 앞서지 순발력이 떨어져 그냥 희망으로만 끝나는 것 같습니다.


방학 날에는 아내에게 선물로 주려고, 장식용 솟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제가 동락재에 기거하면서, 앞산에 간벌하고 버린 나무들을 주어와서 솟대를   만들어 동락재 마당의 좌우에 몇 개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 동락재를 三災로부터 막아달라는 염원을 함께 심었지요.


그랬더니, 작년엔가? 저희 동락재로부터 2Km정도 떨어진 곳에 어떤 친구가  "솟대쉼터"라 이름하고 제가 만든 솟대를 모방하여 몇 군데 만들어 놓고 음식점영업을 하더군요. (이 집은 반드시 동락재 앞길을 경유하여야만 갈 수 있습니다만.....)

 

하긴 특허를 낸 것도 아니고 의장등록을 한 것도 아니니까 뭐라 얘기를 하겠습니까마는 이 동락재의 Trade Mark?가 도용당한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요즈음 며칠 장마비가 오니, 마당에 심어놓은 고추며, 호박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침, 저녁으로 농사?를 지은 고추와 상추, 호박, 도마도를  따서 먹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비료와 좋은 토양에서 기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무공해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이 즐거움과 내가 기른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 홍천에는 옥수수가 유명합니다.

하긴 매스컴에 많이 올랐던 경북의 김 아무개 교수도 있지만, 홍천 옥수수시험장長이 제 고교시절 같은 반 동창생입니다만, 이 친구가 맛있고 수확 많은 우리  토종 옥수수의 개량종을 육종, 생산하는 연구에 전력을 하고 있는데, 이 지방의  모든 옥수수가 그 친구의 연구결과로 태어난 옥수수라 하니 이 또한 제 일처럼  뿌듯하더군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이 친구의 흠은 그 맛있는 옥수수를 아직도 저에게는 맛보게 하지 않았다는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합니다.  어험~  흠, 흠....


저희는 옥수수를 심지 않아 주변에 옥수수밭 천지이지만, 옥수수를 사다가 먹는데, 생산지라 해도 싸게 팔지를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 옥수수를 농민들이 내다놓고 팔고 있지만, 도시 사람들이  이런 곳으로 여행을 와서, 그곳 특산물을 사가려고 하면, 시장에서 파는 값보다  는 조금 싸고 싱싱한 것으로 판매를 해야 하는데, 눈앞의 몇 푼 이득만 생각하고 비싸고, 때로는 불량품을 몰래 섞어서 팔고 있으니, 누가 다음에 다시 사려할까? 걱정이 됩니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인사들이 있으니.......


오늘 같은 날은 소파에 깊숙이 앉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날입니다.

저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를 제일 즐겨 듣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몇 번을 반복하여 듣고 있다가, 경음악 Frank Poucell 악단의  "Merci Cherie"와 채은옥의 "빗물"도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곁들여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 외진 산촌의 하루도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은 지름이 약 50 Cm되는 목재접시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려 계획을  했습니다만, 비도 와서 눅눅하고 마음도 조금은 쳐지는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한가한 마음으로 오늘은 시집이나 읽으려 합니다.

찌든 세상 속에서 순수한 詩語를 통해 마음을 순화시키는 것도 이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필수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西翁스님의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한자를 잘 모르는 젊은 언니, 오빠들을 위해 음을 달았습니다)

"물은  흘러흘러 끝내는 그 끝에 이르고, 가만히 앉아서 구름 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는 생명이 있다. 그 진리를 체득한 자는 모든 것에 유유자적할 수 있다.”


이 비오는 날 왜 이런 구절이 떠오르는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형기 시인의 <洛花>란 시로 오늘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댓글>

 

장미: 동락재님 내년엔 토종 옥수수씨앗 좀 구해서 심으시고 저도 조금 나누어주세요 저희 딸년이 옥수수 엄청 좋아하는데 왜 그건 안심었냐 하네요 200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