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락재의 솟대: 눈 온 어느 겨울 날
좌측 동락재와 목공예작업실 우측 동산방의 설경
<동락재 통신-31> 2003. 7. 18
오늘은 방학 날입니다.
지난 주말부터 감기에 걸려 골골 대다가 한 주일을 거저 보냈습니다.
지독한 목, 기침 감기였는데, 게다가 콧물까지 맹렬히 가세를 했습니다.
방학 전에 작업을 했던 개다리소반을 끝내는 둥 마는 둥 자신도 매우 불만족스럽게 작품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소반 위에도 그림이나 음각을 하고 싶었고, 다리에도 좀 더 정성을 기울여 투각한 모양을 칼질로 다듬어야 하는데, 몸도 상태가 안 좋고 하니 그저 건성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정성이 들어가야, 솜씨 없음도 어느 정도 가리어질 텐데, 못된 소 엉덩이에 뿔난다고, 전력투구를 못했으니 결과는 불문가지임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던 방학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여유가 생기고, 몸 관리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평소보다 30분 늦게 출발을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교통체증이 너무 심하여 학교에 한 시간이나 지각을 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의 작업이 미완성 된 것은 없는지? 또 조각칼 등, 개인 공구도 챙겨보고, 강의실, 작업실 들을 정리하고 3시반경 1학기 수업을 마쳤습니다.
4시30분경 종강파티를 위해 학교 근처의 모처에 예약을 했다고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을 몸이 좋지 않아 참석을 못하고 홍천의 동락재로 직행을 했습니다.
1학기를 마치며 선생님들을 모시고 학생들과 뜻있는 좋은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그 놈의 감기 때문에, 또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을 것 같기에, 눈을 질끈 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미사리, 팔당대교, 홍천까지 4차선으로 확장된 길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비가 오는 우중에도 웬 나들이 차량은 이다지도 많은지, 바야흐로 예전처럼 쓰는(소비하는) 것이 곧 미덕인양 모두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것 같더이다.
하긴 백수의 눈으로 보니 삐딱할 수밖에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동락재에 도착을 하니 5시20분경이 되었습니다. 비는 어느 덧 그쳐가고, 동락재에서 저수지를 바라보는 하늘의 공간에서는 황혼의 붉은 빛이 그 아쉬움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내려서니 우리 귀여운 네 녀석들이 난리법석을 떱니다.
일일이 악수(?)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좋다고 하더군요.
동물이란 놈들도 저 좋아해 주는 것을 아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싶더군요.
참, 지지난 주에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가을의 꽃이, 여름도 한 가운데가 아닌 앞자락에 있을 뿐인데, 벌써 시간의 규칙이나 예절도 없이 그저 제 피고 싶으면 피어나는 그런 시대인가 봅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 누구처럼 제 멋대로 놉니다그려.
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이 그저 제멋대로 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그저 모든 것이 Que Sera, Sera.... Pop group C.C.R.의 Rolling, Rolling, Rolling ...어쩌고 저쩌고 하며. 제멋대로 그저 제 마음대로 돌고 도는 세상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카페의 정모도 깜빡 잊었군요.
개보다도 못해서 여름 감기에 찍히다 보니, 그것도 발작성 기침에 시달리다 보니 모든 것이 귀찮고, 당치않아 보였습니다.
그 대단치도 않은 감기에 걸려도 이렇게 호들갑을 떨게 되니..... 명퇴와 먹어가는 나이에게 자꾸 기운을 빼앗겨 가는 것 같은 자괴감이랄까? 노여움이랄까? 그런 좋지 않은 것에, 나도 남처럼 서서히 수렁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카페의 정기모임에 가면 -실은 정모가 월1회인지? 어떤지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만- 정말 좋은 님들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래서 인생은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올 것 같은데, 정말 아쉽기도 합니다.
제가 "동락재 통신"이라는 것을 살아가는 흔적처럼 이야기 할 때에, 격려 해 주시고 동감해 주시는, 적지 않은 우리 님들이라도 꼭 뵙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실은 아직도 우리 카페에 서먹서먹한 마음은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한 번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아침나절의 햇볕에 안개가 싹 걷히듯 그런 개운하고 즐거운 만남이 되겠지요.
뭐, 하긴 오늘만 날인가요? 내일도 있고, 또 그 다음 내일도 있겠지요?
동락재를 오면서 동면의 약방에 들려서 감기약을 조제를 했습니다.
시골의 면단위 지역에서는 아직도 약국(방)에서 조제가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비가 걷히면서 동락재로 가는 길 양 옆의 산과 산 사이로 하얀 비온 후의 雲霧들이 산수화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더군요.
비 개인 山谷의 구름과 파란 하늘, 높은 산은 아니지만 첩첩이 열병하듯 들어선 계곡사이로 걸쳐진 구름들은 아마 이런 산간의 마을이 아니고는 보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일 것입니다.
차로 지나면서도 평소엔 들리지 않았던 조그만 냇물이랄까 도랑물이라고나 할까? 그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귀밑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황혼 녁의 비를 긋는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행복하고 차분하게 해줍니다.
모든 시름, 상념 다 물리쳐주고 오로지 전원교향악을 들려주듯, 70미리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던 영화 "남태평양"의 화면 보다 심신을 깔끔하고 맑게 해주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겪습니다.
아, 이래서 불편하지만, 생소하지만, 텃세가 심하다고 하지만, 같이 어울릴 이웃이 없다 하지만, 외롭지만 전원에서 살아가는 의욕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가? 또 더욱 더 모두를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동락재에 도착해 보니, 마당의 네 식구에게 주고 간 사료가 밥그릇에 빗물이 가득차서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 녀석들은 제가 동락재에 있을 때에는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해서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해서 주었는데, 집사람이 바쁘다 보니 사료를 주고 나가면, 이렇게 비가 올 때에는 맛없는 식사를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싸가지고 온 그 녀석들의 밥을(물론 고기가 많이 들어갔지요)커다란 그릇에 다시 펄펄 끓여서, 식힌 다음 녀석들의 밥그릇에다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전에 복돌이와 길동이 두 녀석만 있을 때에도 그 중 더 이쁘게 생각되는 녀석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주게 되는데, 진도개 복순이가 오고 나서부터는 좋은 반찬은 복순이에게 더 많이 주게 됩니다. 복순이란 아이는 양도 엄청 많이 먹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먹어도 먹어도 모자란 가 봅니다. 하긴 이제 겨우 1년 4개월 정도 되었으니, 무척이나 먹을 것을 밝힐(?)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녀석은 밥그릇에서 음식이 다 식어야 먹기 시작하는데, 이 복순이 년(?)은 커다란 냄비가 자기 밥그릇인데, 거기에 뜨거운 것을 가득 담아주면, 제 입으로 그릇을 엎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져 식은 음식을 먼저 먹고, 나중에 뜨겁지 않게 될 때에 냄비에 남은 음식을 먹더군요.
밥그릇을 엎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할 짓이 아니기에, 야단도 치고 퉁박도 주고 밤톨도 몇 송이 올려 부쳤는데도, 제 버릇 개 못주더군요. 에이 개 같은 녀석......., 아니 개 녀석........
그 녀석들 밥 챙겨주고, 뒷밭에 돌아가 보았습니다.
아니, 도마도가 벌써 주황색으로 익은 것이, 서너 녀석이나 되더군요. 도마도를 6그루 심었는데, 올해에는 지금 현재 크기가 모두 아이들 주먹만 하며, 잘 크고 익어 가는것 같아서 참 기특했습니다.
상추도 지난주에 준 비료의 독에서 벗어나, 다시금 싱싱하게 키를 올리고 있었고, 재래종 고추, 꽈리고추, 피망도 아주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바구니를 가지고 나와 한 바구니 고추를 따서 있다가 아내와 아들이 도착하면 먹으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의 메뉴는 엄나무, 황기 백숙입니다.
아내가 어제 사놓은 토종닭을 꺼내서 끓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뒤쪽의 밭 임자가 어디 가는 길에 얻어 왔다고, 엄나무를 한 봉다리를 주었거든요.
먼저 엄나무와 황기를 따로 달여서 그 진액을 내고, 그 진액에 닭을 넣고 뭉근한 불에 끓이고 있습니다.
3년차 주부수업을 한 결과, 이제는 웬만한 신새대 여성보다는 요리 솜씨가 좋다고 자화자찬 하고 있습니다.
9시 30분쯤 되면 집사람이 아들과 함께 옵니다. 차가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저쪽에서 아들의 차 불빛을 보고도 벌써, 마당의 네 녀석들이 알고는 마구 짖어댑니다. 참 신통방통, 사랑 받아서 마땅한 녀석들이지요.
그런데, 애완견 종의 해피(입양한 놈)라는 놈은 비를 즐기는 것 같더군요.
비가 오는 날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 밖에 나와 비를 맞으며,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따라서 생각을 합니다.
저 아이는 무슨 생각에 저리도 잠겨 있는 걸까? 전생에 무슨 사연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왔을까?
왜 이제는 강아지로 태어나, 무슨 업보를 안고 업장소멸을 하고 있는 걸까?
개꿈이 아닌......, 개 같은 생각(?)을 한 걸까요?
이제 내일부터는 방학을 즐겨야 할 텐데, 딱이 젊은 사람들처럼 의욕은 없네요.
그러나, 계획은 짜려합니다.
우선 가족들과 3-4일 피서를 가려 합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당신 쉬시오! 하고 아내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어야겠지요. 그 휴식의 시간이 그냥 이 동락재에서 쉬는 것이 좋을지, 하루 정도는 바다의 짠 내음을 맡고 와야 할지, 아니면 내린천이나 구룡령, 오대산 자락의 계곡의 그늘에서 하루를 쉬고, 그곳의 음식이나 먹고 와얄지, 아니면 딸내미 말따나 이번에는 정말 바다구경만 하지 말고, 발이라도 담그고 와얄지.....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낚시 친구들과 올 여름엔 꼭 낚시를 할까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같이 공부하는 불혹의 나이에 들은 친구가 황토방을 짓는 공사를 한다 하니, 한 번 구경을 갈까 합니다. 황토방이 좋을지, 통나무집이 좋을지. 공정이나 비용, 효용 들 모든 것을 좀 비교해 볼까 합니다.
장차, 작업실을 헐고 새로 지으려 계획을 하고 있으니, 이모저모 비교를 해볼까 하구요.
방학이 한 달도 안 되어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효율적으로 잘 쓰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물떼와 같이 밀리는
입술과 입술과 입술에 떠서
내 입술마저 믿을 수 없는
도시의 그늘에 끼어
당신의 이야기를 믿어도 좋겠습니까
당신의 믿음을 믿음으로 안어도 좋겠습니까
돈 떨어진 저녁 노을
대도시 한 가운데
외로운 섬처럼 둥둥 내가 떠서
벗이
사랑이
인생이
비켜 가는
화폐의 고독에 끼어
그냥 그대로 당신의 말을 믿어도 좋겠습니까
당신의 믿음을 믿음으로 안어도 좋겠습니까
나의 소유는 외줄기 가는 생명
달달 서류에 닳아 빠진 젊은 조각
때가 오면
그날이 오면
모주리 보내야 할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희망과 동경과 미래와
오오...... 아스라지는 절망을 양손에 고이고
人間孤島
이렇게
당신의 이야기를 믿어도 좋겠습니까
당신의 믿음을 몽탕 내것으로 안어도 좋겠습니까
조병화 시인의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에 수록된 시 <물떼와 같이 밀리는> 였습니다.
지금 동락재의 밖, 저수지 수면 위에는 소리 없이 밤이 내리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밤이 내리면>으로 수유의 안녕을 고합니다.
소리 없이 유리창에 밤이 내리면
당신이 없는 이 침실은 그대로 무덤
인색한 애정에 상한 산비둘기처럼
마음의 날개를 접고
나 돌아가는 길
영원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신을 만나서 헤어지는 것
바람과 같이 냉기와 같이 사라지는 자리
소리 없이 유리창에 밤이 내리면
당신이 없는 내 가슴은 빈 당신의 무덤
인색한 애정의 부스럭지를 밟으며
나 돌아 가는 길
<댓글>
happy 맘: 매우 기다리며 읽고있습니다. 어느날은 너무 슬퍼서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어느날은 환하게 웃어가며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부럽기도 하지요. 인생에 탄력을 주고자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힘내고 살고자 시작했는데 꼭 기간 마치려고 합니다. 방학 잘 보내세요. 글 자주 올려주시고요. 200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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