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 작품- 벽걸이: 민화 (은행나무에 양각, 채색)
<동락재 통신-30> 2003. 7. 15
오늘은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또 "나이 먹은 사람이 그렇지!"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지각이나 조퇴는 물론 결석은 더군다나 하지 않으려 했는데 감기가 심한 바람에 결석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쿠렁쿠렁한지......
어제 병원엘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는데, 전혀 차도가 없어서 오늘은 다른 약국에 가서 약을 사왔습니다.
밤에는 기침이 더 심하고 기침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따끔하고 아플 정도 로 발작성인 기침을 했습니다.
백수건달이 건강이나마 좋아야 하는데, 몸이 좀 아프면 이제는 걱정이 앞섭니다. 건강이 그저 제일이지요.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으니 좋긴 좋더군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얼 해야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저 시간 속에서 넋을 놓고 있는 것도 모처럼 만에 느껴보는 자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성격이 워낙 무얼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라,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죄악! 바로 그 자체로 여겼기 때문에, 그냥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목공예와 고전 문양, 그리고 그림에 관한 인터넷 싸이트에 들어가서 많은 것을 상기시키고, 또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또 보고 느낄 기회를 가졌습니다.
모방 또한 창조의 어머니이고 연습이 大家를 만드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대가라 한들 남의 작품에서 얻어지는 영감과 느낌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여 독특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여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평범한 속에서 평범하지 않고 예리한 눈과 관찰력, 순간적인 예지의 힘으로 또 다른 아름다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기쁨 또한 인생에서 아주 커다란 기쁨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 수록 시간은 쏜 살처럼 지나쳐 가고, 할 일은 태산처럼 점점 많아 지는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나가는 시간만 탓할 수는 없고, 마음만 그져 바빠집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무얼 해 놓은 것이 있었는가?
또 지금은 무얼 하려고 여기에 서있는가? 를 생각하면 참으로 허허로울 뿐이지요.
여름 하늘 뭉개구름 뭉글뭉글 일다가 바람에 실려 방금 전 자신이 만들었던 형태와 흔적도 없이, 이별의 예절도 없이 사라지는 많은 인생의 궤적들이 그저 무심하게 느껴질 뿐이지요.
한 10여 년 전에, 저에게도 세계적인 Marquis Who's Who 라는 인명사전 출판사에서 저의 이름을 수록하자는 프로포즈(?)가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슨 Information Specialist (Atomic Energy & Nuclear Sci./Nuclear Medicine 분야와 Medical Information 분야의 Specialist)라는 내용을 주로 자기들이 작성한 본인의 약력을 수정, 보완하고 인명사전의 대금을 보내주면 수록하여 주겠다는 것
이었지요.
그런데,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그저 돈벌이의 상업적인 수단에 의해서 제안을 하는 것이지, 저라는 인간이 무어 그리 잘 나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또 제자신이 너무 내세울 것 없기에 거절,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하긴 아무리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쌓았어도 그런 제의도 못 받아본 과학자나 학자들도 많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전에 수록이 되려고 로비까지 하는 쓰레기들도 많지만 말입니다.
세상이란 것이 매스컴을 잘 활용하는 기술을 가진 자들과 방송사나 신문사의 관계자나 기자들과의 서로의 이익이 부합되면 되는 것이지, 언론의 정도를 걷는 참언론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세상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요. 모르는 것이 약이고, 속 편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Who's Who에 인명이 수록되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호들갑을 떨며, 매스컴에서 떠들고 하지만,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그저 떫은 감을 먹은 미소를 짓게 마련이지요.
왜 제가 갑자기 이런 넋 나간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그렇게라도 했으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인명사전에 이름 석자라도 남지 않았겠나? 하는 자조와 조소가 가득 찬 스스로에게로 향한 비아냥을 하는 신세가 되었나?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각설하고,
아직도 저에게는 희망과 할 일이 많습니다.
아니 딱 두 가지.
한 가지는 제가 그려왔던 그림(유화가 되었던 수채화가 되었던, 때로는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아무튼 그림은 그림인)을 저만이 할 수 있는 표현방법으로 제 자신만의 그림의 영역을 구축하는 일이며,
두 번째는 목공예와 그림을 접합/융화 -단순한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닌 서로 녹여(Melting)- 시켜 하나가 되는 그런 나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미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 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저를 아는 같은 연배의 지인이나 선배들께서는 아주 가능한 일이라고 저를 격려, 분발토록 하여 줍니다.
더구나 제일 저에게 힘이 되는 것은 제 아내입니다.
아내 역시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동양화(사군자, 화조도, 산수화와 서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가 어언 20년이 지났으니, 훌륭한 화가는 아닐지라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몸으로 체험하고 그 생활에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 대학 졸업만 시키면 시골의 한 산자락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기로 그렇게 의기투합한 지가 실로 여러해 전 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만의 소일거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내가 재미를 가지고 몰두할 일이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머지않아 한, 두 해가 지나면 이제 아내와 저는 본격적인 전원생활과 더불어 우리들만의 예술세계를 꾸려나갈 진정한 발자욱을 내딛게 되는 거지요. 물론 자급자족 (즉 두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 수단)의 방법은 병행 해야겠지요.
사람 내음과 예술이 어울어진 전원생활! 그야말로 멋지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사는 사람이 좋고, 거기에 오는 사람이 좋고, 주변의 풍광이 선하고 아름답고, 거기에서 나오는 먹을거리가 좋고, 생활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예술혼을 표현하는 그 작품들이 좋으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야외 전시회도 할 계획도 있습니다. (꿈은 참 야무지다...... )
오로지 저는 그 목표를 향해, 오늘의 잡다한 방해거리들과 말없고 끊임없는 氣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 떠나기 전, 꼭 이룩해야 할 그 일.
나는 하고 만다는 그런 신념으로 오늘도 지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나는 살고, 그 날을 위하여 오늘도 끊임없이 준비하고, 그 실현을 위해 오늘도 계획하고..........
그 자체와 과정이 나의 오늘의 의무이며 희망이며 내 스스로의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가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30여년 외길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금도 나의 일 한 흔적이 기초가 되어 발전 되어 왔고, 그 일의 흔적과 문서들이 原典이 되어 남아 있고 활용이 되고 있다는 자부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못 할 짓은 하지 않았으며, 부정한 짓은 하지 않고, 많던 적던 오로지 나에게 주어지는 보수로 살아온 내가, 못된 짓을 한 수많은 놈들이 지금도 저지르는 작태에 비하면 나의 소망은 "아주 소박하고 100% 실현 가능한 아름다운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사람은 저마다 공평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비록 저에게는 돈이 되는 길이 있으면 지금까지 굳이 그 길을 비켜간 길을 걸어왔습니다만.... 또 그도 그럴 것이 연구기관에서 봉직한 연구, 기술자의 거의 대부분이 돈을 목표로 한 생이 아닌, 그런 깨끗하고 자랑스런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를 합니다.
돈을 벌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니, 강남의 30평짜리 아파트가 5-6억이 되었다 해도 억지로 초연한 마음이니까요.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마음을 가지려면 과거의 모든 일들은 깨끗이 털어 버리고, 오로지 내 남은여생을 무엇으로 채워 나갈 것인가? 에 대하여 전력투구하는 것이 나머지 생을 아름답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눈부시게 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야기를 바꾸어,
요즈음, 아니 아이들을 낳고 부터, 아비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까? 생각을 많이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생각을 낳고 무수한 곁가지를 치고 있지만, 결국은 아이들에게 남겨 줄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한 마디의 말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지혜를, 살아가는 정신적인 자세와 생활방법 등을 생각 날 때마다 적어, 한 권의 책으로 남겨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하고 날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기록을 한다는 것이, 다음으로 자꾸 미루다 보니, 한 가지의 흔적도 없이 오늘 날에 다 달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옛날 같으면 일일이 펜으로 기록을 해 두어야 하는 수고를 하여 야 했지만, 이제는...., 컴퓨터가 있으니, 얼마나 기록하기가 편하고 좋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이 결혼 하는 날 선물로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 태어나서 부터 현재까지 찍어놓은 사진들
2. 그 아이들이 자라온 흔적(각종 학교의 성적표, 상장, 보관할 가치가 있는 물
건, 기타 등등)
3. 그리고 생활의 지혜를 담은 부모들이 적어 놓은 이야기
4. 부모의 작품
5. 아버지의 살아왔던 이야기를 엮은 기록(책)
적어도 위의 다섯 가지는 성장해서 부모의 곁을 떠나는 결혼식 날의 선물로 줄
까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그렇다고 훌륭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항상 감사하며 삽니다.
나와 내 아내, 내 자식들이 지금까지 큰 일 없이 잘 살아 왔다는 것, 그리고 앞
으로도 내가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하늘도 계속 우리 가족을 돌보아 주리라는
것을.........
조병화님의 오산인터체인지 中 <고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천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조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리
하나 덧 붙여 <밤의 이야기> 31장으로 오늘의 더위를 접습니다.
따지고 보면 - 실은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한국의 경제 학자의 말을 빈다면
너와 나의 나라
우리의 나라 한국
코리아는
-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한 거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들 갔구나
방에서
절에서
방죽에서
바라크에서
광장에서
바람과 비 속에서
남의 나라 니이가다에서
그리고 나의 두뇌와 가슴에서
모조리 죽어 넘어져 가는
1959년!
쓸쓸한 서울 거리
종소리 울리는 나뭇가지 아래로
바람이 차다
귀를 열면 모조리 남을 미워하는 소리
이웃을 비웃는 소리
고향을 욕하는 소리
너와 나와 우리를 저주하는 소리
마냥 죽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 소리
아무리 비켜 서도
비켜 설 곳조차 이젠 없다
들은 풍월로
옛날 중국 어느 대나무 숲속
일곱 사람의 현자들처럼 잘 살수도 없는 것이고
개울물로 귀를 닦아낼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죽어서 싫은 물을 안 마실 수도 없는 노릇
역사가 마냥 나의 감옥이로구나
1959년이여!
너의 어진 손이 주름잡히도록 일을 하였어도
너와 내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너의 죄도 아니고 나의 죄도 아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데, 우리는 마냥 퇴보와 오류를 범하는 악순환의 연속에
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또 그런 정도의 인간들을 대통령이다 국회의원이다
뽑는 국민이라는 것이, 동남아의 빈국이라도 이민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을 버리
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댓글>
바람나라: 힘내시구요,빨랑 감기 나으시어서 이번 정모때 뵐수 있으면 좋겠읍니다.그리고 그 멋진 그림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늘 님의 건강이 강건 하시기를.... 2003/07/15
화니: 약보다 주사가 빠르지요 ..건강이최고지요...빠른회복을 바랍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20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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